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대영박물관의 스몰버전
London Sir John Soane’s Museum (20221214)
2022년 12월, 런던도 이상기온 영향으로 한파가 온다고 하더니 제법 춥다. 영상과 영하를 오가는 정도인데도 바람이 매섭고 손끝이 시리지만 하늘은 파랗고 걸을만하다. 서울에는 눈이 왔고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가는 날씨가 많은 거에 비하면 이곳 런던은 활동하기에 괜찮은 겨울이다. 리사의 추천으로 Sir John Soane의 뮤지엄으로 향했다. 홀본역에서 가깝다. 박물관 바로 앞 Lincoln’s Inn Field 공원에는 며칠 전에 내린 눈이 쌓여있고 강아지들을 데리고 나온 사람들이 종종 보이는 평화로운 동네이다. 이 공원은 강아지들이 목줄 없이 뛰어놀 수 있는 곳이라서 런던에서 키우는 우리 반려견 루비도 이곳까지 종종 산책을 나온다. 공원을 둘러싼 주택들이 참 분위기 있다. 창문마다 크리스마스트리가 보인다. 집안에서 내려다 보이는 공원뷰는 얼마나 좋을까…
공원을 남쪽으로 보고 있는 집들 중 중간정도에 위치한 뮤지엄의 주소는 13 Lincoln’s Inn Field이다. 올리브색 현관문의 초인종을 누르면 안내인이 문을 열어주고 뮤지엄 입구까지 안내해 준다. 실내 정원은 90명까지이고 인원이 다 차면 밖에 대기줄을 서서 입장 순서를 기다리기도 한다. John Soane경은 (1753년-1837년) 신고전주의 스타일로 많은 업적을 남긴 영국의 건축가이다. 왕립 아카데미에서 건축학 교수를 하고 Office of Works의 공식 건축가가 되면서 최고의 자리까지 오르고 1831년에는 기사 작위도 받은 역사적인 인물이다. 그의 대표 건축 작품으로는 영국은행과 영국에서 최초로 갤러리 목적으로 지은 Dulwich Picture Gallery, 그리고 영국총리실로 유명한 다우닝가 10번지 등이 있다. 런던뿐만 아니라 더블린에도 건축물이 남아있고, 웨스트민스터 홀의 법원과 궁전의 부속실등을 건축했으나 모두 소실되었다. 안내원은 관람객들이 1층에 몰려있으니 지하층부터 내려가서 보라고 권한다. 지하로 내려가니 그리스와 로마의 청동 조각품, 납골 항아리, 로마 모자이크 조각품, 그리스 꽃병, 그리스와 로마의 흉상과 두상 등 많은 수량의 고대 조각품들로 그의 경험과 재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런던에 이런 곳이 있다니 놀랍기 그지없다. 기존의 박물관 형태랑은 다르게 실존 인물이 직접 혼을 담아 가꾼 공간이라고 생각하니 그 무게감이 느껴졌다. 빽빽이 들어차 있는 고대 조각품들을 행여라도 건드릴까 봐 숨조차 크게 쉴 수 없이 발끝으로 조용조용 이동하며 조심스레 관람한다.
1778년 청년시절에 그는 인재로 발탁이 되어서 그랜드투어를 시작했고 최종 목적지는 로마였다. 로마, 나폴리, 폼페이, 시칠리아, 볼로냐, 베로나, 비첸차, 베니스, 밀라노 등을 여행하며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의 건축물을 탐구했다. 덴마크도 그렇고 국가적 차원에서 예술원에서 인재를 양성할 때에는 국비장학생을 선발해서 이태리로 유학을 보내는 공통점이 있는 게 눈에 띈다. 그만큼 이태리의 예술 문화 수준은 월등했던 거고 주변 국가들도 인정하고 배우고자 했나 보다. 그 당시 그가 그린 건축 디자인의 스케치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오늘날의 도면들과 별반 차이 없어 보이는 수학적으로 계산된 정교하고 섬세한 디자인을 볼 수 있다.
