한국사 이야기 - 제도(制度)

2. 골품(骨品) - 성스러운 금수저(聖骨), 진짜 금수저(眞骨)

by 이중석



신라는 관료를 세울 때 족(族)을 먼저 따진다. 족 이름을 제1골, 제2골이라 하여 스스로 구별한다. 형제 딸이나 고종 자매, 이종 자매를 모두 처로 맞아들인다. 왕족을 제1골로 한다. 처도 같은 족이다. 자식을 낳으면 모두 제1골로 한다. 제2골의 여자와 혼인하지 않는다. 비록 혼인하더라도 언제나 첩으로 삼는다.

- 『신당서』


설계두는 신라 6두품 집안 자손이다. 하루는 친구들과 함께 술 마시며 자기 뜻을 말하였다.

“우리나라(신라)에서는 사람을 쓰는데 먼저 골품을 따진다. 정말 그 족속이 아니면 비록 큰 재주와 뛰어난 공이 있다 하더라도 크게 될 수 없다. 내가 바라는 것은 멀리 당나라에 가서 빼어난 지혜를 발휘하고 뛰어난 공을 세워 나 스스로 영광스런 길을 열고 높은 관리의 칼을 차고 황제 곁을 드나드는 것이다.”

- 『삼국사기』





골품제는 신라가 중앙집권화 되는 과정에서 각 지방의 족장 세력을 중앙 귀족으로 통합·편제하면서 생겨났다.

중앙집권화 과정에서 가장 힘이 쎈 족장이 진골, 다음이 6두품, 다음이 5두품으로 서열화 된다. 국왕은 성골이 되었다.

그러므로 골품제에 해당하는 이들은 모두 귀족이다. 한마디로 귀족 서열화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다.

요즘으로 말하면 서민은 해당 사항이 없는 재계 서열 정도라고 해도 좋을 듯싶다.



골품제는 골(骨)과 품(品)으로 구분하여 귀족을 서열화 하였다.

골은 성골과 진골로 구성되었으며, 품은 6두품부터 1두품으로 구성되었다. 총 8개의 계급으로 귀족을 서열화 하였다.

골품을 쉽게 이해하는 방법은 귀족 내부의 ‘뼈의 품질’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조금 우습게 표현하면 성(聖)스러운 뼈다귀는 성골(聖骨), 진짜 뼈다귀는 진골(眞骨)이다. 그리고 두품(頭品)은 뼈가 없는 살코기 정도로 구성된 귀족이다.


골품에 따라 정치 활동 범위와 사회 활동의 범위가 정해졌을 뿐 아니라 골품은 일상생활까지도 규제하였다.

골품제는 폐쇄적 신분 제도로 위아래의 계층 이동은 사실상 불가능하였다.

육두품이 아무리 뛰어난 재능과 행정 능력을 가져도 진골이 될 수는 없었다.

골품제는 성골과 진골의 특권을 지켜주는 장치이다.


<골품과 관등표, 골품과 생활 모습>



위의 표를 보면 1등급 이벌찬부터 5등급 대아찬까지는 진골만 오를 수 있다.

육두품의 관직 승진 상한선은 6등급 아찬이다. 5두품의 관직 승진 상한선은 10등급 대나마, 4두품의 관직 승진 상한선은 12등급 대사까지이다.

골품은 귀족의 신분에 따라 승진을 제한하였다.

조금 해석의 논란은 있겠지만 요즘으로 말하면 서울대 출신은 모든 관직을 맡을 수 있고 연·고대 출신은 6등급 아찬까지, 서·성·한 출신은 10등급 대나마까지로 이해하면 쉬울 수도 있다.

위의 예시를 들으면 어떤 분들은 “왜 학력이 골품이냐!”라고 말하기도 한다.

맞다. 학력은 골품이 아니다. 학력은 성취 지위이기 때문에 골품과 같은 귀속 지위와는 구분을 해야 한다.

그런데 교육 양극화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을 하면 씁쓸하지만 어느 정도의 수긍은 가야하는 예시라고도 볼 수도 있다.

신라의 멸망 원인을 골품제로 분석하기도 하는데, 현재의 사회에 골품제를 투영하면 마음이 아프다.


위의 표에 그려진 생활모습은 요즘으로 말하면 아파트 평수가 골품에 따라 제한을 받는다고 이해하면 된다.

이뿐만이 아니라 수레의 크기 등도 골품에 제한을 받는다.현재로 해석하면 소유 자동차도 골품에 제한을 받는다.

고대 사회는 개인의 능력보다 친족 집단의 사회적 지위가 중시되는 강력한 신분제 사회이다.

골품에 따라서 신라 상대에는 계속 성골이 왕을 하였다.

신라 사회는 남녀 성별에 따른 차별보다 골품의 차별이 더 커서 성골의 남자가 없을 경우에 진골의 남자가 왕을 하는 것보다는 성골의 여자가 왕을 하는 것이 옳다고 보았기 때문에 삼국 중 유일하게 여왕을 탄생시키기도 하였다.


골품은 시대에 따라 변화도 보였다.

무열왕(김춘추)은 최초로 진골 출신으로 왕위에 올랐다. 무열왕 즉위 이후 성골은 폐지되었다.

신라 삼국 통일 후에는 3두품에서 1두품은 귀족의 지위를 잃고 평민화 되었다.




전근대 사회에서 골품과 같은 신분 제도는 사회를 유지하는 강력한 틀이었다. 사회와 국가는 이 틀 안에서 움직였다.

현재도 역사의 진보나 사회의 변화를 읽어내지 못하는 이들에 의해 전근대적 신분 제도는 유지되는 경우도 있다.


어떤 회사의 대표는 직원을 자신의 하인으로 생각하면서 함부로 말하거나 신체적인 위해를 가하기도 하고, 자기 회사에서 일하다가 죽은 이들의 죽음 앞에서 너무나 태연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갑질 가해자들의 특징은 자신이 피해자 보다 높은 신분에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행위가 뭐가 잘못되었는지를 인지하지 못한다. 아마도 가르쳐도 모를 것이다.


갑오개혁(1894) 때 폐지된 신분 제도는 자신이 우월하다는 특권 의식을 가진 인간들과 함께 대한민국의 정치·경제·사회 기저의 기생충과 호흡하면서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현실적으로 모든 사람의 사회적 위치가 같을 수는 없다.

개인마다의 배움의 정도, 하는 일의 중요도, 하는 일의 대체 가능 여부에 따라서 사람의 사회적 위치는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경제적 위치가 다른 사람을 함부로 할 수 있다는 라이선스(Licence)가 될 수는 없다.




성골(聖骨)은 없고 성심(聖心)인 사람, 진골(眞骨)은 없고 진심(眞心)인 사람이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대부분이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일까.



太公曰 태공왈

勿以貴己而賤人 물이귀기이천인

勿以自大而蔑小 물이자대이멸소

勿以恃勇而輕敵 물이시용이경적


태공이 말하였다.

자신이 귀하다고 해서 남을 천하게 여기지 말고,

스스로 크다고 해서 작은 이를 업신여기지 말며,

용맹을 믿고서 적을 가볍게 보지 말라.

- <명심보감(明心寶鑑)>정기편(正己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