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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 golden age Jul 23. 2023

The Wallace Collection 윌리스 컬렉션

런던: 공주님의 초상화

The Wallace Collection (20231203)


이름도 영국 스러운 런던의 Bond street. 많이들 좋아하는 곳일 거다. 피카딜리 쪽으로는 명품거리가 이어지고, 옥스퍼드 스트리트에는 유명 백화점들이 나란히 포진하고 있어 사랑받는 곳이다.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백화점. 게다가 나의 직업은 백화점을 채워주는 해외 바잉 MD였다. 나는 내 직업을 무척 사랑했다. 회사를 그만둔 후에도 시즌이 바뀔 때마다 신제품을 보며 스스로 시장조사를 하는 게 몸에 배었다. 전공과 상관없이 이끌리는 곳으로 방향을 잡았고 좋아하는 분야가 직업이 된 운 좋은 케이스였다. 직업적으로는 의류에 한정되어 있었지만, 침구류와 식기류, 식품까지 자랑은 아니지만 스스로 모든 분야를 깨우쳤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체질도 바뀌는지 백화점 출입을 멀리하게 되었다. 일반적인 남성들처럼, 이제는 무척 힘든 공간으로 느껴진다. 그러다가 알게 된 New Bond Street의 갤러리들. 꼭 그림을 사지 않아도 그냥 당당하게 들어가서 작품을 감상하고 직원에게 질문도 해도 된다. 운 좋으면 비밀스러운 방까지 안내되어 다른 작품들도 보여주며 자세히 설명해 준다. 나는 잠재고객이니까^^. 그러다 보니 눈에 들어오는 그림들이 있고, 이 작품은 좀 팔릴 거 같다는 느낌이 든다. 내 마음속으로 점찍어둔다. 다음 기회에 또 다니다 보면 그 작가의 작품이 반갑게 눈에 들어오고 가격이 많이 오른 것을 발견할 때, 비록 지난번에 구매는 못했으나 무척이나 뿌듯하게 와닿는다. 나의 안목을 스스로 확인받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New Bond street에는 갤러리가 많다는 얘기였다. 백화점 뒤쪽으로 한 5분 정도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너무나 멋진 하우스가 나오는데, 그곳이 The Wallace Collection이다. 백화점을 뛰어넘어야 발견할 수 있는 곳, 나는 이곳의 존재조차 모르다가 뒤늦게 알게 되었다.




월리스 컬렉션에서는 18세기와 19세기에 영국 귀족 가문이 5대에 걸쳐 수집한 가문의 유산인 예술품을 전시하고 있다.  Hertford 후작 가문은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가문 중 하나였는데 그들은 잉글랜드, 웨일즈, 아일랜드 등에서 결혼을 통해서 부를 키워갔다. 약 5,500점의 예술 작품으로 구성된 월리스 컬렉션은 1900년에 Hertford House에서 박물관으로 개관했다. 하우스가 너무 크지도 않고 아담하니 고급스럽다. 내부는 더 고급스럽고 화려하다. 화려한 벽지와 가구들, 예술품들을 보면서 사람이 한평생 살면서 이렇게 물질적인 호사를 누릴 수도 있구나 싶다. 또 한편으로는 그 호사를 위해 평생 작업한 장인도 있었을 거고. 어느 쪽이든 귀한 삶이었을 거라 생각해 본다.




네덜란드, 프랑스, 이태리, 스페인 등 다양한 유명 작가의 작품들을 골고루 가지고 있다. 특히 네덜란드 황금기 작가들의 작품도 골고루 가지고 있으니 특징을 알고 보면 더 재미있다. 이 미술관의 컬렉션 중에 로코코 시대의 프랑스 작가의 <The Swing, 1768>이라는 작품이 유명하다고 해서 기대를 하고 찾아보았다. 콘솔 위에 걸려있는 작품을 발견했는데 그림의 크기는 자그마했다. 가까이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림이 참 예쁘다. 동화 속의 한 장면처럼 사랑스럽게 그려졌다. 언뜻 보면 예쁜 그림이긴 한데, 그림의 내용을 공부해 보니 아름다움과는 전혀 동떨어지는 경박함이 무척 흥미로웠다. 이 그림은 로코코 시대의 유행 같았던 불륜과 삼각관계를 묘사하고 있었다. 그네를 타고 있는 젊은 색시의 나이 많은 남편이 뒤에서 그네를 밀어주고 있다. 여자는 신나게 그네를 타며 덤불 앞에 숨어있는 애인에게 눈길을 주고 있다. 그네가 왔다 갔다 할 때마다 뒤에 있는 뒷방늙은이 같은 남편을 등지고, 열애 중인 애인에게 다가가려고 하는 모습이다. 얼마나 신이 났는지 예쁜 신발까지 허공으로 날아갔다. 늙은 남편 앞에 있는 작은 강아지는 숨어있는 애인을 보고 짖기 시작하고, 왼쪽에 큐피드 조각은 입에 손을 대고 쉿 하며 강아지를 조용히 시킨다. 이 비밀스러운 상황을 지켜보자고 하는 듯하다.




