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The Red Studio
SMK – Statens Museum for Kunst (20230108)
덴마크 국립미술관 Matisse <The Red Studio>
앞의 SMK 편에서 언급했듯이 이 미술관의 인상파 컬렉션은 예사롭지 않았는데, 덴마크의 정치가이며 엔지니어이자 예술품 수집가였던 Johannes Rump가 일반인도 예술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1928년에 기증한 컬렉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장품 중에 특히 Matisse의 좋은 작품들도 많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진행된 Henri Matisse (1869-1954)의 <The Red Studio> 전은 내 평생 봐 온 전시들 중에서 최고의 기획전이었다. 이 전시를 주관한 뉴욕 MoMA와 코펜하겐 SMK의 큐레이터들은 참 일할 맛 났겠다 싶다. 얼마나 신나는 큐레이팅이었을까. 이 전시는 2022년 5월부터 9월까지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먼저 전시되었고, 2022년 10월부터 2023년 2월까지 코펜하겐 SMK에서 전시되었는데, 마침 이 기간 중에 방문하게 되어서 운 좋게 만나게 되었다. 이 전시를 통해서 현시대의 큐레이터, 작가의 재능을 일찍이 알아보고 미술사에 영향을 끼친 후원자들, 그리고 작가의 생애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미술업계의 발전에 기여한 가족들의 다양한 역할을 볼 수 있었다.
이 전시회의 대표작품인 <The Red Studio>의 다른 이름은 <L'Atelier Rouge>이다. 이 그림은 파리 인근의 Issy-les-Moulineaux 마을에 있던 마티스의 아뜰리에 내부 모습으로 벽과 바닥 그리고 가구들까지 모두 다 빨간색으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테이블과 의자, 시침 없는 시계, 콘솔등의 가구와 벽에 걸리고 바닥에 놓인 여러 점의 그림들, 몇 점의 조각품, 그리고 도자기 그릇등의 오브제들이 묘사되어 있다. 작가는 후원자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이 빨간색에 대해서 설명을 남겼다. “붉은 황토색보다 조금 더 따뜻한 Venetian red입니다. “ 이 작품은 마티스의 후원자 Sergei Shchukin에게 판매하기 위하여 1911년에 그렸으나 그가 인수하지 않는 바람에, 16년 동안 작가의 소유로 있다가 뒤늦게 판매가 되고, 소유주가 몇 번 더 바뀐 뒤인 1949년에 최종적으로 뉴욕의 MoMA 컬렉션으로 인수되었고, 지금까지 마티스 작품 중 가장 사랑받는 작품으로 남아있다. 페인팅에 있어서 흑백도 자리잡지 않은 시대에 빨간색을 흑백처럼 사용하다니 마티스의 레드는 혁명적인 시도였다.
전시관의 첫 번째 넓은 방에는 그림이 아주 띄엄띄엄 몇 점 걸려있어서 휑한 느낌이었다. 사전 지식 없이 들어갔던 무지한 나는 우선 쓰윽 둘러보았다. 도슨트도 듣지 않고 설명도 읽어보지 않고 대충 둘러보다가 소득 없이 나오는 대참사를 맞을 뻔했다. 옆에서 같이 보던 딸이 나지막이 설명해 주는데, 귀로 듣고 눈으로 보니 이게 보통 전시가 아닌 거였다. 이 한 점의 작품 안에 묘사된 오브제들은 전부다 실제 자신의 작품들을 보고 그린 거였고, 이 오브제 하나하나 전부다 이 방안에 모여있던 거다. 그림 속의 그림들은 1898년부터 1911년 사이 작가가 40세 정도에 만들어진 작품들로, 그림 속의 아뜰리에를 떠나 뿔뿔이 흩어진 후 거의 110년 만에 처음으로 재회하도록 기획된 전시였다. 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정말 그림 속의 그림들이 한점 한점 눈에 들어왔다.
코펜하겐 SMK 컬렉션에서 3점,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컬렉션에서 1점, Wallraf-Richartz-Museum에서 1점, 개인소장품의 그림 1점, 그리고 MoMA에서 가져온 <The Red Studio>까지 총 7점의 그림이 이 방안에 전시되었다. 이 그림 속의 그림 중에서 실존하지 않아서 가져오지 못한 그림은 왼쪽에 큼직한 캔버스의 핑크색 바탕에 누드를 그린 <Large Nude, 1911>인데, 미완성 작품으로 간주하고 작가의 지시대로 사망 후 파괴했다고 한다. 왼쪽의 위에 걸려있는 그림부터 보면 <Nude with White Scarf, 1909, SMK 소장> <Young Sailor II, 1906,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Cyclamen, 1911, Private collection> <Le Luxe II, 1907, SMK> 바닥에 놓인 왼쪽 작은 그림은 <Corsica, The Old Mill, 1898, Wallraf-Richartz-Museum, Cologne> 아래 오른쪽 그림은 <Bathers, 1907, SMK>이다. 그리고 제일 앞쪽에 묘사된 도자기 그릇은 MoMA 소장품이다. 다음방으로 넘어가면 시기별로 작품을 전시해 둬서 마티스의 생애와 화풍의 변화를 돌아볼 수 있었다.
