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멍 쉬멍 걸으멍(놀면서 쉬면서 걸으면서라는 제주방언)

by 누리숲

놀멍 쉬멍 걸으멍(놀면서 쉬면서 걸으면서라는 제주방언)

올레에서 작은 잔치가 벌어질 때가 있다. 누구는 커피를, 누구는 삶은 계란을 꺼내고, 어떤 이는 집에서 키운 오이나 고구마를 꺼내 놓고 간식을 먹는 시간이 그때이다. 역올레로 1코스를 2시간쯤 걷다 보면 코끼리를 잡아먹은 검은 보아뱀 같은 성산일출봉이 오른쪽 뒤편에서 푸른 바다로 사라지고, 황금빛 물결이 찰랑거리는 바다 가운데 누워 자는 황소 같은 우도가 옆으로 따라붙는다. 우도가 담긴 푸른 바다가 바라보이는 잔디밭에 앉아 이 선생님과 나는 오전 간식을 펼쳐 놓고 먹었다. 자신을 서울에서 온 육지 것이라고 소개한 선생님은 대학교 수학여행에서 제주에 왔다가 풍경에 반해 이곳에서 살아야겠다는 결심은 했으나 오랜 시간 동안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고 했다. 십여 년 전 서울에서 사업을 하던 중 재미 삼아 걸었던 올레에 반해 그 결심을 실행에 옮겨 현재는 제주에서 살고 있으시단다.

올레에 반한 이유를 선생님께 묻자, 편한 잠을 선물해주었기 때문이라는 그녀의 말에 공감이 갔다. 2008년 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 때 사업이 내리막을 향해 굴러가는데 어떻게든 그 사업을 살려보려고 애를 썼지만 자신에게 남은 건 까만 밤을 하얗게 태우며 지새우게 된 불면의 밤뿐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수면제로도 나아지지 않던 불면증이 올레를 걸으면 사라지는 체험을 하면서 빚뿐인 사업을 정리하고 남은 돈으로 제주에 경매로 나온 버려진 전원주택을 사서 손수 고쳐 살고 있단다. 십여 년 전에 경매로 샀던 그 집이 현재는 스무 배도 넘게 가격이 올랐다며 이 선생님은 인생은 달리면 뒤로 가고 천천히 걸어가면 내 길을 찾아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다며 웃었다.

이른 아침에 손수 내린 원두커피라며 선생님이 텀블러에서 따라주신 따스한 커피를 받아들며 올레에 오기 전 내 삶을 떠올려 보았다. 중도실명인으로 지자체 산하 정책 연구원이라는 내 삶은 겉에서는 여유와 품위가 넘쳐 보였으나 연구과정의 갈등과 성과에 대한 압박감은 피가 말라가는 느낌이었다. 연구원에 입사할 당시 나는 장애인 복지로 박사를 하고 난 뒤 실천현장으로 돌아가기에 지난 십 년간의 학위 기간이 너무 아쉬웠다. 특히 내가 박사학위를 위해 어렵게 습득한 연구방법론을 활용하고 싶은 욕심이 컸다. 그래서 내 전공과 전혀 다른 교통공학에 바탕을 둔 교통약자 관련 정책연구임에도 불구하고 연구원에 용기를 내 지원을 하고 입사했다. 초빙연구위원으로 입사한 나는 석사급 연구원 지원 없이 단독 프로젝트를 수행하게 되었다. 코로나 전에 연구원에는 새벽 첫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했고 출퇴근 시간은 하루에 무려 4시간이나 걸렸다. 점심시간에 책상에 엎드려 쪽잠을 자고 퇴근 후에도 관련 자료를 검토하다 잠을 잔 뒤 새벽에 일어나 보고서를 썼다. 중도실명한 나는 점자와 정보 보조공학 도구 활용도가 낮고 근로지원과 같은 인적 지원에 의존하여 연구를 진행하는 상황이라 지원인과의 인간관계가 연구 수행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출근을 하면 근로지원인과 쉼 없이 자료 검색과 문서 편집 및 보고서 검토 작업을 함께 했는데, 지원인에게 쉬지 않고 말을 해야 업무가 진행되는 상황이라 항상 입이 말라왔다. 그래도 정신을 깨우기 위해서 손에서는 물 대신 커피가 담긴 머그잔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바람을 쐴 수 있었던 것은 커피머신 앞에서 ‘드르륵’거리며 커피가 내려올 때 잠시 희뿌연 시력으로 창밖을 쳐다보는 순간이었다.