하이라이트는 지하층 Sepulchral Chamber에 전시되어 있는 이집트 파라오의 실물크기 석관이다. Seti I의 석관은 1817년 이탈리아 탐험가 Giovanni Battista Belzoni 가 이집트 왕가 의 계곡에 있는 KV17 무덤에서 발견한 제19왕조 파라오 의 실물 크기 석관이다. 세티 1세는 기원전 1279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이 석관에는 미라가 보관되어 있었을 것이다. 대영박물관이 Belzoni가 제시한 가격이 높다는 이유로 구매를 거절한 후 1824년에 존손경이 £2000에 구입했다고 한다. 3000년 이상된 이 석관은 영국에서 소장하는 유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이다. 왕의 석관이 어떻게 이집트 밖으로 나왔을지도 궁금하고, 크기와 무게를 가늠해 보며 지하에 어떻게 넣었을까 또 한 번 감탄을 한다. 기중기를 사용했을까, 어떻게 집안의 지하층까지 들여왔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John Soane경은 1792년에 12번지를 구입해서 거주지로 사용했고 1812년에는 13번지를 추가로 구입해서 거주지 겸 사무실로 사용했다. 그는 점점 늘어나는 골동품과 건축 관련 도면등의 컬렉션을 보관을 위하여 14번지까지 구입했고 주택을 박물관으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리모델링했다. 세티석관이 1825년 3월 그의 집에 도착한 후에 John Soane경은 3일간 파티를 열었고, 외국의 고위 인사들까지 890명을 초대했다고 한다. 같은 시기에 12번지와 13번지의 외부를 재건했다는 기록으로 보아서, 이 석관을 들여놓기 위해서 출입구 쪽을 재건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 엄청난 석관을 중심으로 2층까지 고대 그리스 로마의 유물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1층에는 picture room이 있고, 통로에도 William Hogarth의 작은 작품들도 눈에 띈다. 이 방에서 가장 중요한 그림들 중에는 William Hogarth의 두 개의 시리즈 작품인 A Rake's Progress와 An Election이 있다. 초기 시리즈인 'A Rake’s Progress'는 규모가 작고 구성도 매우 정교하게 칠해져 있으며 Hogarth의 가장 위대한 걸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An Election'보다 훨씬 단순하다. 'An Election‘은 1824-25년에 이곳에 설치된 이래로 이 방에서 6번도 채 이동하지 않아서 훌륭한 상태이다. 외국 출신의 화가인 한스홀바인, 안토니 반 다이크 등을 제외하고는 눈여겨 볼만한 영국 화가가 없던 화가 불모지에서 18세기가 되면서 영국의 독자적 스타일을 가진 국민적 화가가 나왔으니 그가 William Hogarth이다. 그는 사회 풍자적인 그림을 유쾌하게 그리면서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부패한 귀족세계의 허를 찌르고 상류층으로 진입하려고 술수를 쓰는 부르주아들, 탐욕스러워 보이는 부패한 성직자들, 가난에 찌든 하류층의 사람들, 술 취한 남자들과 흥정하는 여자들의 모습을 날카롭게 묘사하며 교훈을 주려고 했다.
그의 작품 중 유명한 An Election 시리즈 4점이 다 이곳에 있다. An Election Entertainment-Canvassing fo Votes-The Polling-Charing the Member의 제목으로 되어있다. 1755년에 제작된 유화작품은 의회선거에서 만연한 부패를 보여주고, 보수당의 승리와 지지자들의 축하파티를 묘사하고 있다. 우리가 영국의 정치 역사까지는 다 알 수 없지만, 첫 번째 그림은 선술집에서 후보자와 지지자들의 함께하는 선거유세 정도 되는 거 같다. 두 번째 그림의 제목은 투표를 위한 여론조사인데 여관 주인에게 뇌물을 주는 모습과 그것을 바라보는 주변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세 번째 그림은 득표율을 높이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상당하고 죽어가는 사람들까지 끌고 와서 투표를 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네 번째 그림은 승리한 보수당 의원의 행진과 함께 아수라장이 된 상황이다. 이 작품은 잉크에칭 버전으로도 재현되어서 다른 박물관에서도 볼 수 있다.
