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 피폐한 로맨스
“으윽...”
난 서성호 바로 옆에서 차를 빠르게 세웠다.
엄청 빠른 속도로 달려오다 갑자기 멈췄기에,
브레이크를 강하게 밟았지만
차는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앞으로 밀려
넘어진 성호를 많이 지나 있었다.
난 차에서 내려 성호에게 다가갔다.
주변에 사람이 많이 있진 않았지만 모두 큰 소리에 놀라 우릴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뭐야? 조금만 잘못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어.”
성호는 충격이 컸는지 자리에서 아직도 일어서지 못했다.
“미안해. 나도 모르게 브레이크랑 엑셀을 헷갈렸지 뭐야.”
“그... 그래?”
“그렇다니까. 진짜야.”
난 아무렇지도 않게 서성호에게 거짓말을 했다.
그런데 이상할 정도로 이런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면서
서성호에게 미안하거나 한 죄책감 따위는 전혀 들지 않았다.
“운전을 하루이틀 한 것도 아닌 네가... 브레이크랑 엑셀을 헷갈릴 정도라면... 그럼 운전을 하지 말아야지...”
우릴 보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 때문이었을까.
서성호는 주체 안 되는 화를 억지로 참는 것 같았다.
난 그런 서성호에게 마지못해 손을 내밀었다.
성호는 날 한번 쓱 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내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시 멈춰 섰던 사람들은
서성호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걸 보고는.
원래 자신이 가려던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엉덩이에 묻은 먼지를 신경질적으로 털어내는 서성호.
난 그 모습을 보며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엄청난 만족감이 들었다.
“성근아, 다음부터는 말로 하자...”
“무슨 말이야?”
“무슨 말이긴... 저번에는 소영이 집 앞에서 내 목을 죽일 듯 조르더니... 이번에는 차로...”
“에이. 너 원래 그런 쪽으로는 뒤끝은 없었잖아.”
내 말을 들은 성호의 얼굴이 급격하게 일그러졌다.
“그래. 미안해. 미안하다고... 성호야, 요즘 내가 힘이 좀 많이 든다. 그러니까. 좀 이해해 줘.”
“알았다. 알았다고.”
성호는 얼른 내 차에 탔다.
난 그런 성호와 함께 조용하고 이야기하기 적당한 곳으로 갔다.
**
멀리 한강이 보이고 살랑거리는 바람이 불어오는 곳...
바로 이곳은 내가 살고 있는 원룸 건물의 옥상이다.
여기는 다른 걸 다 떠나
담배 하나는 마음 놓고 피울 수 있는
나 같은 흡연자들에게는 아주 소중한 공간이다.
“후우...”
우린 담배를 피우며 멀리 보이는 한강을 바라보았다.
“남자끼리 이게 무슨 청승이냐?”
서성호는 옥상에 마련된 평상에 앉아 담배를 피우면 불만 가득한 얼굴이었다.
“왜? 여기가 싫어?”
“그건 아닌데... 아니다. 됐다.”
서성호는 짧아진 담배를 대신해 다른 담배 하나를 급히 꺼냈다.
난 그런 성호를 보며 겉으로는 미소 짓고 있었지만.
속에선 엄청난 분노가 일고 있었다.
아까 그냥 차로 밀어버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게 너무 후회된다.
‘그런데 내가 오늘따라 왜 이러지...’
난 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화가 난다고 해도 이런 생각은 굉장히 위험하다.
거기다 난 성호에게 확인할 게 너무나 많다.
그걸 다... 하나도 빠짐없이 다 확인해야 한다.
난 은근슬쩍 성호 옆으로 가 앉았다.
“그래서 나에게 진짜 묻고 싶은 말이 뭔데?”
성호는 내게 묻기도 전에 먼저 선수를 쳤다.
그래 오히려 이게 더 잘 된 거다.
“너, 군대는 다녀왔냐?”
“아니!”
내 첫 질문에 서성호는 아주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그... 그래...”
“응. 또 묻고 싶은 건 뭔데?”
“그... 그게 말이야...”
내 예상과 달리 서성호가 이런 식으로
너무 당당하게 대답을 하니 오히려 내가 위축될 정도다.
거기다 다음 질문은 굉장히 민감한 질문이라 나도 쉽게 묻기 힘들었다.
그래도 진실은 알아야 한다.
“그럼... 너 호스...”
“응, 맞아. 난 호스트 바에서 선수로 직접 뛰기도 했고, 나중에는 호빠 운영도 했어.”
“...”
내가 예상했었던 서성호의 모습은 이게 아니었다.
내가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들에 놈은 어쩔 줄 몰라,
진심으로 아니라고 말까지 더듬으며 강력한 부정을 해야 맞았는데...
이건 내 예상을 벗어나도 엄청 벗어난 놈의 반응이었다.
“그래, 너에게 거짓말했어."
"..."
"난 군대도 면제고, 어릴 적부터 가출도 밥 먹듯 했었고 호스트 바에서 일했어. 또 다른 것도 말해줄까?”
“그런데 왜. 내게는...”
“응. 그거야 당연한 거 아냐, 그땐 네가 나에게 엄청 필요했으니까. 그랬지.”
“내가 필요했다고?”