작가인 프랑스 화가 Jean-Honoré Fragonard는 외설적인 장르화와 연애의 풍경을 주로 그렸다. 장르화 외에도 풍경화, 초상화, 종교화등 다양한 유화를 550여 점이나 남겼는데, 날짜를 기록한 작품이 다섯 여점밖에 되지 않아서 진위 여부의 논란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의 그림은 대체로 여유롭고 사랑이 넘치며 즐거워 보이는데, 네덜란드의 풍속화와는 좀 다르게 남녀관계와 에로티시즘을 전달하려는 풍속화이다. 좀 도발적이라고 해야 하나. 사회를 풍자하거나 낯 뜨거운 장면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처음부터 음탕한 풍속화를 그린 건 아니었다. 어떤 분야에 집중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으나, 루이 15세 때에는 부유한 예술 후원가들이 방탕한 사랑과 음탕함을 즐기던 때라 관능적인 장면을 그려달라고 요청해 왔기 때문에 그는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이 당시 유행하던 로코코 미술은 화려하고 우아하고 섬세하고 장식성이 강했는데, 이 형용사들로 The Swing은 충분히 설명된다. 이 그림을 모방한 작품들도 있고, 발레, 시, 음반커버, 뮤지컬등에도 파생되었다. 특히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에서도 그네를 타다가 신발이 날아가는 장면은 패러디되었다.



작가의 다른 작품인 <The Stolen Kiss, 1787>,  < 빗장 (Le Verrou ),  1777> 도 같은  풍으로 흥미롭다. The Swing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냥 예쁜 동화의 한 장면으로 보이지만, 이 두 작품은 대놓고 도발적이고 비밀스러운 로맨스의 한 장면 같다. 그림 속에서 빗장을 잠그는 남성의 손도 놀랍고, 이 장면을 포착해 내는 작가의 상상력도 대단하고, 이런 풍을 좋아하는 귀족들 모두 다 흥미롭다. 이들 모두 다 지금 너무 즐기는 거 같다. 곧 닥칠 귀족사회의 몰락과 어려움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본능에 충실하게 현재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 불안하고 아슬아슬하다.


The Stolen Kiss (1787)Hermitage Museum, Saint Petersburg


Le Verrou, (1777) The Louvre


이어지는 화려한 방들을 지나가다가 한 소녀의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높은 위치에 걸려 있었는데, 프라도 미술관에서도 만난 적 있는 그 유명한 Margarita Teresa 공주의 초상화였다. 이때 한국에서는 오스트리아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빈미술사박물관과 함께 기획된 특별전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이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었고 Margarita Teresa (1651-1673) 공주의 초상화를 가져와서 대대적으로 홍보를 하고 있었는데, 그 초상화랑 아주 비슷한 그림이 이곳에도 전시되어 있는 거였다. 도대체 이 작가는 Margarita Teresa 공주의 그림을 몇 점이나 그린 걸까 궁금해져서 찾아보았다. 화가 Diego Velazquez(1599-1660)는 스페인의 세비야에서 태어났고, 1623년부터 스페인 왕 펠리페 4세의 궁정 화가가 되어 왕가의 초상화를 많이 그렸다.



너무나 유명한 그림인 <Las Meninas, 시녀들>을 그리기 전에 연습 삼아 그린 건가 궁금하기도 했다. 작가는 1654년, 1656년, 1659년에 공주의 2세, 5세, 8세 모습을 6점 정도 남겼다. <Las Meninas, 시녀들>의 주인공으로 그려진 공주는 당시 5세 정도였다. Margarita Teresa 공주는 스페인이 가장 부흥했던 시기의 통치자인 Philip IV (1605-1665)와 그의 두 번째 부인인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의 Mariana (1634-1696) 왕비 사이에서 태어난 첫째 아이였고, 당연히 당대 최고의 궁정화가인 Velazquez에게 어린 공주의 초상화를 의뢰했다. 작가가 <시녀들>을 유명하게 만들어준 덕분에 공주는 더욱더 우리에게 친숙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한 사람이 된 거 같다.



당시 합스부르크는 스페인과 오스트리아를 나눠서 통치하고 있었는데, 부부의 몇 안 되는 생존 자녀 중 한 명이었던 Margarita 공주는 엄마의 남동생, 즉 외삼촌인 신성 로마황제 Leopold I 세 (1640-1705)와 15세가 되던 해인 1666년에 결혼한다. 어린 나이인 3세 때 이미 정략결혼이 결정되었기에 남편이 될 왕에게 공주가 잘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하여 때마다 초상을 그려서 보냈다. 잘 알려진 대로 주걱턱을 감안해서 그렸을 텐데 공주가 성장하며 주걱턱은 점점 숨길 수가 없었나 보다. Velazquez 사후에 다른 작가들이 그린 공주의 초상화도 있는데, 그 그림들에서는 훨씬 더 주걱턱이 심하게 표현되어 있고 공주의 전체적인 분위기도 다르다. Velazquez 그림 속에서 성장하고 있는 공주는 총명해 보이고 아름답게 잘 커가고 있다. 공주의 초상화를 비엔나로 보냈기 때문에 주요 초상화들은 비엔나 궁정에서 소장하게 되었고, 우리는 스페인이 아닌 비엔나로 가야 여러 점을 만나 볼 수 있다. 이 미술관에서도 본 것도 같고 저곳에서도 본 것도 같은 헷갈림 속에서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이 기회에 정리를 해본다.


