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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코톨드 갤러리

코코슈카의 사랑

by my golden age


The Courtauld Gallery는 템스강변의 Somerset House안에 위치해 있다. 런던 올 때마다 꼭 방문하는 곳으로 관광객이 없어서 조용하고 아늑하다. 아마도 유료 입장이라 더 한산한 듯하다.


코톨드 갤러리는 특이하게 미술 교육기관과 역사를 함께한다. Courtauld Institute of Art는 예술을 사랑하는 세명의 후원가에 의해서 1932년에 설립되었다. 사업가이자 미술품 수집가 인 Samuel Courtauld , 외교관이자 수집가인 Arthur Lee, 변호사이자 미술사가인 Sir Robert Witt, 당대 쟁쟁한 실력가 삼인방은 예술을 통해서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신념으로 뜻을 함께했다. 현재 이 대학은 미술사 연구 분야에서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전문대학으로 인정받으며, 코톨드 졸업생은 전 세계의 미술관에서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어서 ‘Courtauld 마피아‘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파워가 있다.



학교를 설립하면서 Samuel Courtauld(1876-1947)는 자신이 수집한 인상파 및 후기 인상파 작품을 Courtauld Institute of Art에 기증하였고, 컬렉션 관리를 위하여 The Courtauld Gallery가 시작되었다. 그는 국가에도 £50,000 신탁기금을 후원하여 The National Gallery에서 소장하고 있는 반고흐의 해바라기를 비롯하여 마네, 르누아르, 쇠라, 드가 등의 작품을 구입하는 데에 큰 공헌을 했다. 그와 뜻을 함께한 수집가들도 최고의 작품을 기증하고 유증하며 코톨드 갤러리는 성장하였고 세계 최고 수준의 컬렉션을 갖추게 되었다.


코톨드 갤러리는 1989년부터 Somerset House를 사용하였고, 처음으로 리뉴얼 프로젝트에 들어가서 3년간의 공사 끝에 2021년 11월에 재개관하였다. 총 5,700만 파운드의 비용이 들어갔는데 도대체 그 자금을 어디에다 쓴 거냐고 할 정도로 공사한 티가 나지 않아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인인 내가 보기에도 그다지 달라진 모습을 느낄 수가 없었다.


영국은 유서 깊은 건물 공사에 제약이 많기 때문에 최소한의 내부 공사만 진행하였다. 벽과 천장을 모던하게 바꾸고 케이블과 전선 등은 안 보이도록 숨겼다. 기존에 있던 샹들리에의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나쁘지는 않았지만, 인상파 그림과 포스트 모더니즘 그림에 어울리는 현대적인 조명으로 바꾸는 게 공사의 주목적이었다. 눈에 보이는 화려한 변화는 없었지만 티 안 나고 중요한 대공사 였을거라 짐작된다.


제일 위층의 LVMH 그레이트 룸은 런던에서 가장 오래된 전시공간으로 1768년에 설립된 왕립 아카데미가 전시장으로 사용하던 1779년도의 그레이트 룸 모습이 그림으로 남아있다. 이번 리뉴얼로 코톨드 갤러리의 자랑인 인상파 그림들은 이 방에 걸리게 되었다. 공간은 작지만 작품의 내용은 최고 수준이다.



Edouard Manet (1832-1883)의 <A Bar at the Folies-Bergères, 1882> 작품이 이곳에 있다. 얼마나 유명한 작품이던가. 그림 앞에 서서 자세히 들여다본다. 정면에 서있는 여자의 이름은 Suzon이다. 그녀의 시선은 정면 아래를 향해있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만히 서있다. 그녀의 뒤에는 거울이 있어서 수잔이 어떤 신사를 응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화면 위의 가장 왼쪽을 보면 초록색 신발을 신고 누군가가 높은 곳에서 서커스 묘기를 보여주고 있는 상황이다. 수잔의 앞모습과 뒷모습의 부자연스러움으로 거울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또 다른 여인의 뒷모습은 아닐까? 관람 시에 그림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대로 보는 거보다는 혼자만의 상상을 하면서 보는 것도 재미있다.




재개관 후 첫 방문 시에 가장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나선형 계단 위에 걸려있는 현대 추상화였다. 이 작품은 현역으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영국 태생의 Cecily Brown의 <Unmoored From Her Reflection, 2022>이다. 곡선벽을 위해서 특별히 제작되었지만 영원히 이 자리에 있을 계획은 아니고 3년 간만 전시 될 예정이라고 한다. 천장의 유리돔을 통하여 들어오는 햇살이 참 좋다. 건물이 건립될 때부터 있었던 클래식한 나선형 계단이 세실의 현대 작품과 잘 어울린다. 1969년생인 그녀는 Slade School of Art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졸업 후에 바로 뉴욕의 Gagosian Gallery와 계약을 하고 런던을 떠나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다.



