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사원의 부재가 아쉽게 느껴지네요(D-219)
휴대폰이 책상을 두드리듯이 진동을 해서 쳐다보니 3년 후배의 이름이 떠 있습니다.
보직에서 내려온 후 처음 연락이 온 것이니 거의 2년 만의 전화네요.
오랜만에 전화
무슨 일로 전화를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예상과 같이 "잘 계셨는지요? 요즘 뭐 하시고 지내시나요?"하고 물어보네요.
후배들로부터 전화가 와서 받아보면, 마치 짠 듯이 똑같은 멘트가 잘 지내냐는 인사입니다.
서로 안부인사를 나눈 후 "무슨 일로 전화했냐?" 하고 물어보니 그제야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우리가 생산하는 제품과 관련된 것으로 고장 수리 절차에 대해 혹시 아는지 물어보네요.
"퇴직이 얼마 안 남은 사람에게 이런 걸 물어보냐?" 하고 말하니, 그래도 형님한테 전화하면 후배직원들에게 쉽게 확인하고 알려주실 것 같다고 합니다.
호떡집에 불났나?
잠시 이야기를 들어본즉슨, 후배 쪽 사업부 임원이 신제품이 나오니 구경을 하다가 한마디 한 모양입니다.
"이건 어떻게 분해하지?"
"분해는 할 수 있나? 분해하는데 특수한 장비나 시설이 필요한가?"
윗분이 궁금해서 한 마디 하면 이게 발단이 되어, 마치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다들 난리가 나곤 하는데 아마 이번에도 그런 것 같습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가장 달갑지 않은 것이 바로 이런 상황이더라고요.
"호떡집에 불났다"는 속담은 호들갑스러운 상황을 나타내는 말로, 과거 호떡이 엄청나게 인기가 있어 문전성시를 이루니 시끄럽고 정신없는 광경을 빗댄 말입니다.
일단 기존 제품과 비교하여 생각해 본 것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내가 봤을 때는 분해도 가능한 구조이고, 별도의 특수한 장비나 장소도 필요 없을 것 같다. 그래도 한번 담당자에게 물어보고 알려줄게" 하고 끊었습니다.
그리고 사무실에 와보니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하는데, 아마 제가 받은 전화와 비슷한 내용인 것 같더군요. 그래서 가까이 가서 물어보니 맞다고 하는 것을 보아, 아마 후배 쪽 사업부에서 사방팔당에 문의를 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의외의 답변
담당자인 3년 차 신입사원에게 해당 부분을 분해하는 게 문제가 있냐 하고 물어봤는데...
"이 부분은 협력업체에서 작업을 안 해봤다고 합니다"라고 대답하길래 잠시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참고로 협력업체에서는 실제 작업을 하고 저희는 일정관리, 감수 및 최종 확인을 하는 것으로 R&R(Roles and Responsibilities, 역할과 책임)이 정립되어 있습니다. 제가 팀장일 때 외주화를 하면서 규정한 것이지요.
새로운 제품이 나오면 당연히 분해하여 수리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그 방법을 필드에 제공하여야 하는데, 협력업체에서 해당 업무를 수행했는지 안 했는지 확인도 못했다는 게 좀 이해가 안 되더군요.
어이가 없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해서, 담당자를 데리고 직접 확인하고자 신제품이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간단하게 육안으로 살펴보니 당연히 분해가 되는 구조이고, 이전 제품과 유사한 방식으로 작업이 될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같이 간 담당자 역시 제품을 직접 눈으로 보더니 바로 수긍을 하더군요.
임시방편으로 조치
일단은 급한 호떡집 불은 꺼야 할 것 같아서, 제품이 분리되어 분해할 수 있는 구조임을 여러 각도에서 사진을 찍어서 후배한테 일단 전송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전 제품과 유사한 구조이니, 이번 신제품도 동일하게 작업이 될 거야"라고 이야기하고, 다음 주에 최종 확인 후 작업절차를 만들어서 보내주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후배도 얼마 전까지 팀장을 하던 친구라 상황에 대해 금방 이해를 했고, 윗분에게 잘 설명드린다고 하니 일단 급한 상황은 마무리를 시켰습니다. 간단한 설명으로 상황을 신속하게 마무리할 수 있다면 그게 베스트라고 생각합니다. 괜히 검토와 확인을 위해 시간을 끌면, 보고서 작성 등 일이 더 커질 수 있으니까요.
선배사원이 후배사원을 충분히 가르쳐 혼자서 자립할 수 있도록 하려면 최소한 1년, 충분하게는 2~3년 정도는 지원을 해주었어야 합니다. 그래야 업무에 대한 기준과 프로세스를 정립할 수 있고, 긴급한 상황이 생겼을 때도 우왕좌왕하지 않고 방향을 잡고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신입사원이 들어온 후 반년만에 보통 사수라고 말하는 선배사원이, 다른 팀으로 이동을 한 여파가 이제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 같습니다. 저희 조직도 선배사원과 후배사원 간의 간격이 너무 크고, 특히 허리 또는 연결 고리 역할을 해야 하는 중간층이 없다 보니 이런 일이 생긴 것으로 보입니다.
조직을 안정적으로 균형 있게 운영하려면 최소한 2~3년마다 신입사원이 들어와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선배와 후배사원의 간격이 크지 않아 서로 잘 소통하고 코칭도 원활할 것입니다.
두 시간 남짓 바삐 움직이면서 확인도 하고 상황도 정리하고 나니, 벌써 오전시간이 지나고 점심식사 때가 되었습니다. 비록 큰 일은 아니지만 후배사원에게 조금이나마 도움도 주었다는 생각과 오전시간도 쏜살같이 흘러간 나름 보람찬 하루였네요.
오늘도 펭귄의 짧디 짧은 다리로 달리고 달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