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시작한 글쓰기를 통해 얻은 것이 있다면 기억입니다(D-195)
휴게실에서 홀로 커피를 마시면서, 건너편에 있는 산을 바라보고 서 있었습니다.
다 늙은(?) 후배 두 명이 저에게 와서 물어보더군요.
(헤맑은 목소리로)
"선배님! 퇴직 준비는 잘 되시나요?"
"퇴직 후 뭐 하고 지내실 건가요?"
"뭐라도 하셔야 심심하지 않으실 텐데요."
남이야 심심하던 말던... 댓구를 할까 말까 하다가 이야기를 했습니다.
"특별하게 준비한 것은 없고, 그냥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지낼 거야."
(더 헤맑은 목소리로) 다시 물어봅니다.
"혹시 무슨 일을 하실 계획이신가요? 저희도 곧 퇴직인데 궁금해서요."
좀 놔두지 말하기 귀찮은데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물어보는데 무시할 수도 없고 해서...
"그동안 밀렸던 집안 일도 좀 하고, 인근 산으로 트래킹도 다니고, 도서관에서 책도 읽고, 소소하게 글쓰기도 할 예정이야."
"네~ 아! 그런데 글쓰기는 어떻게 하시는데요?", "어디서 글을 쓰시는데요?"
"브런치스토리라는 사이트에서 글을 쓰고 있지."
스마트폰으로 잠시 찾아보더니, "이런 사이트도 있군요."라고 하면서...
"그런데 글은 왜 쓰시는데요? 나중에 출판하시려고요?"
"아니, 기억하려고,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나 개인적인 일이던 상관없이 기억하려고"
기억하기 위해 글을 씁니다
저는 글쓰기에 특화된 사람은 아닙니다.
아주 우연한 기회를 통해 입문하게 된 것이 인연이 되어, 소소하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옥같은 글이나 아름다운 표현이 들어간 글을 쓸 수 있는 실력도 아닙니다.
처음에는 일기와 같이 일상을 소소하게 적기 시작했습니다.
글을 쓰다 보니 어렴풋이 또는 헷갈리는 기억들이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기억을 기록하기 위해서라고요.
누군가 저에게 "왜 글을 쓰시나요?"라고 물어보면, "기억하기 위해 글을 쓰고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은 희미해져 갑니다.
희미해진 기억은 과거 또는 현재와 섞이면서 사실에서 벋어 나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남은 기억을 보존하기 위해서 글을 씁니다.
이제 시작되는 일은 맑고 밝은 정신으로 정확하게 쓰고자 합니다.
나중에 찾아서 읽어보면, 당시를 선명하게 회상할 수 있을 테니까요.
저의 퇴직 전의 생활과 느낌...
딸의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
가족과 함께 하였던 희로애락의 순간들...
이 모든 것을 기억하기 위해, 오늘도 남이 아닌 나를 위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오늘도 펭귄의 짧디 짧은 다리로 달리고 달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