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업무 보고 하기

이상한 나라의 팀장 7

우리 팀은 본부 내에서도 중요도와 관심도 측면에서 매우 낮은 위치에 있습니다.

다른 모든 팀은 '제품 판매'라는 목적 아래 하나로 모아서 구성이 되었는데, 뜬금없이 '서비스 조직'이 들어가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관심이 없는 조직에 있는 것도 나름 장점이 있기는 합니다.

위로부터 내려오는 지시사항이 아예 없거나 적기도 하고, 자주 부르지도 않아 심적인 면에서나 일하는 측면에서는 편합니다. 전체 회의가 있어도 우리와 관련된 주제는 없으니, '꿔다 놓은 보릿자루'와 같이 한쪽 구석에 앉아서 졸지 않고 경청만 잘하면 됩니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팀장으로서는 마냥 즐겁지만은 않습니다.

팀을 알리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이 '보고' 또는 '발표'입니다. 보고할게 많으면 몸은 피곤할지 몰라도, 윗분들이나 다른 팀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존재감이 없는 그림자 취급을 받습니다. 이렇게 되면 신입사원을 받을 때나 팀원 진급 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고, 신규사업을 위한 예산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생깁니다.

남들은 하루가 멀다고 윗분에게 잘 포장된 보고서를 가지고 올라가 보고를 하지만, 매일 동일한 업무를 반복하는 팀은 도통 보고할 내용이 별로 없습니다. 어저께 한 보고랑 내일 보고할 내용 중 다른 부분은 진도율 뿐이 없네요.


결국 생각난 것은 자폭


팀장 초기에는 의욕이 넘쳐 '보고서 찍어내기'를 해봤는데, 결국 소재의 고갈 및 체력의 한계로 인해 접었습니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고민을 한 결과 생각난 것이, '우리가 하는 일의 위험성'을 보고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팀의 업무는 제품 판매 이후와 연관된 업무라 당장 일을 안 해도 티가 잘나지 않습니다. 제품 판매와 같이 일일 판매 실적과 권역별 판매 추이 등이 계속 변하는데 비해서 말이지요. 그냥 신제품이 나오면 따라가는 별책 부록과 같은 개념이니, 본지(제품 판매)에 비해 관심이 덜 갈 수밖에요. 그렇지만 우리가 만든 정보가 제공되지 않거나, 잘못된 정보가 제공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어쩌다 보니, 여러 국가의 법규에 '반드시 제공되어야 한다'라고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법규를 위반할 경우

지금까지는 법규에 저촉될까 봐 전전긍긍하며 업무를 했고, 또 법규 위반사항이 있어도 가능하면 보고하지 않고 실무선에서 잘 마무리 지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림자 같은 팀이라 별로 관심도 없는 팀인데, 여기에 문제까지 발생하면 완전히 관심 밖으로 내쳐질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따른 스트레스 역시 엄청 컸었고요. 그런데 어차피 하고 있는 업무인데, 굳이 숨기는 것보다는 오히려 이런 위험성을 보고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패러다임 쉬프트]

일종의 '생각의 전환', '패러다임 쉬프트(Paradigm Shift)', '역발상'입니다.

'(비록 모두들 무관심하지만) 법규 상 제공이 되어야 하는 업무라서 적기에 제공하지 못하면, 제품 판매를 못 할 수도 있습니다', '(모르셔도 되는데) 일부 국가에서는 법규로 되어 있기 때문에, 법규를 위반하면 회사가 금전적으로 큰 불이익을 당할 수 있는 업무입니다'라고 하면 윗분으로부터 관심이 생길 것 같았습니다.

비록 '화약을 지고 불로 들어간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우리 팀 업무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인식시켜야 하겠습니다.


자! 이제 시작입니다

우리 팀 업무와 관련된 모든 법규를 지역별로 정리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생각보다 방대한 내용인데도, 그동안 체계적으로 관리가 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자료 정리로만 2주가 걸렸습니다. 이걸 다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법규문장과 예시를 함께 정리하다 보니 다시 2주가 소요되었네요. 처음 시도하는 위험한 보고(?)라서 다듬고, 또 다듬다 보니 거의 한 달이 걸렸습니다. 이게 은근히 우리 업무에 대한 공부도 되네요.

이제 준비가 되어서 보고날짜와 시간을 잡았습니다. 보고하는 당일 은근히 부담도 되고, 보고를 받는 입장에서 어떤 이야기를 할지, 어떤 지시사항이 내려올지도 걱정이 되었습니다. 괜히 시작했나 하는 후회도 생깁니다.


그 결과는...

보고는 잘 되었습니다.

총 3단계의 보고를 거치면서 일부 수정되고 다듬어지기는 했지만, 최종까지 보고가 완료되었습니다.

예상한 것보다 다들 꽤 놀라는 표정이었습니다.

'제네들이 저런 업무를 하는 것은 알았는데, 그 업무가 꼭 필요하고 위험성이 있는 업무였네' 하는 표정입니다. 물론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거나, 마뜩잖게 생각하시는 분도 있었고요.

최고 경영층 중 한 분이 물어보시더군요. "지금까지 어떻게 문제없이 해왔냐고".

사실, 문제는 있었는데 보고를 안 한 거지만요. 그래도 답변은...

"최선을 다해 문제가 안 생기도록 노력했지만, 일부 문제는 있었습니다. 다만, 신속하게 조치하여 큰 피해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법규도 많아지고 강화되기 때문에, 향후에 정말로 큰 문제가 생길 수 있어서 걱정입니다. 현재 대책을 마련 중이나 자동으로 법규 위반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기 때문에, 우선 법규업무를 담당할 인원이 시급하게 필요한 상황입니다."와 같이 말씀을 드렸습니다.



늘 느끼는 건데 이럴 경우 즉답보다는 고개만 끄덕이거나 또는 "고생이 많네요. 앞으로도 문제가 없도록 해주세요" 정도의 두루뭉술한 표현이 대부분입니다. 하긴 이것 말고도 다른 중요한 일이나 시급한 일도 많으니, 모두 챙겨서 신경을 쓸 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은 듭니다.

당장 신통한 답변을 들을 수 없어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우리 팀 업무에 대한 인식이 조금이나마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주기적으로 법규 문제에 관해서는 보고할 빌미가 마련되었네요. 그러면서 다른 것도 살짝 끼워서 보고할 수 있을 겁니다. 신규 인원의 충원, 시설 장비의 노후화, 외주화에 따른 문제점 등등.



좋은 방법은 아닐 수 있지만 '위험성 있는 항목'을 찾아서 보고하는 것도 고려해 볼만합니다.

기획에 연관된 업무와 같이 다양한 보고를 하는 조직이 아닌 변방의 조직 같으면, 뭔가 이슈가 될 만한 것을 찾아야 합니다. 그게 좋은 이슈이던 나쁜 이슈이던 상관이 없습니다.

좋으면 좋은 데로 나쁘면 나쁜데로, 문제점과 적절한 대응 방안을 동시에 제시하면 됩니다.

어차피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해야 되는 업무인데, 최소한 존재감은 있게 일하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하루를 일해도 재미있고, 보람도 있지 않을까요.


오늘도 펭귄의 짧디 짧은 다리로 달리고 달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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