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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딸에게 죄인이 된 이유

엄마가 미안해

by 글로다시

첫애라고 어릴 적부터 나름 정성을 들인다는 것은 소위 말하는 치맛바람이었다.

그 치맛바람 속에 이리저리 휘둘린 아이는 힘이 들었을 테다.


어릴 적 총명하던 아이는 고등학생으로 접어들며 점점 말 수가 줄었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가 최절정의 사춘기였던 것 같다.) 엄마와의 대화를 피했다.


딸 1호에게 죄인이 된 이유를 정리를 하자면 나는 대학 높은 줄 모르던 엄마였다. 엄마가 원하는 대학과 현실로 갈 수 있는 대학의 차이가 벌어지면서 첫 딸과 나의 사이도 벌어졌다.





고3 성적으로도 나름 괜찮은 대학을 갈 수 있었던 아이를 재수를 시켰고, 주요 대학이 아닌 곳은 가지도 말라는 압박을 주었으니 우리 딸 1호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미안하고 가슴이 아프다.


아이도 고등학교 3년 내내 노력해서 수시 성적을 만들어 놓은 건데, 입시에 대해 무식했던 엄마가 모든 걸 망쳐 놨다.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것 같은 우리 딸 1호는 수시논술로 돌렸고, 첫 입시는 실패로 끝났다.


그리고 재수를 선택했다.

이때도 멋모르던 엄마는 '그래 1년 열심히 해서 원하는 대학 들어가면 되지 뭐'라고 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 채.



두 번의 입시를 경험하며 내가 아이를 힘들게 한 엄마였다는 걸 알았다.

수능으로만 치러야 하는 재수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고3 때 수시로 갈 수 있었던 대학들이 점점 멀어져 갔다.


결국 재수도 실패했다.


그때부터 내가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한 건지 와닿기 시작했다.


'내가 미쳤었구나!'

'내가 우리 딸 인생을 망쳐놨구나!'

'우리 딸이 고등학교 3년 동안 고생 많았겠구나!'

'무식한 엄마가 아이의 중요한 입시를 망쳤구나!'


나 자신을 원망하기 시작했고, 딸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미안한 마음과 함께 온몸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몸살도 아닌 심한 독감도 아닌 뼈 마디마디와 가슴이 쑤시기 시작하는데 뭘 어찌해야 할지 모를 정도였다.

내 가슴을 치고 또 치고 눈물을 흘리고 되돌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뿐이었다.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는 생각에 몇 날 며칠을 울고 가슴을 쳤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심장이 마구 요동치기 시작했다. 몸이 흔들리는 느낌이 날 정도로 심장이 뛰었다.

병원을 찾아가니 부정맥이라고 한다. 그리고는 초기 공황장애약을 처방받았다.

아이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이렇게 신체이상으로 나타나는 것에 놀랐다.


그리고 나는 딸의 인생을 망친 죄인이라는 죄책감에 매일 눈물을 달고 살았다.

아이 앞에서는 티를 안 내려고 노력했지만 티가 났을 거라 생각이 든다.





삼수는 할 수 없으니 발 만 걸어놓은 대학을 어쩔 수 없이 입학했다.

아이도 학교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맘에 안 드는 학교를 억지로 가는 아이를 보는 것이 힘들었다.

아이에게 학교생활은 어떻냐? 물을 수도 없는 상태다.


나는 하루하루 딸아이의 기분과 표정을 살필 뿐이다.

한 창 이쁘고 활기찰 나이의 딸아이가 축 쳐진 모습을 보는 것이 가슴 아팠다.


이 모든 것은 내가 만든 일이고 나 때문에 아이가 힘들어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짠했다.

가슴이 아프다. 가슴이 저리다. 가슴이 아리다. 이런 표현들을 모두 내 몸으로 느꼈다.

책에서나 읽는 저런 표현들을 나는 직접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통증의 크기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내가 너무 딸아이의 눈치를 보는 것을 본 지인이 내게 말했다.

'내가 보기엔 엄마가 너무 잘해줬는데 왜 눈치를 보냐?'라며 재수까지 뒷바라지하느라 고생했다고 말하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그 말을 듣고 나도 생각을 좀 바꿔 볼까 노력을 했다. 하지만 막상 아이를 보면 가슴이 무너진다.


'내가 고3 때 아무말도 하지 않았더라면...'


지나가는 대학생들만 눈에 들어온다. 그들은 모두 행복해 보였다.




어릴 적 좋은 교육기관에 다 데리고 다녔으니 내 아이는 명문대를 갈 거라는 착각을 한 엄마였다.

아이를 키운 20여 년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나는 부끄러운 마음에 자꾸만 내 가슴을 치게 된다.

지난 시간의 아쉬움과 후회만이 남았다.


그렇게 딸 1호와는 사이가 멀어졌고 딸아이는 나에게 본인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는 명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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