Matisse의 오랜 후원자였던 Sergei Shchukin (1854-1936)은 러시아에서 가장 큰 제조 및 도매회사를 가진 집안의 아들이었다. 당시 러시아 최고 재력가 집안의 후원을 받다니, 마티스에게는 운도 따랐나 보다. Shchukin 집안에는 여러 미술 수집가가 있었는데 Sergei의 형제 Pyotr는 러시아 고대 예술품과 인상파 걸작품을 수집했고, 또 다른 형제 Ivan도 미술품과 책을 수집했다. Sergei는 1897년 파리를 여행하면서 처음으로 Monet의 작품을 구입하였고, 이때부터 미술품을 수집하기 시작한다. 그는 모네, 르누아르, 세잔, 반고흐, 고갱, 앙리루소, 피카소 등 엄청나게 많은 작품을 수집하였고, 특히 오랜 시간 동안 마티스를 후원하였다. Sergei는 이 당시 마티스가 작업한 작품 중에서 <The Red Studio>는 인물이 들어가 있지 않다는 이유로 인수해가지 않고, 대신에 <The Pink Studio>를 선택했다고 한다.
이후 Sergei는 1917년 러시아혁명이 시작되면서 모스크바를 탈출하여 파리로 도망갔고, 남은 생은 이곳에서 지내다가 1936년에 사망하여 프랑스 남부 니스 인근 Cimiez에 잠들게 된다. 그는 모스크바에서 거주하던 궁전 같은 저택과 총 258점의 작품을 집에 남겨두고 떠나왔다. 저택과 미술품들은 통째로 국가소유가 되어서 박물관이 되었다가, 이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Hermitage Museum과 모스크바의 Pushkin Museum에 나누어 소장되었다. 아,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몇 년 전 Hermitage Museum에서 엄청 알차게 수집된 인상파 컬렉션을 보고는 그 규모가 오르세미술관에 견줄만하여 크게 충격을 받았는데, Sergei가 남긴 유산이었다니. 그래서 Hermitage Museum에 마티스방이 있었구나. 특히나 벽 한 면을 가득 채우고 있던 대작 <The Dance, 1910>와 <Music, 1910>은 잊을 수가 없다.
1906년경 마티스는 11세 연하인 파블로 피카소를 만나고 평생 친구이자 경쟁자가 된다. 나중에는 둘 사이가 틀어져서 피카소는 마티스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어쨌든 젊은 시절 그들은 서로의 예술 세계를 논하기 위하여 살롱에 모여 예술가들과 잦은 만남을 가졌는데, 그 모임의 주최는 미국에서 이민온 작가이자 소설가이자 미술 수집가인 Gertrude Stein 거트루드 스테인이었다. 파리에 정착한 Stein의 가족들-남동생 Leo와 Michael, 그리고 Michael의 와이프인 Sarah- 모두는 마티스 그림의 수집가이자 주요 후원자가 되었다. 게다가 미국의 볼티모어에서 온 Gertrude의 친구인 Claribel과 Etta Cone 자매는 마티스와 피카소의 후원자가 되었는데, 100점이 넘는 피카소의 작품과 500여 점의 마티스 유화, 조각, 소묘, 판화, 책 등을 수집하였다. 자매가 50여 년간 수집하여 3000점 이상으로 구성된 Cone collection은 Baltimore Museum of Art에 기증되어서 마티스 작품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이 되었다.
마티스는 꽤 장수한 화가이기 때문에 그의 긴 인생 여정에서 여러 번 화풍이 바뀌게 된다. 말년에는 여러 번의 암 발병으로 건강을 잃게 되어 체력적으로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니, 종이를 오려서 붙이는 작업을 시작한다. 그는 컷아웃에 점점 심취하여 나중에는 벽화 크기만 한 작품들을 남기기도 했다. 어린아이들 작품 같기도 하지만, 이 시리즈는 현대미술의 최정점을 찍은듯하다. 이곳 SMK에 있는 Matisse 룸에는 마티스의 시대별 다양한 회화도 많이 전시되어 있지만, 그의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열정적으로 작업한 컷아웃 기술을 소개한 책 JAZZ도 볼 수 있다. 그의 컷아웃 모티브들은 보면 볼수록 감탄하게 된다. 모티브에 마티즈의 색상을 입히면 어떤 조합으로 구성해도 완벽하다. 포스터로도 판매가 많이 되고 있는 이 시리즈는 수십 년이 지났어도 이 이상 세련될 수는 없는 거 같다.
그는 세계대전을 두 차례나 겪었고, 나치에 의해 예술 활동에 핍박도 받았고, 주변 사람들의 고통도 목격하였으나 끝까지 망명하지 않고 프랑스에 남아서 프랑스인들에게 자부심이 되어주었다. 그의 막내아들인 Pierre Matisse (1900–1989)는 유대인 및 반나치 프랑스 예술가들이 나치에 점령된 프랑스를 탈출하여 미국으로 입국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아버지 Henri에게도 미국으로 망명하라고 간절히 얘기했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 미국에 자리 잡은 Pierre는 1931년에 자신의 갤러리를 뉴욕에 열고, 1942년에 뉴욕에서 망명한 예술가들‘을 위한 전시회를 열어 크게 성공하기도 한다. 1989년에 그가 사망할 때까지 유지되었던 갤러리는 유럽의 작가들을 미국에 소개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는 아버지 Henri Matisse를 포함한 유명한 작가들- Joan Miró, Marc Chagall, Alberto Giacometti, André Derain, Balthus, Leonora Carrington 등을 미국에 소개한다.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쑥대밭이 된 유럽에서 보석 같은 작가들을 찾아낸 그는 세계 경제의 축이 옮겨간 뉴욕에서 그들을 데뷔시킨다. 시대의 흐름을 읽는 그의 능력이 미술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가 싶다. 미국에서 먼저 인정받은 작가들은 거꾸로 유럽으로 그들의 명성이 전해지게 되고, 유럽에서는 뒤늦게 그들의 작품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경우도 많다. Henri의 많은 후손들은 지금까지도 미술계에서 비중 있는 활동을 하고 있다. 프랑스 남부 Cimiez에 그의 전 생애 작품이 소장되어 있는 Musée Matisse에 꼭 한 번 들려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