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Bar에서 만난 Suzon
The Courtauld Gallery (20221202)
런던에 도착한 다음날, 일단 아무 계획 없이 그냥 나왔다. 어느 쪽을 먼저 가볼까… 딸의 집이 코벤트가든까지 5분밖에 걸리지 않는 최상의 위치여서 런던 도심을 여행자의 마음이 아닌 그냥 내 동네처럼 다녀보고 싶었다. 코로나로 막힌 하늘길을 뚫고 온 오랜만의 외출이라 파란 하늘도 공기도 참 상쾌했다. 역시나 첫날 느긋하게 발걸음 닿는 대로 가다 보니 제일 먼저 방문하게 된 곳이 The Courtauld Gallery. 제일 좋아하는 곳이기도 하고, 가볍게 들려보기에 부담 없이 아담한 갤러리지만 보고 나면 꽉 찬 느낌이 드는 곳이다. The British Museum (제국주의 잔재를 지우기 위하여 대영박물관이 아닌 영국박물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The National Gallery, Tate Britain, Tate Modern 등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런던의 미술관들은 상설전시 입장이 무료라서 물가가 높은 영국을 여행하면서 심적으로나마 작은 보탬이 된다. 그런데 유독 입장료를 받는 곳이 이곳이다. 입장료는 성인 기준 9파운드지만 안 보면 후회할만한 곳이다 (2023년 6월 기준) 런던에 와서 바쁜 일정을 소화하면서 잠시 짬을 내서 차분한 시간을 갖고 싶은 이에게 추천하고 싶다.
이 갤러리는 특이하게 미술 교육기관과 역사를 함께한다. The Courtauld Institute of Art는 권위 있는 OS World University Rankings 2023년에 미술사 및 보존의 연구 분야에서 세계 3위안에 들어가는 평가를 받은 명문학교이다. 이 학교 졸업생들은 전 세계 굵직한 미술관들의 관장으로 한 자리씩 하고 있어서 ‘Courtauld 마피아‘라는 농담까지 있다고 하니 그 위상을 알 수 있다. University of London에 속하며 바로 옆에는 King’s college가 있고 법조단지가 시작하는 초입에 자리하고 있어서 무게감이 더 느껴진다. 1775년에 건축가 Wiliam Chambers가 King George lIl를 위해 설계한 웅장한 건물인 Somerset House는 1779년 북쪽 윙에 The Royal Academy of Arts가 입주해 있다가 1857년에 피카딜리로 이사를 나가고, 1989년에 The Courtauld Institute of Art가 북쪽윙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Courtauld 컬렉션은 1932년 설립된 이후 Fareham의 Lord Lee (외교관이자 수집가), Samuel Courtauld (사업가이자 예술 후원가), Sir Robert Witt (수집가이자 변호사)를 비롯한 20세기 최고의 개인 수집가들의 선물과 유증으로 성장하고 발전하였다. 개관할 때 그대로의 모습으로 있던 갤러리는 2018년부터 3년간 문을 닫고 리뉴얼 프로젝트를 5,700만 파운드의 비용을 들여서 진행했다. 예정에 없던 코로나랑 공사 기간이 겹치게 되었고 2021년도 11월에 재개관을 하였는데 공사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가지이다. 이렇게 큰 자금을 끌어다 썼는데 도대체 어디에 썼냐고 할 정도로 공사한 티가 안 난다고 질타를 받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인인 내 눈에도 그다지 달라진 모습을 느낄 수 없었다. 기존의 분위기는 샹들리에가 있는 고풍스러움을 풍겼고 그 느낌도 나쁘지 않았지만 인상파 그림들을 많이 갖고 있다 보니 내부 인테리어와 그림이 안 어울리긴 했었다. 옛 건물의 내부를 속시원히 뜯어 내고 고칠 수 없는 유서 깊은 건물이기에 제약을 피해 가며 최소한으로 내부의 벽과 천장을 모던하게 바꾸고 케이블과 전선 등을 다 숨기고 조명은 그림이 돋보이도록 바꾸면서 인상파 그림과 포스트모더니즘 그림들에 걸맞은 환경으로 바꿔준 게 공사의 제일 큰 목적이었을 듯하다. 제일 위층의 LVMH 그레이트 룸은 런던에서 가장 오래된 전시공간으로 1779년 당시 전시하던 모습이 그림으로도 남아있고, 이번 리뉴얼로 The Courtauld Gallery의 자랑인 인상파 그림들이 이 방에 걸리게 되었다. 공간은 작지만 작품 리스트는 최고의 미술관으로 인정받을 만하게 갖춰져 있다.
