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급의 벽은 언제 넘을 수 있나

고급으로 가는 험난한 길

by maybefree

언어 공부를 하면서 지칠 때가 많다.

초급에서 중급 상태가 되었을 때, 여행 가면 웬만큼 다시 한번 더 물어보며 주문도 할 수 있고

호텔에 이것저것 요청도 할 수 있고 돈을 쓰는 데 별 불편이 없었을 그 시절에는

이 정도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한마디도 하기 힘들었다가 조금이라도 말을 할 수 있게 되니 대만족이었다.


지금도 중급 정도의 영어만 구사하지만, 초급에서 중급 입문까지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한국식 사고는 버리고 영어식 사고를 탑재했다고 생각했다. 간단한 의사 전달도 할 수 있게 되고 여행 가서 식당이나 호텔, 티켓을 구매할 때도 어느 정도 통하게 되었다. 전혀 통하지 않다가 소통이 가능하게 되니 나 영어 좀 늘었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80년대생으로 그 시절 한국식 영어 교육을 받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 영어를 잘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 대학생들은 여행 영어는 자연스럽게 구사하니, 어른들이 보면 "영어 하네" 정도이고, 요즘 애들이 보기에는 그저 그런 실력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일본어를 좋아하기도 했고,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통역사가 되고 싶었지만, 현실은 눈이 오거나 비가 오면 부리나케 달려 나가야 하는 공무원이 되었다.

마음 한 구석에 언젠가 일본어를 경어도 한자도 완벽하게 쓰는 고급 일본어까지 마스터해야지 하고 생각했다.

육아 휴직 시기에 영어를 원어민만큼 할 때까지 계속해보자라는 말도 안 되는 결심을 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에게는 쉽지 않은 일본어가 한국 사람은 쉽게 배울 수 있는 언어다라는 말도 많이 들었고,

완벽하지 않은 일본어보다는 영어를 쓰는 편이 예전에는 일본 여행할 때 더 나은 것 같았다.

예전엔 학교에 있던 일본인 교수님들도 한국어는 필요 없다고 공부하지 않았다. 요즘은 한국인처럼 한국어를 구사하는 젊은 일본인들이 있어 놀라곤 한다.

한국어가 저 정도 노력을 들여 배울만한 언어가 되었다는 사실에 세월이 참 많이 변했다고 느낀다.

만국 공용어인 영어를 해 놓으면 어딜 가도 쓸 수 있으니 영어 공부를 해야겠다 싶기도 했지만,

그냥 이유 없이 일본어를 뻬라뻬라하고 싶었던 것처럼 갑자기 남들처럼 영어를 쏼라쏼라 하고 싶었다.


가령 스페인어나 중국어를 공부한다고 해보면, 처음에는 아무것도 안 들리다가

어느 날 어느 정도 여행 할 정도로 할 수 있게 되며 초급에서 중급으로 넘어가는 시기가 온다.

자신감도 생기고 혹시 언어에 소질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게 된다.

일본어도 히라가나 가타카나 알게 되고 일본 프로그램을 보면서 들리는 말이 조금씩 생길 때 소질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영어는 사람들과 어버버 소통이 조금 되었을 때 자신감이 좀 생겼었다.


그런데 지금은 깜깜 그 자체이다. 여전히 미드는 들리지 않으며, 모르는 단어는 왜 그리 많은지, 매일 쏟아지는 모르는 표현들에 압도당하고 만다.

하루라도 쉬는 날에는 영어를 하나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다.

이렇게 공부해서는 이번 생에 영어를 할 수 없을 것만 같지만, 어떤 언어든지 절대적인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후로는 그 시간을 제대로 투자하지 않았으니 절망하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한다.

지금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은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 어렵게 얻은 결과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어떤 것도 쉽게 얻어지는 것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6개월 만에 원어민처럼 되었다"는 말은 6개월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10시간씩 하지 않고는 광고에서나 들을 수 있는 이야기일 뿐이다. 그래도 원어민처럼 될지는 모르겠다.


꾸준히 영어 공부를 하면서 생긴 작은 변화는, 언어 공부라는 것은 집에서 혼자서 넷플릭스 보며 해도 되고, 전화 영어를 해도 되고, meet up에 나가도 되고, 원서를 읽어도 되고 여러 방법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비용이 발생한다. 비싼 어학원이나 영어 유치원, 방학 기간을 이용한 어학연수, 유학 등을 생각하면 영어는 아무래도 경제적으로 넉넉한 사람에게 유리하다.

많든 적든 꾸준히 전화 영어, 좋다는 책 구입, 원서 구입, 어플 구입 등에 돈을 써오고 있었는데, 영어를 한다는 사실이 알음알음 알려져 통역할 할 기회가 생겼다.

물론 캐주얼한 통역이지만, 통역할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것도 신선한 경험이었고, 수강료를 내지 않고 영어를 마음껏 또는 무조건 써야 된다는 것도 신선했다. 수강료를 낼 때는 틀려도 상관없고, 말을 아무리 많이 해도 튜터는 기다려주니 마음껏 할 수 있었는데, 아무리 편한 자리라도 일터에서 통역을 하는 것은 부담스럽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언어는 공부를 하지 않으면 금방 잃어버리는 능력이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매일 공부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되었다. 갑자기 못하는 사람이 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영어를 잘하게 되기까지는 10년이 걸린다고 하니,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퇴직 후 언어 장벽 없이 어느 나라든 한 달 살기를 하며 건강한 노년을 보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물론 번역기를 사용하며 한 달 살기를 할 수 있겠지만, 번역기로 의사전달과 직접적인 소통의 차이는

다들 알 것이라 생각한다.


언어 공부를 꾸준히 하면서 알게 된 것은, 무엇이든 꾸준히 하면 처음에는 나만 알고 있는 애매한 재능이 시간이 지나면 주변 사람들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자기 계발하는 것을 절대 알리지 않아야 하지만, 어느 정도 되었을 때 저절로 주변에서 알게 된다면 굳이 숨길 필요는 없다.

그렇게 영어 통역도 몇 번 나가게 되고, 일본어 통역도 하게 될 기회가 생기고 하다 보니 애매한 재능이라도 쓸 데가 있구나 하는 걸 알게 되었다. 공부를 안 하면 금방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 또 언어이지만, 그러니 더

해야 되겠다는 생각도 들고 매일 공부할 수 있는 동기부여도 되었다.


꾸준히 언어 공부를 하다 보면 처음에는 내 재능이 애매하게 느껴지지만, 점점 생각지도 못한 변화가 생기게 된다. 그렇게 꾸준히 하다 보면 또 어떤 일이 생길지 아무 일도 없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퇴근 후 유튜브만 보고 소파에 붙어 있는 삶보다는 삶이 채워지고 재미있어진다는 것은 분명하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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