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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befree May 31. 2022

정년까지 버티기 위해 필요한 것.

정년까지 버틸 수 있겠지?

작년과 올해의 목표는 5년 안에 의원면직하는 것이었다. 브런치에 의원면직 한 사람들의 글을 읽고 퇴사 에세이를 보며 의원면직을 꿈꿔봤다.  

신규직원이었을 때는 의원면직은 괄호 밖이었다. 지역민들에게 봉사하면서도 어쩌면 적성에 맞는 부서에서 꿈을 펼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웃기지도 않는 생각을 했다.

30대에는 육아 휴직에 아이를 키우는 것만으로도 벅차 이런 곳에 내게 맞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아이들이 조금 크고 정신없이 출근 퇴근 출근 퇴근을 반복하는 시간이 지나 정신을 차려보니 이곳은 꿈을 펼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내 적성에 맞는 부서는 없다는 것을 알았다.

말로만 하는 다이어터들과 같이 이제 와서 그만두고 싶다고 백번 말을 해본들 변하는 것은 없다. 오늘 퇴근해서 내일 아침에 일어나 출근해야 된다는 것만 사실일 뿐이다.

지금까지 버텼으니, 앞으로 10년 또 10년을 버틸 것이다.


불합리한 절차들,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인수인계 방식, 하급자들에게 일이 많이 몰려있는 것 같은 느낌, 일을 하면 할수록 더 일이 몰리는 느낌 등 다 느낌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불합리한 절차들도 윗분들이 여러 고민에 고민을 해서 만들어진 것이니 의미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분기마다 작성하는 성과계획서 상에 장래에 어느 직위 어느 보직까지 올라가겠다는 목표는 복붙 해서 제출하기 일쑤고, 그 직위까지 올라갈 자신도 올라갈 생각도 전혀 없다.

오늘부터 보직을 받으면 담당자가 되어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민원인에게 욕을 먹기 전에 처리해야 하는 공무원에게 이런 계획서가 무슨 소용이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전임자가 해 놓은 것도 놓치지 않고 따라 하기 버거운 데, 이제까지 해오던 방식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보고에 보고를 해야 하는 조직에 무슨 변화와 혁신이 있다고 성과계획서를 제출해야 하는지. 하지만 이런 생각도 최근에 든 것이지, 신규 직원일 때부터 얼마 전까지 그냥 제출하라고 하니 꾸역꾸역 아무 생각 없이 작성해서 제출했다. 똑똑한 높은 분들이 만든 성과계획서에 관한 의미를 일개 공무원이 어떻게 헤아릴 수 있겠나, 이런 잡생각들은 그냥 잡생각이니 더 이상 의문을 가지지 말고 하라는 것이 있으면 하면 그만이다.


공무원의 인수인계는 이 조직이 생겼을 때부터 이랬을 것이다. 새로운 일을 맡으면 가슴에 돌을 얹은 것처럼 답답한 느낌, 시간이 지나 일에 익숙해질 때까지는 밤 잠을 설치고, 마음의 평화를 꿈꾸며 기도나 할 수밖에 없는 것이 내 능력이 안돼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다른 조직에서 일해 본 적이 없었기에, 인수인계는 원래 두 시간만 하면 되는 것으로 알았다. 모르는 것이 계속 나와도 물어보면 민폐인 것이고, 혼자 끙끙 앓으며 몇 날 며칠 규정집을 찾아보며 해결해야 되는 것으로 알았다. 새로 맡은 업무에 대해 언제고 잘 가르쳐 줄 귀인을 만나 인수인계를 잘 받으면 걱정 없겠지만, 그럴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신규 직원 일 때는 전화로 업무 등을 물었을 때 쌀쌀맞게 대하는 직원들에게 상처도 받았다. 이 조직에 조금 일찍 들어온 것이 무슨 벼슬인 것인지(벼슬일지도 모른다), 저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냥 그렇게 다짐을 했고, 인수인계는 원래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 업무에 익숙해질 때까지 받는 극도의 스트레스는 어쩔 수 없는 숙명 같은 것으로 여겼다. 40대가 되어 이런 잡생각들이 들어서 다행이지, 10년 전에 이런 생각을 했으면 벌써 의원면직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냥 공무원의 인수인계는 이런 것이고, 다른 조직도 이럴 것이며,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여겼던 것이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


20대 초반 잠깐 옷가게 매장에서 알바를 한 적이 있었다. 갑자기 새로운 매장을 오픈한다며 12시까지 일을 시키고, 12시까지 일한 것에 대해서는 돈을 한 푼도 더 받지 못했다.

라때는 가게 사장이 갑질을 하던 그런 시대였다. 그 매장을 그만둘 때는 월급도 제 때 받지 못했다. 사장은 당당하게 언제 월급을 주겠다고만 했고, 그 뒤로 몇 번 더 찾아갔다.

요즘 같으면 바로 고용노동부에 신고했을 것인데, 그때는 돈 줄 사람이 당당했고 아르바이트생은 을 중에 을이었다. 그 매장에 같이 일하던 언니들 3명은 그렇게나 마음대로 전화를 해댔다. 남자 친구랑 싸운다고 전화, 연애한다고 전화 그렇게나 마음대로 전화를 해대면서, 내 전화가 와서 한번 받았던 적이 있었는데 그들 중 점장 직책을 가지고 있던 사람에게 혼이 났다. 3:1로 싸울 기가 센 사람은 아니어서 죄송하다 하고 말았다.

대학 졸업 후 잠시 영어학원에서 일했던 적도 있다. 이제 그만두고 공무원 공부할 거라고 얘기를 했더니 역시나 까칠한 부원장이 요즘 다들 공무원 공부하는데 되겠어요?라는 것이다.  

나이는 띠 동갑도 더 차이나는 사람이었고, 어차피 다시는 볼 일도 없을 텐데 열심히 하라는 말 한마디도 해주기 싫었나 보다. 사람을 또 구해야 하니 스트레스받아서 그러나 보다 했다.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은 저렇게까지 못 된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있다고 해도 직원들이 천명 정도 있으니 신경 안 쓰면 그만이다.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지는 않지만, 이제까지 만난 이상한 사람들에 비하면, 여기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좋은 사람이 더 많다. 지금 곁에 못 견딜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 사람도 길어야 이 년 정도이다. 다른 부서로 옮겨도 누군가는 옮긴다. 다른 곳에서 만난 이상한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그만두는 것보다, 익숙한 이곳이 낫다는 생각이 든다.


공직 생활에 올인하면 얻어지는 것들도 있을 것이다. 빠른 승진, 좋은 직장 동료들, 좋은 자리 등 직장 생활에 올인한 적이 없는 나로서는 잘 알 수는 없다.

직장 생활에 올인하며 만족해하는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만 둘 이유도 버틸 이유도 없으니 부럽기도 하다.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보다 혼자 있을 때 에너지를 얻는 사람의 경우에는 직장 생활에 올인하는 것보다 딴짓을 하는 것이 정년까지 버티는 데 더 도움이 된다.

직장 생활에 올인해서 번아웃이 되어 그만두는 것보다는 6시 이후에는 무조건 내 시간을 갖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잡생각이 나지 않도록 열심히 딴짓을 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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