Edouard Manet의 그림 <A Bar at the Folies-Bergères, 1882> 그림은 자세히 보면 재밌다. 앞에 서있는 여자의 이름은 Suzon이다. 그녀의 시선은 정면 아래를 향하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만히 서있다. 뒤에 거울에 비치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녀 앞에 펼쳐져 있는 바의 모습니다. 그녀가 어떤 신사를 응대하고 있는 모습이 거울에 비친다. 그런데 그녀의 정면 모습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는 분위기이다. 화면 위의 가장 왼쪽을 보면 초록색 신발을 신고 누군가가 위에서 서커스 묘기를 보여주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너무 자세히 들여다보니 헷갈리기 시작한다. 뒤에 있는 게 거울이 아니고, 바로 뒤에서 손님을 응대하고 있는 여자는 다른 사람인가, 뒤쪽으로도 사람들이 앉아있고 서커스를 관람하고 있나, 그리는 건 작가 마음이고 그림을 읽는 건 내 마음이지.
1920년대에 영국의 산업가이자 자선가인 Samuel Courtauld(1876-1947)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인상파 및 후기 인상파 컬렉션들을 수집했다. 그는 예술품 수집 이상으로 예술을 통해서 사회 발전을 시킬 수 있다는 열정으로 가지고 1932년에 The Courtauld Institute of Art를 설립하고 이 학교는 영국에서 미술사와 보존을 가르치는 최초의 고등 교육기관이 되었다. 그는 또한 국가에 £50,000의 신탁기금을 후원하여 현재 The National Gallery에서 소장하고 있는 반고흐의 해바라기를 비롯하여 Manet, Renoir, Seurat, Degas 등의 작품을 구입하는 데에 공헌한다.
2021년의 재개관 후 제일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나선형 계단 위에 걸려있는 현대 추상화였다. 이 작품은 현역으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영국 태생의 Cecily Brown의 작품인 <Unmoored From Her Reflection, 2022>이다. 곡선벽을 위해서 특별히 제작되었고 영원히 이 자리에 있을 계획은 아니고 3년 간만 전시 할 거라고 한다. 천장의 유리돔을 통하여 들어오는 햇살이 참 좋다. Somerset House 건립 당시부터 있던 화려한 파란색의 나선형 계단과 초록색과 남색톤인 추상작품은 클래식과 모던함의 조합으로 잘 어우러진다. 1969년생인 그녀는 Slade School of Art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졸업 후에 바로 뉴욕의 Gagosian Gallery와 계약을 하며 런던을 떠나 뉴욕에서 추상표현주의 화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 옆에 방에는 현대화 3점이 있는데 이 작품이 신선한다. 오스트리아의 표현주의 화가 Oskar Kokoschka (1886-1980)의 3부작 <Prometheus의 신화> 작품이 걸려있는데 가로길이가 8m나 된다. 10여 년 동안 전시를 못하던 이 작품을 이번 리뉴얼을 통해서 걸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1950년에 Courtauld의 가장 중요한 후원자 중 한 명인 Antoine Seilern 백작이 런던 자택의 응접실 천장을 위하여 작가에게 의뢰했던 작품이다.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시대에 고전 신화와 성경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종말의 장면과 희망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빈에서 활동한 Oskar Kokoschka는 클림트의 제자였고 에곤쉴레와 함께 빈의 모던 미술을 이끌었다. 