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자선재단의 유산 덜위치
Dulwich Picture Gallery (20221210)
Dulwich Picture Gallery는 런던 시내 중심부인 Trafalgar 광장에서 남쪽으로 1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사실 10km 이면 가까운 거리인데도 교통사정이 안 좋은 런던에서는 지하철을 타도 버스를 타도 1시간 정도 걸리기에 갈아타지 않아도 되는 버스를 선택했다. 대신 토요일을 선택하여 길은 조금 한산했고, 사람 냄새나는 동네들을 지나면서 본 풍경은 여유로웠다. 템스강 남쪽의 주거지역은 간혹 우범지대도 있고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동네는 아닌데, 미술관 근처의 버스역에 내렸을 때의 동네 분위기는 우와~ 좋은 동네였다. 버스역 사거리에는 빨간 벽돌의 예쁜 도서관과 성당, 그리고 아기자기한 동네 가게들이 편안한 느낌을 주었고, 평화로운 주택가를 지나 곧바로 나오는 Dulwich Park에는 온 동네 강아지들이 나와서 신나게 뛰어놀며 평화로운 토요일 오전 그 자체였다. 동네 Park인데도 규모가 엄청 크고 나무의 수령도 오래돼 보였다.
공원을 지나면 나오는 갤러리는 유서 깊은 Dulwich College와 역사를 같이한다. 학교는 1619년에 12명의 가난한 학자들을 교육하기 위하여 Edward Alleyn (1566-1626)이 설립한 <College of God’s Gift>로 시작되고 이후 인근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교육하는 목적의 자선 재단에 의해서 운영되어 왔으며, 갤러리는 1994년에 독립하게 된다. Dulwich Picture Gallery는 앞편에서 소개했던 건축가 John Soane (1753-1837) 경의 대표작품으로 1811년에 대중을 위한 목적으로 지어진 최초의 갤러리라 평가받는다. 재단의 창립자들이 남긴 예술품과 이후 많은 후원자들의 기증으로 바로크시대의 명화와 영국 튜더시대의 초상화등을 가지고 있다. 특히 바로크 시대의 컬렉션에는 Rembrandt, Rubens, Murillo, Anthony van Dyck 등의 주요 작가들 작품을 다수 가지고 있다.
Dulwich 컬렉션은 프랑스인 Noël Desenfans (1744-1807)와 그의 화가 친구인 스위스인 Francis Bourgeois (1753-1811)에 의해서 격조 있는 구성을 갖추게 되었다. 그들은 런던에서 미술상을 함께 운영하던 중인 1790년에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왕인 Stanisław August Poniatowski로부터 폴란드의 순수 예술을 장려하기 위한 국가 컬렉션을 수집해 달라는 의뢰를 받게 된다. 그들은 5년에 걸쳐 유럽 전역을 다니며 컬렉팅을 하였으나, 1795년에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 러시아와의 전쟁에 패하여 나라가 3개로 분할되고 1798년에는 컬렉션을 의뢰했던 왕마저도 사망하면서 그들은 투자한 대가를 받지 못하게 된다. 그들은 투자한 컬렉션을 러시아의 차르와 영국정부에 어떻게든 팔아보려고 했으나 실패하였고, 오히려 작은 작품들을 처분하고 대신에 비중 있는 작품들을 구입하며 컬렉션의 콸러티를 높여나간다. Desenfans가 먼저 사망하여 이후에는 Bourgeois가 컬렉션을 관리하였고, 그도 낙마로 갑자기 사망하게 된 이후에는 유언에 따라 Dulwich 컬렉션에 기증하게 된다. 학교 창립자인 Edward Alleyn이 기증한 영국 왕실의 초상화 컬렉션과 Wiliam Cartwright(1606-1686)가 기증한 239점의 그림 컬렉션에 추가된 그들의 선물을 보관하기 위하여 Bourgeois의 친구였던 건축가 John Soane경에게 갤러리 프로젝트를 의뢰하여 진행하게 된다. 그렇게 완성된 갤러리는 영국 최초의 공공 갤러리라는 의미 있고 유서 깊은 장소가 된다. 이렇게 협력하여 선을 이룬 뿌리 깊은 역사, 멋지지 않은가.
