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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은 떠났다.

이유는 하나, 당신이 ‘먼저’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by 추실장
ChatGPT Image 2025년 5월 19일 오후 10_26_38.png

얼마 전, 대기업에 다니는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우리 회사에서 새로 출시한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 상세페이지인데, 네가 한 번 봐줄 수 있을까?” 그 제품은 디자인적으로 흠잡을 데 없었다. 정갈하게 정리된 구성, 매끄러운 CG, 최신 기술을 담은 설명들까지. 겉으로 보기엔 완성도 높은 페이지였다.


하지만 나는, 스크롤을 내리다 말고 말했다. "…이건 안 팔려."


지인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런 판단을 하느냐고 되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그 페이지를 보는 동안
‘고객의 입장에서 내가 한 번이라도 “아, 이거 내가 궁금했던 건데!”라고 느꼈는지를 되짚어보았다. 그리고 단호하게 말했다.


“고객이 궁금해하는 이야기는 아무데도 없어.”



고객은 제품을 알기 위해 들어오지 않는다.


고객은 자신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들어온다. 상세페이지를 만드는 많은 브랜드들은 ‘제품을 얼마나 잘 설명하느냐’를 중심에 둔다. 그래서 기능과 성능, 기술력과 구조, 수치와 사양이 상단을 빼곡하게 채운다.


문제는,


고객은 이미 그 제품이 뭔지 알고 있다는 점이다. 검색하고, 비교하고, 클릭해서 들어온 고객들은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가 뭔지는 알고 있다. 그들이 정말 알고 싶은 건 다르다.


“우리 집 주방에도 설치할 수 있을까?”, “냄새는 정말 안 나?”, “소음은 어느 정도야?”, “유지비는 얼마나 들지?”, “ AS는 어떻게 해줘?”


이 질문들에 상세페이지가 제일 먼저 답해주지 않는다면, 고객은 굳이 스크롤을 끝까지 내릴 이유가 없다.

정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내가 궁금한 이야기가 ‘먼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떠나는 것이다.



상세페이지는 제품 설명서가 아니다.


고객의 시선을 설계하는 이야기 구조다. 잘 만든 상세페이지를 보면, 디자인이 예쁘고 정보가 많다는 점보다

‘어떻게 읽히는가’가 중요하다.

즉, 흐름이다.


내가 수많은 상세페이지 디자인 제작에서 경험한 바로는, 상세페이지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디자인보다도 이야기를 전개하는 순서다.


1. 고객이 가장 궁금해할 질문을 맨 앞에 배치하고

2. 지금 사야 하는 이유를 보여주고

3. 우리 집에 놓이면 어떤 모습일지를 상상하게 만들고

4. 마지막에야 기술력과 스펙, 브랜드 철학을 등장시킨다.


이 흐름은 단순한 정보의 나열이 아니라, 고객이 마음을 여는 대화의 순서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아름다움보다 공감을 선택한다.


그리고 공감은 ‘먼저 말 거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제품이 아무리 훌륭해도, 디자인이 아무리 세련되어도, 고객이 느끼는 첫인상이 “이건 내 얘기 아니야”라면, 그 페이지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


우리는 자주 착각한다. “좋은 설명”이 곧 “좋은 설득”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고객은, 내가 생각한 것을 먼저 말해주는 브랜드에 더 깊은 신뢰를 보낸다. 그 한 줄의 문장이, 한 장의 이미지가 고객의 머릿속에서 품고 있던 질문에 반응할 때 비로소 스크롤은 내려가기 시작한다.



당신의 상세페이지는 지금, 고객의 마음보다 앞서가고 있는가?


팔리는 페이지에는 정보보다 이해가 있고, 기술보다 대화가 있다. 기획은 결국, 시선을 설계하는 일이다. 상세페이지는 누군가의 클릭을 유도하는 공간이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는 흐름이 있어야 한다.







이 글은,

사람의 시선을 따라가는 법을 고민하는 디자이너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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