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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befree May 04. 2022

칼퇴를 방해하지 마세요.

나의 소중한 칼퇴.

출근과 동시에 퇴근을 생각하는 직장인에게 퇴근이란 하루의 행복이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이 절망스럽기는 하지만, 일터에 의미를 많이 두지 않으려 한다. 모든 날을 직장에 버리고 살고 있지만, 하루하루가 다 소중하기에 칼퇴는 필수이다. 9시부터 6시까지 일터에 내 에너지를 쏟아붓는 것도 억울한 데 초과근무나 회식이라니 용납할 수 없다. 회식을 하고 나면 회복에 며칠이 걸려 사실 일 년 내내 회식이 없었으면 한다. 일 년 중 하루라도 회식이 잡히는 날이면 회식이 삶을 방해하는 느낌이 든다.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려면 시간이 턱 없이 부족한데 초과근무와 회식에 인생을 바치는 건 너무 아깝다. 그렇다고 술을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니라서 비슷한 동료들과 갖는 자발적인 술자리는 좋아한다. 하지만 물과 숟가락을 서열 순서에 맞게 놓아주어야 하는 윗사람과의 자리는 불편하다.

 



동사무소에는 주민자치위원회 등 위원회라는 것이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로 인해 위원회 회의 후 회식이 없었다. 하지만 신규 직원일 때는 위원회 회의가 있으니 새로 온 직원은 회의 후 회식에 참여해야 한다고 했다. 퇴근 후 회의를 기다리는 것도 화가 날 지경인데, 회식까지 참석해야 한다니 더 짜증이 났다. 피할 수 없다면 가서 밥이라도 많이 먹고 오자는 심정이었지만, 위원회 회식에 따라가서 먹는 밥은 맛도 없었다. 퇴근 시간 후 나의 시간은 1분도 중요한데, 동 주민과의 화합을 위해서 일하는 것은 근무 시간에만 했으면 했다. 다들 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기 보다는 싫어하는 분위기인데 팀장 정도의 나이가 되면 갑자기 짠하고 회식이 좋아지는 것인지도 궁금했고, 화합을 위해서 꼭 저렇게 술 한잔을 같이 하는 게 필요한 것인지도 의문이었다.

위원회의 위원들이야 지역 사회의 이익이든 다른 이익이든 각자의 이익을 위해 위원장도 하고 위원직도 맡고 있겠지만, 일개 말단 공무원일 뿐인 내가 인사를 드리기 위해 그 자리에 왜 참석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그분들이 원하는 분은 팀장님과 동장님이지 갓 들어온 힘없는 젊은 직원은 아니었다. 그 회식에 참가하고 온 후에도 위원들은 당연하고 위원장님 얼굴도 잘 몰랐다. 그들도 나를 몰랐겠지만, 그분들이 동에 방문했을 때 민원서류를 발급하다가도 살갑게 맞아주기 위해서 얼굴을 익혀야 했을지도 모른다. 동사무소에서는 팀장 직급이 각종 단체 관리를 맡고 있다. 세월이 지나 동 팀장이 되면 위원들을 관리해야 하는 건가? 회의가 늦어지는 거야 그렇다 치고 회의 후 회식문화도 바뀌지 않겠지라고 생각하면 동사무소 업무가 지긋지긋하게 느껴진다.

그에 비하면 구청 회식은 과 전체 회식이나 팀 회식 정도이다. 일 년 넘게 회식이 없다 보니 사실 회식 자체가 싫긴 하다. 업무에 따라 다르지만, 동사무소에 있을 때보다 구청에 있을 때 칼퇴의 비율이 훨씬 더 높은 것을 보면, 동사무소 업무가 강도는 둘째치고 결코 양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지방 일반행정직이라는 직렬이 대인관계 능력이 좋은 사람에게 맞는 곳인지 알았다면 다른 직렬의 시험을 쳤을 것이다. 요즘은 안 그렇지만, 공무원은 까만 주사복을 입고, 두꺼운 안경을 쓰고, 융통성 없이 서류하고만 일하는 재미없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하지만 그런 성향의 사람은 지방 공무원을 하기엔 적합하지 않다. 사람들과 잘 지내고 완벽을 추구하기보다는 융통성을 추구하고 술자리도 좋아하고 집에 틀어박혀 있는 것보다는 나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과 잘 맞는 직렬이 바로 지방 일반행정직이다.




정부 지침을 제일 준수하여야 하는 직업이니 만큼, 코로나로 인해 회식을  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이제 모임 금지가 해제되니 회식도 하고, 여러 교육이나 행사 등이 슬슬 머리를 들려하고 있다. 9 to 6 외에는 직장과 관련된 것은 잊고 살고 싶다. 삶의 전부가  관련된 것뿐이라면 수명이 줄어들  같다. 과연 회식과 워크숍 등이 직장 생활에 도움이 되었는가 생각해보면 절대 아니다. 친해지고 나니 따로 만나고 싶은 마음이 생겼지 회식으로 인해 직원들과 친해진 것은 아니다. 회식이 직원들과의 친목이라든가 사기진작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회식이 도움을 주는 것이라면 술을  먹는 사람은 친한 사람이 별로 없어야 되는 것인데,   먹고도 대인관계가 좋은 사람도 많다.  맞는 사람은 어떻게 해도 친해질  없고, 맞는 사람은 저절로 만나게 되어있는 것이다. 교육은  어떤가? 1 2일이나 2 3 교육을  적이 있기도 한데 친한 사람도 없거니와 혼자 있으니 외로워 교육이고 뭐고 집에 가고 싶었다. 업무 시간에만 긴장하면 되는 일을 잠을 자면서도 긴장하려니 괴로웠다. 점심 회식은 자주 해도 좋지만, 6 이후의 회식은  개월에  번이 최대 허용치이다. 사실  년에  번이 제일 좋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직렬을 잘못 선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일이 끝난  사람을 만나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도 있다. 지방 일반행정직이 천직인 사람은 학생회장을 맡은 적이 있거나 적어도 과대표라도 한번 맡아본 적이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한다. 집순이에 워라벨을 중요시하는 사람에게는 일반 행정직은 추천하지 않는다. 각종 비상근무와 업무 등으로 워라벨은 금방 깨질 것이고, 계속 집순이를 자처하다 보면 남들이 말하는 주요 요직과는 영영 멀어질 수도 있다. 사실 주요 요직이라는 것도 밖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닌 우스운 이야기이고, 나에게 주요 요직이란 칼퇴할  있는 리라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삶에 있어서 제일 소중한 칼퇴를 방해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바뀌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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