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을 준비하며
"마늘 값 보내라"
6월쯤 전화가 온다
올 김장에 쓰일 마늘 값을 보내라는 전화다
"고추값 보내라"
8월 말쯤 오는 전화다
그리고 11월 중순쯤 배춧값을 보내라는 전화가 온다
모든 전화는 거두절미, 단호하다 지령을 내리 듯
배추 속을 넣는 당일 주문이 꽤 많다
생새우, 새우젓, 보쌈용 굴, 김장용 굴, 까나리 액젓
아이들을 보내고 연안부두 어시장을 들려 화곡동엘 다다르면 11시쯤
마당엔 씻은 배추가 쌓여 있고 거실 마루에선 무채를 썰고
김장 준비가 한창이다
동네에 친분 있는 아주머니들이 모여 일을 하고 계신다
사 온 물건을 들고 주방에 놓은 후, 수고하신다고 인사를 드리면
누군가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
이 집 공주 며느리 오셨네 , 형님이 너무 잘하셔
호호호 명랑한 시어머니 웃음소리
우린 쟤가 딸이여, 내가 딸이 있어 누가 있어
힘든 건 내가 해야지
저렇게 통만 들고 오면 되는 거예요?
아유 재료값은 내가 다 주지 난 애들 신세 한 푼도 안져
재네가 뭐 있어, 둘째네야 친정이 든든 하지만
단 한 번도 백 원 동전 한 푼 준 적 없는 시어머니 입에서 참기름 바른 듯 흘러나오는 소리
그 와중에 우리 친정 한 번 깎아내리고
수육을 삶고, 배춧국을 끓이고 사 온 굴을 올리면 상이 푸짐하다.
이때쯤 걸려 오는 남편 전화
니 마누라 자~~ 알 왔다
생전 안 하던 전화를 마누라 오니까 하냐?
시간표를 바꿔서 데리러 오겠다는 남편
야유 비슷한 소리가 나온다
이 집 며느님은 복도 많아, 통만 들고 와 김장 담아 가는데도 데리러 온다네
너희들이 뭘 알아!!! 이 집주인 마나님 내 시어머니에 대해 뭘 알아!!!
입을 꾹 닫고 커피를 타고, 배를 깎고...
그들에게는 대접이 극진하다
남편이 와서 뒷마무리를 하는 중에 김치 한 통 주는 걸 담아 들고 나오려는데
나를 붙잡는 시어머니
그냥 가지 말고 저이들 목욕비 주게 돈 좀 놓고 가라
올 배추 작황이 나쁘다는 뉴스에 김장은 해야 되는데 기본 값인 배추값이 오르면
김장 비용이 오른다
걱정 아닌 걱정, 염려가 된다
올봄 결혼한 아들네에 한 통, 친정 오빠네 한 통, 지인들 조금씩 맛이라도 보라고 나눠주려면
절인 배추 60kg은 해야 하는데 강원도 배추는 20kg에 60,000원
배춧값만 180,000원 부재료 다해서 30만 원이 넘는다
그래도 내가 해서 나눌 수 있을 때 기쁜 마음으로 하자라고 마음먹는다
아들은 유일하게 배추김치만 먹는다 별 말이 없는 아들이 아주 가끔 엄마 김치가 젤 맛있어
라는 말에 힘든 줄 모르고 내년 봄까지 먹을 요량으로 넉넉히 담을 셈이다.
이 기쁨을 모르고 사셨던 시어머니가 갑작스레 안 됐단 생각이 든다
나누고 살 만큼의 형편이었음에도 늘 본인 주머니를 채우려고만 했던 행동들
어느 자식에게도 존중받지 못하고, 여름날 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아끼다 먹지도 못하고
땅에 떨군 삶이라고 할까?
성경 말씀 중 주는 자가 복 되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다 행동으로 옮기고 살지는 못해도 감당할 수 있는 부분은 감당하며 살기로....
아무튼 다음 달에는 일 년 농사 김장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