계단 위의 왼쪽 방에서는 오스트리아의 표현주의 화가 Oskar Kokoschka의 <Prometheus의 신화, 1950> 3부작을 볼 수 있는데 가로길이가 8m나 된다. 10여 년 동안 보관만 하던 이 작품을 이번 리뉴얼을 통해서 걸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코톨드의 중요한 후원자 중 한 명이었던 Antoine Seilern 백작이 런던 자택의 응접실 천장에 걸기 위하여 작가에게 의뢰했던 작품이다.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시대에 고전 신화와 성경 이야기를 들려주며 종말과 희망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양옆의 그림
가운데 그림


빈에서 활동한 Oskar Kokoschka (1886-1980)는 클림트의 제자였고 에곤쉴레와 함께 빈의 모던 미술을 이끌었다. 그러나 클림트와 에곤쉴레는 스페인독감으로 1918년에 일찍이 사망하게 되고, 코코슈카 홀로 격동의 세계대전을 겪게 된다. 나치는 그를 퇴폐 예술가중에서도 최고 등급으로 매기고 그의 작품 417점을 압류하고 탄압하였다. 그는 1934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체코 프라하로 망명을 하게 되고, 1938년에는 프라하에서 만난 Oldřiška "Olda"와 함께 다시 영국으로 망명하여 런던의 지하대피소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이 당시에는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유화보다는 수채화를 많이 남겼다. 전쟁 후에 그는 스위스에 정착하였고, 회화뿐만 아니라 오페라 무대 디자인 등 다양한 예술활동을 활발하게 하며 93세에 생을 마감한다. 나치 탄압의 트라우마 때문일까, 그는 끝까지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의 인생여정의 고단함 만큼이나 초상화에 깊이가 느껴진다. 단순히 얼굴만 잘 그린게 아니고 대상의 내면과 영혼을 만지는 그림을 그렸다. 그는 Pablo Casals 등의 유명인사의 초상화를 여러 점 남겼다. 그의 작품에서 인물의 형태는 느슨하게 표현되었지만, 강렬하고 눈부신 색과 풍부한 선으로 대상의 움직임을 포착한다. 그래서 그런지 인물들은 역동적으로 느껴진다. 이곳에 걸려있는 3점의 Prometheus속의 인물들도 자세히 보자. 인물들은 배경과 섞인 듯이 보이지만 완전히 녹지 않았고 그렇다고 추상적으로 그리지도 않았다. 코코슈카 추상화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자화상, 1948>
<Pablo Casals II, 1954>


코코슈카의 젊은 시절 연애사는 아주 유명하다. 그는 1912년인 26세에 7살 연상의 Alma Mahler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작곡가인 Gustav Mahler의 미망인으로 젊었을 때부터 이미 빈에서 유명한 뮤즈였다. 이 둘은 1912년부터 1914년까지 세상이 떠들썩하게 연애를 했다. 수많은 초상화에 알마가 등장하고 그녀로부터 영감을 얻어서 그린 450여 점의 작품을 알마에게 바친다. The Wind's Bride (The Tempest)는 코코슈카와 알마의 모습이 담긴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고 현재 바젤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림 속에서의 그는 알마와 함께 있기는 하지만 불안한 마음을 표현한 듯 소용돌이치고 있다. 그의 불안감이 적중하였는지 3년간의 사랑 끝에 알마가 변심 하자 그는 충격을 받고 제1차 세계대전에 자원 입대한다. 그는 불행하게도 전쟁에서 머리 부상등 두 번의 중상을 입게 되었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드레스덴에서 후유증으로 인한 우울증을 치료하며 요양을 한다. 1919년에는 드레스덴 아카데미에서 미술 교수로 자리를 잡고 그곳에 꽤 오래 머무르며 세계여행도 하며 풍경화를 많이 그려낸다.


<The Wind’s Bride, 1913>
<Alma Mahler, 1912>


코코슈카는 알마와 헤어진 후에도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했는지 알마와 닮은 실물크기의 인형을 주문한다. 그는 인형에게 맞춤속옷부터 옷을 제작해서 입히고 카페와 오페라 공연에도 데려가 옆자리에 앉혀두며 일상을 함께했다. 인형은 관능적이지 않고 덥수룩한 북극곰 같은 느낌이어서 처음에는 그가 싫어했으나, 그는 그 인형에게 다양한 포즈를 취하게 하며 80여 개 이상의 그림과 드로잉 작업을 했다고 한다. 이 정도면 정신병 아닐까, 알마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무서웠을 거 같다. 1920년대 초에는 인형이 자신의 열정을 완전히 치료해 줬다고 선언하며 인형의 목을 베는 살해 행위를 하고 이별을 한다. 알바의 70세 생일에는 편지도 보냈다고 하는데, 부인은 이 사실을 알고도 괜찮았을까.