1번 2번

1번) 1653-1654년에 제작. Infanta Margarita Teresa in a Pink Gown. 2세 때 모습.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 소장


2번) 1654년 제작. 3세 때 모습. Musée du Louvre 소장


3번 시녀들
(왼쪽) 확대함    (오른쪽) Morimura가 재해석한 시녀들 사진작품

3번) 1656년 제작.  <Las Meninas, 시녀들> 3.18m x 2.76m 대형작품이다. Prado Museum 소장.

아래 사진은 Yasumasa Morimura가 재해석한 <Las Meninas Reborn in the Night> 사진작품 (2013)으로 오리지널 시녀들 그림 속 주인공들이 모두 그림 밖으로 나와있다. 아이디어가 재밌다.


4번 5번

4번) 1656년 제작.  <시녀들> 이후에 그린 초상화. <시녀들>에서와 같은 드레스를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리는 김에 한 점 더 그려서 비엔나의 Leopld I 세에게 보낸 거 같다. 5세 때 모습.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 소장. 이 작품이 작년에 한국에 다녀갔다.


5번) 1656년 제작. 비엔나로 보내진 전신 초상화와 (4번 그림) 비슷하게 그려졌으나 전신상은 아니다. 마드리드 주재 총영사 John Meade (1775-1849)가 처음으로 수집했고, 이후 여러 차례 소유주가 바뀐 뒤에 1852년에 4대 허트퍼드 후작이 인수해서 이곳 The Wallace Collection에 자리 잡게 되었다. 3번, 4번, 5번 그림은 어린 공주가 어렵사리 한차례 모델로 서준 것으로 여러 점을 그렸나 보다. 스페인 소장용 초상화 (5번) 스페인 소장용 가족 그림 (3번) 그리고 비엔나에 보내기 위하여 작업한 초상화(4번)이지 않았을까.


6번 7번

6번) 1659년 제작. Infanta Margarita Teresa in a Blue Dress. 8세 때 모습. Velazquez가 죽기 1년 전인 1659년에 제작된 마지막 그림 중 하나이다.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


7번) 1660년 제작. Infanta Margarita Teresa in a Pink Dress. Velazquez의 후기 작업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페인팅 스타일이 이 살구색 바로크 드레스에서는 좀 부족하게 다루어졌다는 평이다. Velazquez에게 후계자는 없었지만 그의 사위인 Juan Bautista Martínez del Mazo (1612년 추정-1667년)를 그의 제자로 볼 수 있는데, 이 그림의 작가는 Velazquez 일수도 있고 Juan Bautista del Mazo 일 수도 있다. Prado Museum 소장.


1층에 전시되어 있는 무기와 갑옷 컬렉션은 오늘날 세계 최고의 컬렉션으로 인정받고 있다. 유럽에서 가져온 것들 뿐만 아니라 인도, 중동, 옛 오스만 제국의 땅과 극동 지역에서 갑옷과 무기들을 사들였다. 또한 나폴레옹 3세의 미술부 장관이자 루브르 박물관의 관장인 Alfred Emilien de Nieuwekerke 백작의 컬렉션과 선구적인 무기 수집가이자 학자인 Samuel Rush Meyrick 경의 컬렉션을 구입하면서 컬렉션을 완성했다. 15세기, 16세기, 17세기의 부유하고 강력한 귀족들은 전쟁뿐만 아니라 창시합이나 축제에서 사용하기 위해서 아름답게 장식된 무기와 갑옷을 소유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훌륭한 무기와 갑옷은 예술 작품으로도 여겨지며 수집되었다. 수집된 무기들 중에는 프랑스의 루이 13세와 루이 14세, 러시아의 차르 니콜라스 1세를 포함한 유럽 통치자들을 위해 만들어질 정도로 수준 높은 작품들도 많이 있다. 신기하게도 말에게 입히는 갑옷도 있었나 보다. 말이 저 갑옷을 입고 뛸 수 있었을까. 궁금하다…




건물의 뒤쪽으로 Afternoon tea 카페가 연결되어 있는데 스콘도 너무 맛있고 브런치 정도 하기에 좋은 곳이다. 박물관에는 관람객이 그렇게 붐비지도 않고 조용조용한 분위기이다. 이렇게 좋은 곳이 100년 넘게 조용하게 오랜 시간 자리 잡고 있었다니 참 풍요로운 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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