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커다란 가로수는 지금까지 몇 번의 가을을 보냈을까.
그리고 나는 앞으로 몇 번의 가을을 더 맞이하게 될까.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몸과 마음이 현실을 떠나 어딘가를 떠도는 듯한 기분이 든다.
흔히들 말하는 '가을 탄다'는 게 이런 걸까 싶다.
이 시기에는 사소한 일조차 유난히 크게 다가온다.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일들이 마음속에서 오래 머물고,
감정의 결이 쉽게 흔들리곤 한다.
요즘 들어 자주 생각한다.
내게 남은 계절은 몇 번일까.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부모님과 함께할 계절은 과연 몇 번이나 남아 있을까.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지키고 싶은 사람은, 결국 부모님이다.
사춘기 시절의 일기장을 들춰보면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가득한 날들이 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것조차 사랑이었다.
서툴고 어리석은, 표현의 다른 이름이었을 뿐이다.
독립한 지 스무 해가 다 되어가다 보니
이제 다시 함께 사는 일은 쉽지 않다.
대신 주말마다 시간을 내어 부모님을 찾아뵙는다.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아도 좋다.
한 번의 포옹, 마주 앉아 함께하는 식사,
잠들기 전과 아침에 나누는 짧은 안부.
그 모든 것이 참으로 충분하고 감사한 시간임을 느낀다.
그런데도 문득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순간이 있다.
허락된 시간이 얼마나 남아있을까.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부모님은 말씀하셨다.
"이제 나는 엄마라고 부를 수 있는 엄마가 없어."
그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저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가까운 친구의 부모님이 세상을 떠났을 때도
함께 울고 위로했지만,
그 마음을 온전히 헤아릴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 이후 달라진 그들의 삶 또한 말이다.
나의 부모가 없는 삶.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지난 주말, 한 땀 한 땀 바느질로 내 바지 단을 고쳐주던 엄마를 바라보다 문득 생각했다.
'엄마가 없다면 이런 건 어떻게 하지?'
나란히 누워있는 부모님 사이에서 시시콜콜한 농담을 던지며
두 분의 이불을 덮어드리다가도 생각했다.
'두 분이 계시지 않다면, 나의 주말은 어떤 모습일까.'
내 안부를 묻고, 내 고민을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이가 없는 세상.
그곳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상상만으로도 슬펐고, 처음으로 외로웠다.
계절이 가는 것이 속상했다.
"하루가 왜 이렇게 빠르니. 벌써 오후 두 시야!"
라고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며,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이 미웠다.
흐르는 시간을 잡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있을 때 잘하자.'
그 말을 마음에 새기며 남은 시간을 알차게 보내려 한다.
그럼 이 가을도 지나갈 것이고,
일렁이는 마음도 조금 잠잠해지겠지.
오늘도, 사랑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