코코슈카의 요청으로 Hermine Moos가 제작한 인형 (1919)
<Self-Portrait with Doll, 1921>


잠시 얘기를 Alma Marhler (1879-1964)에게로 돌아가보자. 역사적으로 눈에 띄는 대단한 여자들이 있는데 알마도 빼놓을 수 없는 뮤즈였다. 그녀에 대한 스토리를 찾다 보니 <15 of the Most Scandalous Women in History>라는 기사에 당당히 들어가 있었다. 본명은 Alma Schindler이고, 그녀의 아버지는 당시 오스트리아에서 유명한 화가 에밀 야곱 쉰들러였다. 오스트리아 황태자 루돌프가 그림을 의뢰할 정도로 유명한 화가였다.


알마는 타고난 미모와 지성으로 빈에서 유명했고 선망의 대상이었다. 이에 걸맞게 그녀는 쉼 없이 사랑에 빠진다. 자잘한 연애는 다 빼고 굵직한 연애만 살펴보면 일단 17세에 Gustav Klimt와 사랑에 빠진다. 그녀의 첫 키스 상대는 클림트였고, 그녀가 그 유명한 <키스> 그림의 주인공이라는 설도 있다. 23세에 19세 연상인 전설의 작곡가 Gustav Mahler와 결혼하지만 남편에게 작곡가로서 인정받지 못해서 우울감을 느낀다. 1911년 5월 말러가 지병으로 사망하면서 1912년부터 1914년에 코코슈카와 불같은 연애를 한다. 그러나 그녀는 코코슈카의 소유욕을 거부하고, 말러와의 결혼 생활 중에 바람을 피웠던 상대인 바우하우스를 창설한 건축가 Walter Gropius와 1915년에 재혼을 하고 짧은 결혼생활을 한다. 그리고 이혼 전인 1917년부터는 시인이자 작가인 Franz Werfel을 만나기 시작한다. 결국에는 Werfel와 결혼하고, 유대인이었던 그와 함께 피레네 산맥을 건너서 미국으로 망명한다. 부부는 Los Angeles에 정착을 하고 남편은 소설가로서 성공을 거두고는 먼저 세상을 떠난다. 이로써 그녀는 공식적인 결혼은 세 번으로 마무리하고 뉴욕에서 사망한다. 이후 Gustav Mahler가 묻혀있는 빈의 공동묘지에 딸과 함께 묻힌다. 아니 왜 최종적으로는 말러 옆으로 간 걸까.


정말 그녀의 인생이 놀랍지 않은가. 남편 이외의 비공식적인 애인들도 모두 다 최고의 예술가였다. 빈의 대표화가 클림트와 코코슈카의 그림에 주인공으로 그려졌고 그 그림들은 명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 당시 빈의 대표 화가로는 한참 어린 에곤쉴레까지 포함하여 3명 정도였다고 평가하는데, 그중에 2명과 연애를 하다니 세상은 공평한 걸까. 코코슈카의 두 초상화를 같이 놓고 보니 확실히 부인과 있을 때의 모습이 더 편안해 보이고, 알마와 연애 중의 모습에서는 행복함 보다는 소유 집착의 불안감이 느껴지는 듯하다.


Alma Mahler-Werfel (born Alma Margaretha Maria Schindler)
Kokoschka and Alma Mahler


<Kokoschka and Alma Mahler, 1912>
<Olda and Kokoschka, 1963>


Somerset House 안에는 12월이 되면 아이스스케이트장이 생긴다. 신고전주의 양식의 웅장한 건물에 둘러싸인 스케이트장은 얼음에 비친 찬란한 조명 빛이 너무 예쁘다. 스케이트 링크에서 나오는 Rick Astley의 Never Gonna Give You Up (1987) 노래는 전혀 30년 전 노래스럽지가 않다. 딸한테 이 노래 아냐고 물어보니 당연히 모른다고 한다. 특별히 2022년 12월 31일에는 코로나가 끝나고 3년 만에 New Year’s Eve의 불꽃놀이가 있었다. London Eye 근처에서 폭죽을 터트리는데 한 장소에 몰려서 관람하면 위험하니 여러 곳으로 분산해서 관람할 수 있도록 사전 예약을 받는데, 그중에 한 장소가 Somerset House의 템즈강 쪽 발코니이다. 미리 공간마다 인원수 조절을 하기 때문에 안전하게 불꽃놀이를 볼 수 있었다. 안전과 여유로움을 돈 주고 살 수 있다니 너무나 자본주의스럽다. 이런 분위기 또한 겨울 여행의 묘미인 거 같다.


2022년 겨울
2021년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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