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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착기지

잘 자

by 소해

오카다 다카시의 "애착수업"에서는 애착장애를 치료하기 위한 안전기지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애착을 안정시키려면 안전기지가 매우 중요하다. 안전기지를 통해 '살아가는 의미'를 발견한다. 안정된 애착은 옥시토신 분비를 활성화시켜 불안과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기능을 높여 활력과 면역력을 강화시키고 사회적 기능과 인지 기능을 우수하게 만든다.(118-119)


잠이 아주 많은, 활동성이 낮은 기질의 나는 회사만 갔다 와도 거의 지치곤 한다. 하루 할당량의 기력을 회사에게 바치고 집에 와서는 강아지 산책을 위해 동네 한 바퀴 돌고 곯아떨어지면 그래도 오늘 할 일은 다 했다, 랄까.

그래도 아내로서 집안일도 하고 저녁도 차려줘야 하는데,라는 생각은 있지만 늘 생각만 있을 뿐. 일상이 아니고 가끔의 이벤트일 뿐이다.

이렇게 게으른 나를, 종종 씻지도 않고 침대에 누워 잠들어 버린 나를 발견한 남편은, 그저 밝게 켜진 침실 불을 어둡게 꺼주고 조용하게 방문을 닫고 나가 줄 뿐이다.


결혼식을 올리지 않아서 결혼한 것이 맞는가, 실감이 잘 나진 않지만 벌써 혼인 1년이 다 되어간다.

참 신기하다.

남편은 좋은 연애상대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외로움을 잘 타는 나에게, '남자친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장거리'이기에 자주 만나지 않아도 되어 서로의 삶을 존중할 수 있는, 공부하면서 만나기 좋을 사람.

근데 결혼할 사람은 알아본다고 하던데, 나도 그를 처음 본 인천에서. 그리고 두 번째인 부산에서.

'결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북방계 미남형 얼굴에 유쾌한 성격을 가져 동성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나와는 정반대인 사람.

서로의 바운더리가 당연히 겹친 적이 없었기에 우리는 이때껏 만나본 적 없던 종에게 서로 신비함을 가졌다.

참 복잡한 애쓰며 살던 나에게 단순하고 만족하며 사는 남편은 신기하고 부러운 존재였다. 남편 또한 자격증이며 시험이며 무언가를 계속 찾고 공부하는 나를 보며 자신이 너무 안주하나, 싶었다고.

없는 것을 가지고 있던 서로이기에 당시 운명인가,라는 착각(?)도 했고.

가족을 만나고 싶었다. 사라진 나의 가족 말고 내가 만드는 가족을 만나고 싶었다.

남편을 만났을 때는 이미 너무 지쳤으니깐.


요양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면서 요양병원 안 죽음을 기다리는 수많은 노인환자들을 볼 수 있었다.

요양병원의 중환자실에는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알 수 없는 점점 흐릿해지는 생명의 불씨가 있다. 같이 늙어버린 보호자는 치료비도 부담이기에 환자의 상태가 악화되기 전 DNR(연명치료포기) 여부를 확인한다. 병원에는 많은 DNR환자들이 존재하고 바이탈(혈압, 맥박, 호흡, 체온)은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다.

한 환자가 있었다. 60대 남자였는데 보호자란에 결혼은 하지 않았는지 아내랑 자식은 없고 형만 있었다. 이미 와상환자(누워만 있어야 하는 환자)라 말도 못 하고 의식만 조금 있어 보였지만, 어느 날 상태가 더 안 좋아져 죽음이 임박했다. 형에게 전화했지만 새벽이라 그런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결국 형은 동생이 사망했는데도 병원에 찾아오지 않았고 간단히 염만 한 환자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평소 형이 면회 오는 것을 본 적이 없기에 요양병원에 맡겨두고 방치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요양병원에는 그런 환자들이 참 많다. 자주 전화와 면회를 하며 간식꾸러미를 안고 환자를 찾는 보호자도 있지만, 수가(비용)때문에 환자가 밥을 먹지 못하는데도 L-tube(일명 콧줄) 동의하지 않는 보호자도 있다. 그러면 환자가 잘못 삼키면 음식물이 폐로 가서 폐렴으로 진화할 수 있기 때문에 보호자가 연하곤란식이라도 잘 챙겨줘야 하는데 물건이 다 떨어졌는데 연락을 안 받았다.

요양병원은 직원 대비 많은 환자들을 보살피기에 효율을 위해 환자 한명마다 최소한의 돌봄을 받는 열악함이 존재한다. 하지만 같은 열악함 속에서도 환자마다 다른 가족관계에서 벌어지는 빈부차이가 공존한다.


오카다 다카시의 "나는 내 안의 애착을 돌아보기로 했다"에서는 사회구조 속 애착의 중요성을 주장한다.

애착은 보살핌의 체계다. 보살피는 체계가 약해진다는 건, 내 아이를 돌보려는 사람이 줄어가고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보살피려는 사람도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중략) 부모에게조차 제대로 양육받지 못한 아이는 부모에 대한 애착이 없으므로 나이 든 부모를 보살피려고 들지 않는다. (중략) 돌봄의 아웃소싱이 진행되며 직접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한다. (중략) 어떻게든 대처하지 않으면, 우리는 사회 전체가 함몰되어 가는 애착의 붕괴과정에 휩쓸리고 말 것이다.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해서는 불안정한 애착에 대한 방어와 애착을 유지하기 위한 대처가 필요하다. 그것이 의미 있는 삶을 사는 데도, 건강을 유지하는 데도 직결된다.(242-243)

'결국 가족밖에 없잖아.' 요양병원에서 야간근무를 하던 어느 날, 갑자기 내 가족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다. 남자친구(현재의 남편)에게 결혼하고 싶다고 하니,

"(내가 살고 있는 곳으로) 올라와. 내가 행복하게 해 줄게. 너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

남편의 이 대사는 날 상경하게 만들었고, 그 뒤로 결혼까지 많은 일이 있었지만.

나의 안전기지가 되어준 남편. 선물같이 나타난 시어머니.

오늘도 남편과 시어머니는 일어나라고, 씻고 자라고 잔소리하고 깨울 법도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저 나를 사랑스러운 눈길로 쳐다봐주고 아늑하게 닫히는 방문소리가 나에게 '잘 자'라고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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