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에나방의 우화

by 최희숙

아버지의 밀짚모자가 흔들린다. 어디에도 그만한 생명의 탈피를 보듬어 줄 좋은 곳이 없다. 밀짚모자 안쪽에 누에고치 하나를 잠재워 두었나. 누에나방의 우화羽化는 긴 시간의 어둠이요, 고통이었으리라. 그가 빛나는 날개를 활짝 열어 어디쯤 있을 산뽕나무로 날아간다. 간 밤 꿈에서 깨어났다.

눈을 미혹迷惑시킬 만한 화려한 나비의 춤을 여태껏 본 일이 없다. 나의 호기심은 언제나 새나 나비가 아니었다. 자고 일어나면 누에방蠶室으로 놀러 갔다. 그곳에는 언제나처럼 엄마가 있었다. 어린 동생에게 엄마 젖을 내어주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위를 맴돌며 머뭇거렸다. 그러다 다른 집에 새로 태어난 누에를 보러 뛰어갔다. 가까이 다가갔다. 누에들의 사각거리는 소리가 쏟아졌다. 그러더니 소리가 조금씩 크게 들렸다.

그때 나는 누에가 잠 위에 푸른똥蠶砂을 싸며 나보다 먼저 크는 걸 보았다. 뽕나무잎를 따러 가기도 했다. 까만 오디에 손도 얼굴도 보랏빛으로 물들어 누에가 된 듯 이불깃을 올리고 잠이 들었다. 어른들은 어린 내가 누에방에 들어서는 것을 뭐라 하지 않았다. 나는 곧잘 조잘거리며 여린 고사리보다 더 보드라운 손으로 누에를 조심스럽게 옮기는 것을 낙樂으로 여겼다.

누에의 성장은 빨랐다. 자고 일어나면 다른 얼굴로 나를 맞았다. 그때마다 노란 배를 안고 무거워진 몸을 뒤척였다. 채반 위에 올린 누에들이 얼굴을 들고 저들의 동무인 나를 찾았다. 그리곤 동그란 고치 속으로 몸을 숨겼다. 한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물레를 돌아 고치를 틀고 돌돌 감겨 나온 하얀 실뭉치 속에 죽어 나오는 수많은 번데기. 그것은 어린 내가 앞으로 감당해야 할 이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때였을 것이다. 누에방 한구석에서 누에나방의 날개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나의 손에 누에고치 하나가 살포시 와서 안겼다. 아쉬운 이별을 달래는 욕심이었던가. 나는 가장 가까이에서 보았던 나방의 날개를 아버지의 낡은 밀짚모자에 그려 넣었다. 이윽고 깊은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내 주위를 돌다 날아갔을 누에나방의 빈 고치를 보며 소리 없이 울었다.

세상은 상전벽해桑田碧海란 말처럼 빠르게 변했다. 고향의 넓은 뽕나무밭은 바다가 아닌 빽빽한 집으로 채우기 시작했다. 고향을 떠나온 내게 누에나방은 꿈속에서도 만날 수 없었다. 누에나방의 우화羽化는 그저 우화寓話로 남았다.

그때 왜 나는 날개를 아버지의 잠자는 밀짚모자에 그려 넣었을까. 아마도 세상에 가장 튼튼한 누에방이 되어 줄 것을 믿었기 때문이리라. 어느 날부터 아버지의 밀짚모자는 더 이상 벽에 걸려 있지 않았다. 어머니의 방마저 온기가 사라졌다.

도가의 수행자들은 우화등선羽化登仙을 염원한다고 한다. 현실의 몸을 벗어던지고 신선이 되고자 함이겠다. 저마다의 등짐을 지고 삶의 봉우리를 오르고 또 오르는 사람들에게 우화등선의 경지는 꿈일 뿐이다. 나는 그런데 언제부턴가 누에고치 안으로 숨어드는 어머니를 보았다. 이제 세상을 힘차게 날며 덩실덩실 춤을 추며 살아야 하거늘, 그 날개에 무겁게 내려앉았던 이슬들은 이미 오래전 하늘로 날아가 버렸는가. 푸른 하늘에 선을 그리고, 바다를 건넌다 해도 그 많은 사연을 어찌 풀어낼 수 없으랴. 지금 내 어머니의 날개는 우화羽化를 거슬러 시나브로 시들어가고 있다. 요양병원의 어머니는 잠실에서 들려오던 누에들의 사각거리는 소리를 꿈속에서 듣고 계시는지 모른다. 그 옆에 서 있는 누군가가 나였으면 좋겠다.

참나무산누에나방을 연구한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라는 생물학자가 있다. 누에나방이 작은 구멍을 빠져나오는 것은 인내와 고통의 힘겨운 과정이다. 성장 과정에서 누에나방은 제가 만든 단단한 고치를 힘겹게 벗어버리고 제 시기가 되면 날아오른다. 반면에 고치를 뚫고 나오는 나방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가위로 구멍을 넓게 잘라 준 고치는 자신의 굴레를 벗지 못한 채, 그 만의 무늬와 빛깔을 드러내지 못했다고 한다.

지금 나는 작은 구멍이라도 뚫어 어머니를 꺼내드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거린다. 아버지의 밀짚모자를 자꾸 들여다보던 어린 나로부터 탈피脫皮하지 못한 것이리라.

삶이 죽을 만큼 힘든 것은 껍질을 뚫는 고통을 겪고 나서야 날개가 영롱하게 돋는 우화 과정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것은 오롯이 혼자서 견뎌야 하는 시간이다. 나는 아직도 뽕나무를 먹고 자라고 있는 누에요, 아직 잠蠶도 다 자지 못했나 보다.

나는 지금 무엇으로 고치를 만들고 있을까. 누에가 6 잠을 자며 변화를 갖듯 이제 나는 마지막 잠을 자고 일어나 언젠가는 영롱한 날개를 멋지게 펼쳐보리라는 꿈을 꾼다.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 책임지기 위해 성장의 과정을 겪는 과정이라 한다.

육체의 성장과 달리 마음의 성장은 때가 없을지도 모른다. 마음은 꿈을 꾸며 성장한다. 나는 또 다른 우화羽化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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