A Rake's Progress의 Rake는 rakehell의 줄임말로써 방탕한 남자를 뜻하며 난봉꾼의 몰락 정도로 해석하면 될 거 같다. Hogarth는 이 시리즈를 1734년에 유화로 그렸는데, 원래는 1735년에 제작한 판화 준비과정에서 그려진 그림이다. 시리즈는 주인공인 Tom Rakewell가 도박, 술, 여자, 사치에 빠져서 물려받은 재산을 탕진하고 빚을 지고 몰락해 가는 과정을 8개 그림으로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주인공은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으며 부자가 되었으나 환락에 빠져 매춘부들과 술에 취해 떠드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재산을 탕진한 후에 빚을 갚기 위해서 나이 많고 부유한 여성과 결혼하고 하녀와 외도를 하며, 또다시 재산을 탕진한 후에 감옥에 가고, 병에 걸려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예나 지금이나 막장 소설의 주제는 변함이 없는가 보다. 이 스토리는 1935년에 발레로 제작이 되었고, 이후에 영화로도 두어 번 제작이 된다. 1947년에는 시카고에서 Horgath의 Rake 판화 시리즈를 보게 된 유명한 러시아 작곡가 Igor Stravinsky에게 영감을 주어 오페라로 제작이 되고 1951년에 선보인다. Rake의 8가지 요소는 오페라 주제로 너무나 적합한 거 같다. 또한 이 판화에는 또 다른 반가운 이름이 연관되어 있다.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영국화가 David Hockney는 1961년 뉴욕을 방문했다가 Horgath의 Rake 판화 시리즈를 보게 되고,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16개 판화로 탄생시킨다. 재밌는 것은 Hockney가 선택한 주인공은 1960년대 뉴욕에서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젊은 예술가이자 게이 남성이다. 각 판화는 50장씩 인쇄가 되었는데 각 챕터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Horgath의 도덕성과 같은 맥락으로 풍자해 둔 요소요소를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그는 또한 Stravinsky의 A Rake’s Progress 오페라 무대 디자인을 하기도 했고 포스터 제작에도 참여했다. 18세기 영국 화가가 쏘아 올린 공이 -풍자적으로 표현한 그의 도덕적인 입장과 그에 대한 고민—21세기 오페라 무대 디자인과 의상까지 연결되어 있다니 미술은 알면 알수록 재미있다.
North Drawing Room 에는 Soane의 40년 지기 친구인 JMW Turner (Joseph Mallord William Turner)가 그린 해양 그림이 걸려있다. 코벤트가든에서 태어난 터너와 Soane은 런던 중심부에서 서로 가까이에 살았다고 한다. 정기적으로 왕립 아카데미에서 서로의 강의에 참석했고, 템스강에서 함께 낚시를 즐겼으며, 빛과 날씨의 영향에 대한 관심을 공유했다고 한다. Soane의 아내 엘리자가 1815년 11월에 사망한 후 그해 크리스마스이브를 함께 보냈다는 걸로 보아 아주 친한 친구였나 보다. 특이한 점은 이 방의 노란색 벽은 그 당시에 유행했던 색소인 ‘Turner’s yellow’ 색상으로 되어있다. 빛의 화가로 불리는 터너는 유화보다 수채화를 훨씬 더 많이 남겼고, 바다와 하늘을 표현할 때에도 노란색과 흰색을 많이 사용하였다. 특히 오늘날 물감에는 Turner가 태양 빛을 포착하기 위하여 자주 사용하던 노란색과 비슷한 안료에 Turner‘s yellow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사실 이 Turner는 James Turner로 화학자의 이름이라고 한다. 어쨌든 이 벽의 노란색은 터너 그림이 물씬 느껴지는 노란색이다.
그는 부인과 사랑이 깊었나 보다. 큰아들은 일찍 세상을 떠났고 작은 아들과의 불화로 부부사이가 더 각별했을 수도 있다. 1815년에 부인이 먼저 세상을 뜨고 장례를 치른 날 그는 일기에 'The burial of all that is dear to me in this world, and all I wished to live for!'라고 애틋하고 절절한 글을 남겼다. 그는 다음 해에 아내가 묻힌 St Pancras Old Church에 대리석과 Portland Stone으로 부인의 무덤을 디자인해서 완성했다. 이 무덤의 디자인은 훗날 Giles Gilbert Scott의 빨간 전화박스 디자인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작지만 귀한 골동품으로 꽉 차있는 이곳. 집안의 미로 같은 구조도 신비스러움을 더한다.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이나 런던의 대영박물관 같은 거대한 사이즈의 박물관을 안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대형 박물관의 고대 그리스 로마관을 축소해 둔 거 같다. 3000년 전의 이집트 석관을 무슨 경로로 영국인의 개인 집안까지 옮겨올 수 있었는지, 요즘 시대였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그 당시니 가능했겠지만 영국이 파워가 참 여러 방면으로 뻗어 있었나 보다. 개인이 당대에 이 정도로 모으고 채울 수 있었다니 놀랍기만 하다. 사람은 떠나가고 골동품만 남아 있는 이곳, 육신은 사라지고 손길만 남아있어서 차가운 느낌이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