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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 golden age May 23. 2023

SMK – Statens Museum for Kunst

덴마크: 황금터널을 지나서

SMK – Statens Museum for Kunst

Denmark Golden Age


덴마크 황금기의 작품들은 무게감 있고 점잖고 고요하다. 황금기의 시대적인 배경을 보면 전혀 황금기가 아닌 고통의 시간이었다. 덴마크는 1700년도부터 연속적으로 일어난 대형화재로 도시 전체가 폐허가 되어 남은 문화유산이 없을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고, 전쟁까지 일어나면서 그나마 복구된 도시가 또다시 큰 피해를 입게 된다. 1801년 레덴 전투로 강력한 해군을 잃었고, 1807년 코펜하겐은 영국으로부터 폭격을 당했으며, 1813년 이후에는 경제위기로 많은 회사들이 파산했다. 1814년 노르웨이가 독립한 이듬해에는 덴마크와 동맹 맺었던 국가들이 나폴레옹과 연합하게 되면서 North Atlantic 최고의 위치에 있던 덴마크는 급격하게 쇠퇴하게 된다. 1848년 덴마크에 민주주의가 도입되고, 프랑스혁명의 영향으로 평민의 정치적 참여가 활발해졌고, 코펜하겐 엘리트들은 문화적으로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었다. 이 시대에는 회화뿐만 아니라 조각, 건축, 음악과 발레, 문학, 철학, 과학등 모든 분야에서 근본적인 발전과 창조력이 돋보이는 시기였다. 그 유명한 동화 작가인 Hans Christian Andersen (1805년 ~ 1875년)도 이 시대에 활동하였다. 나라의 상황은 최악으로 안 좋아졌는데, 역설적으로 황금기라. 너무 힘든 상황에서 빛나는 결과물들이 나와서 이 시기를 황금기라고 칭한 게 아닐까.



혼란스러운 환경에 비해 그림이 참 차분한 것이 비현실적이다. 예술의 정체성 확립에 도움이 될 경제적 기반이 따라주지 않았던 시기라 중산층뿐만 아니라 상류층도 예술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고 공공기관에서도 작품을 사들이는 기회가 없었으니 두각을 나타내는 작가도 작품도 나올 수가 없었다. 굳이 필요하면 외국 작가에게 작품을 의뢰하던 때였다. 이런 상황에서 Frederik 5세는 과학 문화 예술을 지원하는 왕립 아카데미와 재단을 설립하고 적극적으로 미술가들을 후원하기 시작했다. 초기 왕립 아카데미의 궁극적인 목적은 궁정에 역사화를 그릴 수 있는 화가를 양성하는 것이었다. 덴마크는 오랫동안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영향 아래에 있었고, 18세기까지는 외국 화가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기에 국가적 차원에서 덴마크 화가를 양성하기 위해서 아카데미를 설립했으나 교수진이 전부 외국인이었고 1780년에 들어서서야 덴마크 교수로 세대교체가 된다. 학생들은 숙련된 페인팅으로 그림 실력은 늘었으나 그들이 그린 것들 대부분 신화나 성경에 관련된 내용이거나 유럽 다른 나라들과 차별되지 않고 덴마크적인 특징도 찾아볼 수 없는 평범한 그림들이었다


이때 활약한 화가이자 교수가 C.W.Eckersberg이다. 당시 덴마크에는 네덜란드와 같은 길드 조직도 없었기 때문에 화가가 되려면 왕립 아카데미 만이 유일한 길이었던 거 같다. 당대에 활동했던 화가들은 거의 대부분 Eckersberg의 제자라고 보면 된다. Eckersberg는 1818년 왕립 아카데미에 정식 교수로 임명된 이후 35년간 미술뿐만 아니라 자연 예술 과학 철학 종교까지도 가르치며 현대의 종합대학처럼 아카데미를 운영한 거 같다. 아카데미에서 열리는 대회에서 선발되면 국비장학생으로 혜택을 받으며 이탈리아등으로 유학 다녀올 수 있는 제도가 있었다. 런던과 네덜란드에서도 뛰어난 화가로 될 성싶으면 이탈리아로 유학을 보내는 공통점을 볼 수 있는데 이탈리아를 다녀와야 전문적이고 문화적으로 성숙된다고 생각했던지 인정받는 화가들에게는 필수 코스였다. 그래서 그런지 Eckersberg 뿐만 아니라 이 시대 화가들의 풍경화를 보면 이태리 화풍이 남아있는 느낌이 든다-남아있는 성터나 마을의 모습에서 이탈리아의 모습이 보이는 거 같다. 아래 사진은 Eckersberg의 대표작으로 그도 역시 유학파라서 이탈리아 도시 그림을 많이 그렸다. <왼쪽: A View through Three Ahches of the Coliseum in Rome, 1815> <오른쪽: View of the Garden of the Villa Borghese in Rome, 1814>   Eckersberg의 제자이자 황금기시대에 가장 잘 알려진 Christen Schiellerup Købke의 그림에서도 Eckersberg의 화풍이 조금 보이고 차분하고 무게 있는 풍경화를 볼 수 있다. <왼쪽: Morning View of Østerbro, 1836> 오른쪽 그림 <A View of Lake Sortedam from Dosseringen Looking towards the Suburb Nørrebro outside Copenhagen, 1838>은  덴마크 황금기 관련책의 표지화면으로 쓰일 정도로 대표적인 그림이다. 그림 중앙의 덴마크 국기가 덴마크 그림임을 강조하는 듯 보이는 것이 민족주의적 교육을 받아서 그림에 나타나는 요소인 거 같다.