“그래. 아주 절실하게 말이야. 물론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
성호의 예상 못한 반격에 난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잊었다.
“너, 현영이한테 나에 대한 안 좋은 말을 잔뜩 들었나 본데... 이야기의 전부를 들은 건 아닌 거 같아.”
“전부가... 아니라고?”
성호는 당황한 내 반응을 보며 확신을 한 거 같았다.
“성근아, 너무 성급하게 굴 필요 없어.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내가 다 말해줄게.”
마치 내가 이렇게 나올 줄 알았다는 듯.
성호의 행동은 나보다 오히려 더 평온했다.
“너에게 거짓말을 한 건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 하지만 그땐 현영이 엄마란 여자의 무리한 요구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성호는 바로 대답하는 대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집과 현영이 집이 어떻게 해서 처음 연결된 건지 말하는 게 순서겠네.”
성호는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
.
.
서성호 부모님은 원래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고 했다.
많이 풍족하지도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게 생활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인가.
갑자기 자신들이 사는 동네.
전망 좋고 사람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에 건물 하나가 세워졌다고 했다.
“거기가 현영이 부모의 여러 별장 중 하나였지.”
성호는 기억하기 싫은 기억을 억지로 되살리는 것 같이 보였다.
“우리 부모님은 이장님 소개로 거기 별장 관리인으로 추천받았어. 그래서 농사일을 하는 틈틈이 건물도 관리도 하고, 다른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경비일 비슷한 것도 했지....”
“...”
“너도 잘 알겠지만 별장 관리를 제대로 하려면 돈이 많이 들잖아.... 그런데 우리 부모님이 관리하던 그 별장은 좀 달랐어... 뭔가 특수한 목적을 위해 급조된 그런 곳이었거든... 그래서 관리인이 많이 필요 없는 그런 곳이었지.”
“특수한 목적을 위해... 급조가 되었다고..?”
성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돈 많은 현영이 부모가 사람 이목이 잘 닿지 않는 그런 곳에 급조한 별장... 뭐겠어. 뻔한 거지... 후우...”
성호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난 성호에게 별장의 용도에 대해선 자세하게 묻지 않았다.
그 용도란 것이 뭔지 너무 확실하게 알 수 있었으니까.
“거기에 처음에는 현영이 아버지란 놈이 젊은 여자들을 데리고 오기 시작했지.”
“...”
“우린 원래 별장 밖에서 살았는데... 관리를 더 철저히 하란 뜻으로 별장 안으로 들어가 살게 되었어. 처음에는 시설 좋은 별장에서 산다는 게 엄청 좋았는데... 사실 거기서부터 우리 집에 비극이 시작된 거야.”
“...”
“시도 때도 없이 젊은 여자들을 데려와선 그 짓거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데... 그런 더러운 짓거리가 밖으로 새지 않도록 우리 입단속을 엄청 시켰거든.”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구나...”
성호는 말을 하다 눈이 커져 날 바라보았다.
“오호... 역시 가방끈이 길어서 그런가...”
“그 정도는 다 아는 거 아냐?”
“그래, 하여튼. 현영이 아버지란 놈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현영이 엄마란 여자도 문제였어... 갑자기 연락이 와선 언제 별장이 비는지 묻더니... 어느 날부터 갑자기 젊은 남자들을 데리고 오기 시작한 거야.”
성호는 말을 하면서 점점 인상을 썼다.
“내가 그런 것보다 더 재밌는 이야기를 해줄까?”
솔직히 성호가 하는 말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성호가 지금 하려는 말이 무슨 말인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으니까.
“너랑 침대에서 시도 때도 없이 굴러먹는 그 현영이도... 우리가 관리하는 별장을 엄청 애용하기 시작했다는 거지.”
“...”
“아, 물론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어. 처음이야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이니까. 말 그대로 별장에 쉬러 왔을 수도 있었겠지. 그래서 자기 부모와 함께 왔던 현영이와 어릴 적 함께 놀기도 하고 그랬거든... 현영이 부모란 놈들은 현영이랑 별장에 같이 와서 어린 현영이랑 놀아 주는 게 아니라... 쾌락을 위해 젊은 연놈이랑 말도 안 되는 더러운 짓거리를 할 동안... 나랑 현영이는 밖에서 놀고... 큭큭큭..."
"..."
"그런데 그런 현영이도 성인이 되기가 무섭게... 자기 부모가 했던 짓거리를 그대로... 아니 더 심하게 하더라. 솔직히 자기 부모에게 보고 배운 게 온통 그건데... 따지고 보면 너무 당연한 거긴 해.”
난 조용히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성호가 지금 나에게 하는 말은
굉장히 듣기가 거북한 말들 뿐이었다.
“거기다 왜 내가 너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는지... 그것도 엄청 궁금하겠지. 안 그래?”
성호는 날 바라보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급하게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래... 듣고 싶다... 꼭... 하필 왜 내게 접근했는지...”
성호는 이런 내 반응이 무척 재미있는 거 같았다.
“그래. 나도 너에게 언젠가는 꼭 말해주고 싶었어. 그런데... 그게 오늘이 될지는 정말 몰랐네. 큭큭큭.”
기분 나쁜 성호의 웃음소리...
이놈은 분명 지금 날 가지고 놀고 있는 거였다.
43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