붉은색의 긴 홀로 연결된 갤러리는 위에서 자연 채광이 들어와서 시간대에 따라서 다른 분위기가 난다. 위에 있는 창문을 통해서 빛이 들어오는 간접적인 채광은 요즘은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이 당시에는 새롭게 선보인 채광법이었다. 지금의 갤러리들과 견주어도 기품에 있어서 우월하면 우월하지, 손색이 없다. 고풍스러운 프레임들과 붉은색의 벽면, 아치형의 연결 벽들은 모던하면서도 세련되었다. 오래된 갤러리지만, 실크벽지를 사용하지 않고 칠을 하니 현대적인 느낌이 든다. 그림도 좋지만, 분위기만으로도 행복한 공간감을 느낄 수 있다.
이곳에서 소장된 작품 중 특이한 기록을 가진 그림이 있으니, 램브란트의 <Jacob de Gheyn III의 초상, 1632>이다. 이 그림의 주인공은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조각가이다. 이 그림은 사이즈가 29.9*24.9cm으로 매우 작다. 그래서 그런지 가장 많은 도난 기록을 가진 그림으로 기록되어 있어서 “테이크어웨이 램브란드”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보안의 개념이 없던 아주 옛날도 아닌 1966년, 1981년에 도난당했고, 특히 1983년에는 도둑이 창을 부수고 들어와서 지렛대를 사용해서 그림을 떼어서 가져갔다. 결국에 다 찾긴 찾았으니 다행이다. 이후 이렇게 분실된 미술품을 관리하는 기관이 생겼으니 1991년에 설립된 Art Loss Register (ALR)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사유 미술품 및 유물의 분실 및 도난 데이터베이스를 관리하는 회사이다. 이 데이터베이스는 미술품의 합법적인 소유권을 보호하고 도난당한 미술품의 거래를 방지하기 위해 설립되었는데, 경매나 갤러리에서 거래가 발생할 때에 이 기관에 감정을 의뢰해서 도난이나 분실로 신고된 작품이 아닌지 확인한다. 미술품뿐만 아니라 악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아이템의 데이터를 비축하고 있다. 특히 나치에 의해서 분실되고 도난당한 미술품을 추적하고 반환되기 위해 노력하였고, 그 결과 많은 미술품들이 원래의 소유자에게 반환되었다고 한다. ALR은 미술품 거래자, 경매사, 박물관, 경찰, 보험사 등과 협력하여 미술품 시장의 투명성은 향상되었고 도난당한 미술품의 거래를 방지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2017년 갤러리의 200주년을 기념하여 공개된 James Stephanoff(1784-1874)의 수채화인 The Viewing at Dulwich Picture Gallery는 1830년대의 갤러리의 화려한 전경을 보여준다. 지금과 다를 바 없는 인테리어는 John Soane경이 독특한 ‘Dulwich Red'로 벽을 다시 칠한 직후에 그려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 그림 안에는 현재 갤러리가 소장한 주요 작품들이 묘사되어 있다
미술관에 있는 작은 카페에는 동네분들이 브런치 식사를 하러 많이 나왔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부부들과 아이들이 참 예뻐 보인다. 스콘은 너무 맛있고, 커피는 역시 진하다. 런던에 있는 동안 주로 티보다는 커피를 시키게 되고, 대체로 진하게 내려진 커피는 미국커피에 익숙해져 있어서 그런지 꼭 후회를 하게 된다. 티 마실걸… 다시 여유롭게 공원을 산책하고 동네 가게들을 지나간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니 꽃가게에서 크리스마스트리를 팔고 있다. 저 나무를 사서 직접 들고 가는 사람들도 보인다. 겨울이지만 춥지 않고 마음은 포근해진다. 런던에서 장기 체류를 하는 분들께 야외 나들이로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