특히 Eckersberg는 로마에서 오일 스케치를 배워왔다. 덕분에 덴마크 화가들은 스튜디오에서 상상으로 그리던 그림에서 벗어나 야외에서 바로 제작한 스케치에 현장감을 담아서 활력이 느껴지는 살아있는 그림을 그리게 된다. (프랑스 인상주의의 시작과 비슷하다) 역사와 성경적 소재와 해양화 풍경화 초상화 등의 전통적인 주제에서 당시 덴마크인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을 이해할 수 있는 그림으로 변화해 갔다. 집안의 인테리어, 시장 골목과 광장의 모습, 구시가지에 남아있는 성곽이나 들판 너머의 전원풍경 같이 친숙하고 접근하기 쉬운 장소와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빛에 담아 그려냈다. 왕정국가에서 민주국가로 변해가면서 사회계급이 해체되었고 새로 등장한 부르주아 계급의 숫자는 얼마 안 되었지만 이들의 영향력으로 황금기 미술시장 트렌드는 장르화로 이동했다. 아마도 경제적 개념이 있는 부르주아들이 보기에는 거장들의 기존 작품들이 식상하기도 하고 그것들에 비해서 장르화의 가격도 저렴했을 거다. 덴마크의 장르화는 네덜란드 황금기에 발전한 자유 분방함과 살아있는 표정의 장르화보다는 좀 더 차분하고 절제력이 보인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네덜란드 화가들의 경우에는 지역마다 있던 길드에 소속되거나 성공한 화가 밑으로 들어가서 개인지도를 받으며 자신의 그림을 발전시켰으나 덴마크의 화가들은 왕립 아카데미에서 획일적인 교육을 받았기에 두 나라의 화풍에서 다른점이 보이는게 아닐까 싶다. 덴마크는 네덜란드보다 약 100년 후에 황금기를 누리며 과학 문학 건축등 모든 면에서 골고루 발전 했지만 미술에서는 보수적인 면을 보이며 화풍이 다양하지 않고 두각을 나타내는 국민 화가들이 많이 나오지는 않았다. 아래 두 작품도 덴마크 황금기의 대표작품이다. <왼쪽아래: Wilhelm Bendz의 The Waagepetersen Family, 1830> <오른쪽아래:  View from the artist's room, c. 1825 Martinus Rørbye> 덴마크 느낌이 물씬 나지 않는가. 고전의 느낌은 완전히 벗어버린 현대적인 느낌과 요소로 가득 차있다. 깔끔하게 한색상으로 된 연두색벽과 액자들을 노출되게 걸어놓은 모습, 라이트, 가구등 하나하나 보면 모던해 보이기까지 하다. 오른쪽 창문의 모습도 요즘 집과 다르지 않다. 황금기 이전의 그림과는 완전히 분위기가 달라짐을 볼수있다.



Eckersberg의 그림 중에서 거센 바람을 우산으로 막으며 걸어가는 <Street Scene in Windy and Rainy> 그림을 보면서 장르그림이 가식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틀 전 코펜하겐 도심에서는 그렇게 비가 심하게 내리지 않았는데 바닷가 바로 옆에 위치한 Arken Museum 앞에서 가져간 우산이 뒤집어지고 우산살이 다 휘어버리면서 처참하게 망가져서 버린 사건이 있었다. 앞으로 걸어 나가기가 힘들 정도로 강한 겨울 바닷바람의 위력을 호되게 느꼈는데, 이 그림이 딱 내가 비 맞던 상황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어서 웃음이 나왔다.  황금시대의 그림에서는 삶과 사건으로 가득 찬 평범한 거리 풍경도 참 흥미롭고 덴마크 중산층 가정의 세련됨과 부유함도 엿볼 수 있다. 인테리어, 가구,  패션까지 그들의 취향과 교양을 엿볼 수 있다. 생계를 이어가기도 힘든 시간 속에서 예술에 우선순위를 두고 국가적 차원에서 교육에 투자하고 후원하며 발전시킨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의 덴마크가 북유럽 예술을 대표하는 세련된 트렌드의 대명사가 된 게 아닐까. 황금기의 이면에 고통스러운 시간을 잘 이겨내고 새롭게 예술의 힘으로 버텨낸 덴마크가 대단한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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