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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직자에게 경조사란?

먼저 퇴직하신 분의 자제 결혼식에 참석 후 느낀 짧은 생각(D-198)

"벌써 퇴직하신 지 3년이나 되셨네요?"

"잘 지내고 계시지요?"

"요즘 뭐 하고 지내세요?"


어느 날 오후에 정년퇴직하신 지 3년째가 되는 선배분이 사무실에 오셨습니다. 아직도 같이 일했던 상당 수의 직원들이 근무 중이니 이들과 인사하느라 정신이 없네요. 갑자기 찾아오신 이유는 당연하지만 자제분의 결혼식이 있어서였습니다. 직원들의 이름이 하나씩 적혀있는 청첩장 봉투를 멋쩍게 꺼내시면서, 인사를 하고 계시는데 서글픈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저에게 전해주시는 봉투에는 이전 직책인 ○○○실장이라고 쓰여있네요. 잠시 차 한잔을 하면서 그동안 지낸 이야기와 결혼하는 아들에 대한 근황 등을 주고받았습니다. 선배분의 두 아들 모두 우리 모두 잘 아는 한국의 양대 반도체 대기업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자식들에 대한 걱정은 없으신 것이 다들 부러운 모양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몇몇 직원들은 아직 자녀들이 대학생이거나 심지어는 중학생도 있으니 어찌 안 부럽겠습니까.


참석을 고민하고 있네요

결혼식이 다가오면서 갈지 말지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서울 영등포 쪽이라 멀지도 않은데, 요 근래에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경조사에 별로 참석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계속합니다. 예전에는 특히 애사(哀事)의 경우 아무리 먼 곳이라도 꼭 참석을 했었는데, 이마저도 마음이 간사하게 바뀐 것인지 조문을 망설이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실제로 얼마 전 동기의 빙부상에는 참석하지 않았었네요.


당장 내일 오전이 결혼식인데 전날 저녁에도 결정을 못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야 무슨 큰 결심을 한 것처럼 옷을 차려입고 집을 나섰습니다. 이렇게 집을 나서니 차라리 마음이 편해지네요. 영등포역에 내려서 한 15분 정도를 걸어가는데, 모처럼 온 곳이라 사방을 구경하면서 결혼식 20분 전에 도착을 했습니다.


참석한 사람을 보니

도착해서 선배에게 축하인사를 전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아는 얼굴이 몇몇 보이네요. 당연히 같은 팀에서 근무했던 동료도 보이고, 예전에 다른 팀으로 전근을 간 직원도 보이고, 바로 작년에 정년퇴직하신 분도 와 계십니다. 오랜만에 만난 분들도 있어서 한참 결혼식장 로비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예식이 시작되는 것을 잠시 본 후에 다들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오늘 혼주인 선배는 저희 팀 초창기부터 일을 시작하셨기 때문에, 거의 38년 가까이 한 팀에서만 근무를 하신 분입니다. 업무 역량이 특출나신 분은 아니지만 동료들의 어려움도 잘 들어주시고, 뒤에서 지원도 해주시던 참 성실하고 성품이 좋으신 분입니다. 저는 그래서 오랜 시간 동안 같이 근무했던 직원들이 많이 왔으리라 생각을 했었는데, 제 예상은 빗나간 것 같습니다.


작년에 정년퇴직하신 분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벌써 1시간 가까이 지난 것 같았습니다. 예식이 끝난 후 한꺼번에 하객이 몰려오시니 자리도 부족한 것 같아서 자리를 떴습니다. 그러면서 사방을 찬찬히 둘러보니 아까 본 동료 외에 몇 명이 더 보이기는 합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한 팀에서 근무했던 끈끈한(?) 동료라고는 고작 2명뿐이었고, 오히려 다른 곳으로 전근 간 사람들이 더 많이 보이네요. 그리고 우리와 함께 일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던 것으로 알고 있는 협력사 직원은 한 명도 보이지 않습니다.