연구활동은 한라산같이 높은 산을 등반하는 대회에 비유할 수 있다. 이 대회는 남이 다니는 기존 탐방로를 벗어나 새로운 방식으로 탐방로를 개척하며 누가 빨리 정상에 오르느냐에 따라 순위가 결정된다. 이 대회에 시각적 손상이 있는 나 같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과 동등하게 참여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경기 규칙이 조정될 필요가 있다.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 연구를 진행하는 조건 하에 과업 수행 시간이 더 주어지거나, 석사 연구원 같은 연구보조원을 지원하는 연구지원체계를 강화하거나, 아니면 컴퓨터 활용능력이 뛰어난 근로지원인의 수를 두세 배 늘려주는 근로지원 시스템의 강화 등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와 같은 경기 규칙의 변화는 없었다. 연구원과 장애인고용공단 등에 건의를 했으나 장애인 연구자의 수가 매우 제한적이라 반영되지 못하였다. 또한 장애단체 등과 연대하여 정책변화를 요구하는 시도도 고려했으나 내 연구과제를 진행하기에도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였다. 결국 내 시각적 손상은 경쟁사회 속에서 장애가 되고 말았다.

중도실명을 한 후 지난 이십여 년간 사회적 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내 삶은 장애물 경주에 나선 경주마 같았다. 석사와 박사 학위과정을 마치기 위해서는 졸업논문 전에 종합시험에 통과해야 하고 여러 개 학술지에 소논문이 게재되어야 했다. 또한 청소년상담사, 사회복지사 등과 같은 국가자격뿐 아니라 여러 곳의 상담학회에서 관련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사례발표와 자격시험도 병행하였다. 나는 목표를 향해 쉴 새 없이 달리고 또 달렸다. 주변에서는 점자도 잘 안되고 정보 보조공학 도구 활용도도 떨어지는 중도실명인이 정상인보다 잘한다고 박수를 쳐주기도 했다. 그들의 눈에는 나는 비정상을 극복한 사람인 것으로 비추어지겠지만 실상 학위사회라는 경기장의 규칙이 수많은 장애인들의 투쟁으로 공정하게 바뀐 덕을 나는 누렸을 뿐이었다.

이번 올레에 오기 전 한 달 사이에 무려 세 번이나 근로지원인이 바뀌었다. 최종 연구보고를 얼마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나는 급했고 지원인들은 쉼 없는 업무 강도에 버거워했다. 뒤돌아보면 그들은 한 번도 한라산을 올라가 본 적도, 올라가고 싶지도 않은 훈련받지 않은 등산 초보자들과 같은데 어서 빨리 가자고 재촉하는 시각장애인을 안내하여 등산로도 아닌 숲속을 나침반만 들고 헤쳐가며 정상을 향해 쉴 새 없이 올라야 하니 당연히 힘들었을 것이다. 지금도 그 아침이 기억난다. 연구 최종보고 날 아침 출근하기 전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다 쓰러졌다. 침대가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뒤집어지고 방바닥은 쉴 새 없이 빙글빙글 돌았다. 간신히 최종보고를 마치고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았다. '이석증'이었다. 결국 나는 경주마에서 떨어진 것이다.

어느덧 휑하니 불던 아침 찬바람은 잦아들고 햇살이 손등을 따스하게 간지럽혔다.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 우리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한 손에는 집게를, 다른 한 손에는 쓰레기봉투를 들고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를 주우며 앞서 걷다가 이곳저곳에 핀 가을꽃을 알려주기도 했다. 쨍하니 비쳐오는 가을 햇살 속에서 덤불 속 풀 향기는 부풀어 오르고 안갯속 같은 내 시야 속에서 코스모스 꽃들이 현무암 돌무더기 너머에서 하늘거렸다. 한참을 걸었을까, 드디어 시흥리 해안로가 나왔다. 앞서 걷던 선생님께 해안로 모래밭에서 쉬어가자고 제안을 했다. 우리는 배낭과 쓰레기 봉투를 시멘트 계단에 내려놓고 등산화 끈을 풀었다. 그리고 마찰열로 달구어진 발에서 양말도 벗어버리고 가을 햇살로 따스해진 모래사장을 함께 걸었다. 나는 선생님께 올레에서 간세처럼 걷는 건 어떻게 걷는 건지를 물었다. 선생님은 하얀 포말을 만들며 밀려오는 파도에 발을 담그며 "오늘처럼 놀멍 쉬멍 걸으멍 하면 되지요." 하며 웃었다. 파도가 물러나며 만들어놓은 나이테를 따라 물기 가득한 바다의 속살에 나도 발을 담그자 찰랑거리며 물결은 조금씩 내 발을 끌어당겨 모래 속에 나를 심어 놓았다. 나는 호주머니에서 풍경을 꺼내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쏴와~착' 하고 파도는 발등과 무릎을 스치고 가고 '쌩그랑' 하는 풍경소리는 파도가 칠 때마다 넘실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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