그러나 클림트와 에곤쉴레는 스페인독감으로 1918년에 일찍이 사망하고, Kokoschka 홀로 격동의 세계대전을 겪게 된다. 나치는 그를 퇴폐예술가중에서 최고 등급으로 매기며 그의 작품 417점을 압류하고 탄압한다. 그는 1934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체코 프라하로 망명을 하게 되고, 1938년에는 프라하에서 만난 Oldřiška "Olda" Kokoschka(1915–2009)와 함께 다시 영국으로 망명하고 런던의 지하대피소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이 당시에는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유화보다는 수채화를 많이 남기게 된다. 전쟁 후에 영국 국적을 획득했으나 스위스에 정착하고 회화뿐만 아니라 오페라 무대 세트 디자인 등 다양한 예술활동을 활발하게 하며 93세에 생을 마감한다. 그는 80세가 돼서야 고국의 국적도 회복했으나, 나치 탄압의 트라우마 때문일까 끝까지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의 인생여정의 고단함 만큼이나 초상화에 깊이가 느껴진다. 단순히 얼굴만 잘 그린게 아니고 대상의 내면과 영혼을 만지는 그림을 그렸다. 그는 Pablo Casals 등의 유명인사들의 초상화를 많이 남겼다. 그의 작품에서 인물의 형태는 느슨하게 표현되지만 강렬하고 눈부신 색과 풍부한 선으로 대상의 움직임을 포착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가 그린 인물들은 역동적으로 느껴진다. 이곳에 걸려있는 3점의 Prometheus속의 인물들도 자세히 보자. 인물들은 배경과 섞인 듯이 보이지만 완전히 녹지 않았고 그렇다고 추상적으로 그리지도 않았다. 그는 추상화에는 반대했다.
많은 작가들의 연애 스토리는 작품에 직접적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때로는 작가가 연인에게 휘둘렸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큰 영향을 받기도 한다. 이 작가의 젊은 시절 연애사도 꽤나 유명하다. 그는 1912년인 26세에 7살 연상의 Alma Marhler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작곡가인 Gustav Mahler의 미망인으로 젊었을 때부터 이미 빈에서 유명한 뮤즈였다. 이 둘은 1912년부터 1914년까지 세상이 떠들썩한 연애를 했다. 수많은 초상화에 그녀가 등장하고 그녀로부터 영감을 얻어 450여 점의 작품을 그녀에게 바친다. The Wind's Bride (The Tempest)는 두 여인의 모습이 담긴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고 현재 바젤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그림에서는 그녀와 함께하고 있지만 Kokoschka의 불안함이 전달되는 듯 소용돌이치는 파란 물감이 인상적이다. 그의 불안감이 적중하였는지 3년간의 사랑 끝에 Alma가 변심을 하자 그는 충격을 받고 제1차 세계대전에 자원 입대한다. 그는 불행하게도 전쟁에서 머리 부상등 두 번의 중상을 입게 되며, 전쟁 후에는 드레스덴에서 후유증으로 인한 우울증을 치료하며 요양을 한다. 1919년에는 드레스덴 아카데미의 미술 교수로 자리를 잡고 그곳에서 꽤 오래 머무르며 세계여행을 하며 풍경화를 많이 그려낸다.
Kokoschka는 Alma와 헤어진 후에도 인정할 수 없었는지 알마와 닮은 실물크기의 인형을 주문한다. 그는 인형에게 맞춤속옷부터 옷을 제작해서 입히고 카페와 오페라 공연에도 데려가 옆자리에 앉혀두며 일상을 함께한다. 인형은 관능적이지 않고 덥수룩한 북극곰 같은 느낌이어서 처음에는 그가 싫어했으나, 그는 그 인형에게 다양한 포즈를 취하게 하며 80여 개 이상의 그림과 드로잉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1920년대 초에는 인형이 자신의 열정을 완전히 치료해 줬다고 인형을 목을 베는 살해 행위를 하며 이별을 하게 된다. Alma의 70세 생일에는 편지도 보냈다고 하는데, 이 사실을 알았을 부인은… 참 착하구나.