경조사 참석이란?

퇴직을 하면 무엇보다 삶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회사를 떠나면서 동료들과도 멀어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주변에 남은 사람은 가족과 몇 안 되는 친구가 전부일 것입니다. 당연히 외롭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어떻게든 곁에 있는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고자 노력을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때 기존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기회 중 하나가 바로 경조사가 아닐까 합니다.


경조사를 통해 과거의 동료들과 만남의 기회를 얻을 수 있고, 오랜만에 과거 이야기를 하면서 웃고 떠들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이렇게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가지면서, 잠시나마 혼자만의 외로움을 벋어 던지고 나도 살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 또한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되네요.

"인간은 본래 사회적 동물이다(Man is by nature a social animal)"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신의 저서 '정치학(Politics)'에서 주장한 말입니다. 이는 혼자로는 불완전한 인간은 사회 속에서 공동체를 이루어 서로 갈등을 조율하고, 협력과 소통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의학적으로 실제 증명한 연구가 하나 있는데,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고 고립되어 있을 때 심혈관 질환의 발생률이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평균 나이 79세인 여성 57,825명을 대상으로 '사회적 고립에 대한 설문과 그리고 외로움과 사회적 지지에 대한 설문'을 한 후 수년간의 추적 관찰을 해보니 '사회적 고립(8%)과 외로움(5%)'의 두 요소 모두 높았던 여성들의 경우 심혈관 질환 위험이 13%에서 27%까지 높아졌다고 합니다.


불필요한 관계의 현실적 정리

어떤 분은 퇴직 후 주변에 대한 정리가 꼭 필요하다고 합니다. 저 역시 그 생각에는 100% 공감을 합니다.


퇴직 후 바로 닥쳐오는 소득절벽으로 인해, 지금까지 저축했던 돈을 곶감 빼먹듯이 하나씩 빼먹어야 하는 시기가 됩니다. 아무리 아껴도 필수적으로 나가야 할 지출은 어쩔 수 없습니다. 경조사비도 그중에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우리는 과거의 얽매여있는 체면 때문에 또는 변함없이 나는 건재하다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이전의 위치에 걸맞은 성의를 표시하고자 합니다. 현실은 그렇지 못한데도 말입니다.


내가 아는, 아니 알았던 사람과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모두 필요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휴대폰에 수많은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지만, 일 년에 한 번이라도 전화를 걸었거나 받았던 적이 없는 전화번호가 태반(太半) 일 것입니다. 우선 이렇게 저장되어 있는 이전에 알았던 단순한 관계부터 하나씩 정리해 나가는 것이 『불필요한 관계의 현실적 정리』가 아닐까 합니다.


저도 얼마 전에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던 전화번호 중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번호를 지웠습니다. 그랬더니 처음 저장된 전화번호의 63%가 최근 1년 간 전화를 했거나 받은 적이 없는 전화번호이더군요.



요즘 우리는 변동성(Volatility), 불확실성(Uncertan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무엇이 맞고 틀리는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여기에 새롭게 추가된 것이 있다면 '광기(Madness)'가 아닐까 하네요. 큰 나라, 강한 나라, 쌀 나라의 우두머리를 보면서 느낍니다.


저도 얼마 안 있으면 아들 녀석을 장가보낼 것입니다. 이때 어디까지 연락을 해야 할지 한번 더 고민하게 될 것 같습니다. 괜히 불필요한 연락을 해서 저를 잊고 있는 분들에게, 불편한 감정만 주는 것은 아닐는지 하는 생각에서 입니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장례식은 부모인 저의 몫이 큰 반면에, 결혼식은 아들의 몫이 더 크다는 것입니다. 아들 결혼식에 저의 하객보다는 아들의 하객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할 것이라는 믿습니다.

그럼 제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해질 것 같네요.


오늘도 펭귄의 짧디 짧은 다리로 달리고 달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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