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등이 저리도 작았던가. 이제 어린아이도 업지 못할 것 같다. 위기 상황에서 나를 구했던 어머니의 등은 이 세상 그 무엇보다 넓었다.
“엄마, 개암 따러 가서 벌에 쏘였다고 나를 업고 왔던 거 기억해?”
어머니는 당시의 내 모습이 가물가물한가 보다. 하지만 유년시절 내가 땅벌에 쏘였던 그날의 기억이 또렷하다.
우리 집은 동네에서 가장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세탁소여서 군인들이 맡기고 간 세탁물로 넘쳤다. 세탁소 전축에서는 어머니가 즐겨 부르던 노래나 회심곡, 배뱅잇굿이 잔잔히 퍼졌다. 열린 미닫이유리문을 통해 들려오는 노랫가락은 가게를 더 활기차게 하였다. 아버지는 군복을 짓거나 수선하기 위해 온종일 재봉틀을 멈추지 않았고, 어머니는 세탁한 군복을 줄에 널었다. 그사이 연탄불에서는 다리미 두 개가 달구어졌다. 뜨거운 다리미 밑으로 솔잎을 깔아 군복을 다렸다. 각이 살아난 군복은 광택도 좋았다. 어머니가 다림질을 마치면 솔잎이 다리미의 열에 누렇게 바스러져 있었다. 항상 세탁소는 솔잎과 다림질을 마친 군복에서 나는 냄새로 가득 찼다.
학교를 다녀온 나는 바쁜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잡고 개암을 따러 가자고 졸랐다. 개암은 산에서 얻을 수 있는 고소한 간식거리였다. 개암을 딱 소리 나게 깨물어 야무지게 먹던 친구들의 모습이 부럽기만 했다.
어머니는 어린 딸의 성화에 연탄불을 갈아 놓고 개암이 있을 만한 앞산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나는 소쿠리를 들고 신바람에 뒤따랐다. 개암나무는 열매를 많이 달고 있지 않았다. 그 맛을 아는 사람들의 손이 거쳐 간 후였다. 엄마를 쫓아다니며 개암을 찾던 내 눈에 저만치 보리수 열매가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이었다. 그만 땅벌 집을 건드리고 말았다. 벌들이 하늘로 치솟아 오른 것은 찰나였다. 녀석들은 여느 꿀벌과 달랐다. 어른들도 한 번 쏘이면 침의 독으로 부어오르고 며칠은 꼼짝할 수 없었다. 보리수를 따려고 헤집고 다녔던 작은 발아래 땅벌집이 있으리라고는 짐작하지 못했다. 벌들도 갑작스러운 침입자에 놀랐겠지.
어머니는 벌들보다 더 기겁을 했다. 개암이 담겨 있던 바구니를 허공에 휘두르며 나를 등에 업고 정신없이 뛰었다. 어머니의 급박한 뜀박질을 추월한 벌들이 기어코 나의 머리에 독한 침을 찌르고야 말았다.
나의 울음소리가 산에 울려 퍼졌다. 한참을 달렸을 때 벌은 더 이상 달려들지 않았다. 어머니는 땀에 흠뻑 젖은 등에서 나를 내렸다. 점점 부어오르는 머리의 부기는 얼굴로 번졌다. 어머니는 내 손을 잡고 그 부근의 집으로 들어갔다. 일면식도 없던 그 집 아주머니는 괜찮다고 다독이며 그 부위에 된장을 발라 주었다.
어머니 나이 스물 중반이었으니, 아이를 가뿐히 업고 뛸 수 있을 때였다. 나는 벌겋게 부풀어 올라 아픈 머리와 얼굴로 된장 냄새를 풍기며 며칠을 누워 지냈다. 파란색 모기장 안에서 날아다니는 파리 소리가 아련히 들렸을 뿐이다.
며칠이 지났을까. 밤이었는지, 낮이었는지 모른다. 눈을 떠보니 부모님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들여다보며 행여 내가 깰세라 숨죽이며 파리를 잡고 있었다. 내 손에는 아버지가 안겨준 개암이 들려 있었다. 나는 개암을 꼭 쥐었다.
부기가 빠지고 세탁소가 보이는 방에 누워있을 때에도 나의 시선은 어머니의 등을 놓치지 않았다. 어머니의 일상은 여전히 분주하기만 했다. 고무 대야에 가득한 세탁물을 빨랫줄에 경쾌한 소리가 나도록 힘 있게 털어 반듯하게 펼쳐 널었다. 세탁물과 함께 펴지던 어머니의 등도 한없이 넓어졌다. 어머니의 등은 다림질을 하거나 군복에 각을 잡을 때면 미세하게 흔들리거나 분주하게 좌우로 오갔다. 소리 없는 메트로놈처럼 규칙적인 반복을 거듭하던 어머니의 등은 단정하고 일정했다. 가끔은 전축에서 들려오던 ‘동백아가씨’를 따라 흥얼거렸다. 그것은 내게 통증을 잊게 해주는 리듬이 되어주었다. 어머니의 노래를 듣다 보면 나는 잠에 빠져들었다.
연년생 동생으로 평상시에는 내 몫이 아니던 어머니의 등이었다. 저녁이면 가끔 나는 어머니의 등에 얼굴을 묻었다.
요양원 창밖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등이 오늘따라 자닝하다. 더욱 왜소해 보이는 어머니의 등을 오랫동안 쓰다듬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세탁소 앞에서 그 시절 어머니의 등에 업히고 싶다.
그날도 나는 오래 머물지 못하고 요양병원을 나왔다. 출입문을 나서던 내 등을 바라보았을 어머니의 애잔한 시선이 눈에 밟힌다. 어머니 등에서 전해지던 온기가 가슴에 얹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