잠시 얘기를 Alma Marhler (1879-1964)에게로 돌아가보자. 역사적으로 눈에 띄는 대단한 여자들이 있는데 Alma도 빼놓을 수 없는 뮤즈였다. 그녀에 대한 스토리를 찾다 보니 <15 of the Most Scandalous Women in History>라는 기사가 있었는데 당당히 그 안에도 들어가 있었다. 본명은 Alma Schindler였다. 아버지는 당시 오스트리아에서 유명한 화가 에밀 야곱 쉰들러였다. 오스트리아 황태자 루돌프가 의뢰할 정도로 유명한 화가였다. 새아버지도 화가였어서 그의 주변에는 늘 예술가들과의 교류가 있었다. Alma도 작곡가로 자라면서 타고난 미모와 지성으로 빈에서 유명했고 선망의 대상이었다. 이에 걸맞게 그녀는 쉼 없이 사랑에 빠진다. 자잘한 연애는 다 빼고 굵직한 연애만 살펴보면 일단 17세에 Gustav Klimt와 사랑에 빠진다. 그녀의 첫 키스 상대는 클림트였고, 그녀가 그 유명한 <키스> 그림의 주인공이라는 설도 있다. 23세에 19세 연상인 전설의 작곡가 Gustav Mahler와 결혼하지만 남편에게 작곡가로서 인정받지 못해서 우울감을 느낀다. 1911년 5월 Mahler가 지병으로 사망하면서 1912년부터 1914년에 Kokoschka과 불같은 연애를 한다. 그러나 그녀는 Kokoschka의 소유욕을 거부하고 Mahler와의 결혼 생활 중에 바람을 피웠던 상대인 바우하우스를 창설한 건축가 Walter Gropius와 1915년에 재혼을 하고 짧은 결혼생활을 하는데, 이혼 전인 1917년부터는 시인이자 작가인 Franz Werfel을 만나기 시작한다. 결국 그 둘은 결혼을 했고 유대인이었던 남편 Werfel과 함께 피레네 산맥을 건너서 미국으로 망명을 한다. 부부는 Los Angeles에 정착을 하고 남편은 소설가로서 성공을 거두게 되며 먼저 세상을 떠난다. 이로써 그녀는 공식적으로 결혼은 3번으로 마무리하고 뉴욕에서 사망한다. 이후 Gustav Mahler가 묻혀있는 빈의 공동묘지에 딸과 함께 묻힌다. 정말 인생이 놀랍지 않은가. 남편 이외의 비공식적인 애인들도 모두 다 최고의 예술가였다. 빈의 대표화가 Klimt와 Kokoschka의 그림에 주인공으로 그려졌고 명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오늘날 평가하기에 그 당시 빈의 대표적인 화가로는 한참 어린 에곤쉴레까지 3명 정도인데 그중에 2명과 연애를 하다니. 속된 말로 항상 양다리 내지는 요즘말로 환승연애 전문가인 것도 탁월한 재능인 거 같다. 커플의 두 초상화를 같이 놓고 보니 확실히 부인과 있을 때의 모습이 더 편안해 보이고, Alma와 연애 중의 모습에서는 행복함 보다는 소유 집착의 불안감이 느껴지는 듯하다.
Somerset House 안에는 12월이 되면 아이스스케이트장이 생긴다. Neoclassical 신고전주의 양식의 웅장한 건물로 사면에 둘러싸이고 스케이트장에 비치는 찬란한 조명의 조합이 너무 예쁘다. 스케이트 링크에서 나오는 Rick Astley의 Never Gonna Give You Up (1987) 노래는 전혀 30년 전 노래스럽지가 않다. 딸한테 이 노래 아냐고 물어보니 당연히 모르더라. 조명이며 노래며 대학 시절에 가본 나이트클럽 생각이 났다. 특별히 2022년 12월 31일에는 코로나가 끝나고 3년 만에 New Year’s Eve fireworks가 있었다. London Eye 근처에서 폭죽을 터트리는데, 한 장소에 몰려서 관람하면 위험하니 여러 군데에서 분산해서 관람할 수 있도록 사전 예약을 받는데, 그중에 한 장소가 Somerset House의 템즈강 쪽 발코니이다. 미리 티켓을 판매해서 인원수 조절을 하기 때문에 안전함을 느끼며 불꽃놀이를 볼 수가 있었다. 안전과 여유로움을 돈 주고 살 수 있다니 너무나 자본주의스럽다. 아이스링크 옆에서 샴페인도 마시고 그 잔을 들고 발코니로 나가서 불꽃놀이를 보며 2023년도를 맞이했는데 이것 또한 겨울 여행의 묘미인 거 같다. 말위에 올라탄 런던 경찰들은 너무나 멋지다. 겨울여행 연말여행을 온다면 아이스링크도 꼭 즐겨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