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물어도 안 아픈 손가락
옛날 속담에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당연히 자기 손가락을 물었으니 안 아플 리가 만무한데, 이게 팀장 입장에서 팀원을 보면 안 아픈 손가락이 있습니다. 조직 자체가 불합리하게 구성되었고, 이로 인해 사람은 많이 있는데 쓸 사람이 없을 경우 더욱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왜 당신 팀은 그렇게 사람이 많나요?", "인원은 충분하니 신규 인원을 줄 수 없습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화가 머리끝까지 나곤 합니다. 그래서 "그럼 당신네 팀에 우리 팀 ○○를 줄 테니 데려가라."하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그럼 대부분 인상을 쓰면서 대화는 종료되곤 합니다. 자기네도 ○○ 같은 직원은 1+1으로 줘도 안 데려갈 겁니다. 그만큼 무용한 존재, 해(害)가 되는 존재가 어느 팀이나 하나씩은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다만 우리 팀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라서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왜 그럴까요
바로 문제는 달라는 신입사원은 안 주고 전입사원만 주는 것입니다. 뭐 전입사원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업무에 대한 경험도 있고, 회사 생활을 통해 적응력과 순발력도 좋고 합니다. 하지만 그동안 전입 온 사람들의 면모를 보면... 좀 아니기는 하지요.
이전 팀에서 팀원 간 불화를 일으켜서...
팀장의 업무 지시를 거부하거나 대들어서...
협력업체에 갑질을 해서...
업무가 힘들다고 전출 요청을 하여서...
노조에 가입하여 괘씸해서...
팀장을 하다가 내려와서...
팀이 해체되면서 갈 곳이 없어서...
나이가 들어서...
개중에는 비록 이와 같은 사유로 왔지만 업무 역량이 뛰어난 분도 있습니다. 해외주재원 생활을 해서 글로벌 감각이 있는 분도 있고, 팀장으로 다양한 경험을 하셨던 관록이 있는 분도 계시니까요.
혹시? 역시나~
어느 날 실장으로부터 한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해외주재원으로 있다가 귀임하는 대리급인데 영어도 잘하니까, 너희 팀으로 가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Never! 그럴 리가요. 우수한 인재이면 본사에서 쓰지 우리 팀으로 보낼 리가 없을 테니까요. 정중히(?) 사양을 하니 바로 태도가 돌변합니다. 좀 전까지는 '부탁의 어투'였다면, 지금은 '명령의 어투'네요. 지금과 달리 10여 년 전에는 회사가 '상명하복' 분위기 인지라, 결국 받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래도 모처럼 받은 대리급 사원이고 하니, 그룹장 중 일부가 자기 그룹으로 보내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처음 얼마 간은 조용하게 팀원들과 잘 지내나 싶었는데, 여지없이 팀원들과 충동을 일으킵니다. 같은 그룹에 있는 직원들이 같이 일을 못하겠다고 모두 나자빠졌습니다. 그래서 다른 그룹으로 또 다른 그룹으로 거의 모든 그룹을 전전하게 됩니다(우리 팀은 꽤 규모가 커서 6개의 그룹이 있었습니다).
역시 예상했던 그대로 폭탄을 받았습니다. 이전에는 고폭탄 수준이었다면 이번에는 거의 원자폭탄 수준입니다. 저걸 '자발적 왕따'라고 해야 할지, 자기만의 '확고한 철학'이 있어서 그런지 도통 대화가 안 됩니다. 그때 싸워서라도 받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을 수천번을 한 것 같습니다.
+ 알파의 역효과
단순히 직원들과 사이가 안 좋은 걸로만 멈춰있으면 좋겠는데... 비슷한 또래의 대리에게 과장으로 진급하면 노조에서 탈퇴되고, 나중에 회사가 어려워지면 잘릴 수 있으니 진급을 하면 안 된다고 계속 꼬드긴 모양입니다. 제 생각에는 자기 혼자만 진급을 거부하면 눈에 띄니, 물귀신처럼 누구라도 잡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잘 지내던 대리도 진급을 거부하는 사태까지 옵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린다고 하던데, 딱 이 친구가 그 미꾸라지네요.
이 친구 때문에 인사팀과 여러 차례 면담도 했지만 노조에 가입되어 있어, 별 뽀쪽한 대책방안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모든 직원들 사이에서 겉돌더니, 어느 날 출퇴근 거리가 멀다고 집 근처로 전출을 보내달라고 합니다. 집이 멀다고 전출을 보내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건 없건 간에 인사팀에 전출 요청을 했습니다. 당연히 인사팀은 출퇴근 시간이 많이 걸려서 전출을 요청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합니다.
그래도 보내고 싶은 마음이 절박하다 보니, 어디서 인원이 필요하다고 하면 직접 연락을 해서 소개 아닌 소개를 했습니다. 그 결과, 받겠다는 팀이 나타났습니다. 정말 잘 포장해서 설명을 하는 도중에 "이미 알고 있는데 애쓰지 마세요. 여기도 달라고 해도 안 주니 그 친구라도 받겠다."라는 것입니다. 저나 그쪽 팀장이나 참 딱하기는 하더라고요. 한편으로는 서로 위로해 줬습니다. 얼마나 맘고생이 많냐고...
재미있는 것은 그 '원자폭탄'이 전출 간 곳에서는 일을 제법 한다고 하네요.
'설마 그럴까?' 하고 아는 사람을 통해 확인해 보니 맞다고 합니다. 전출 간 곳에서의 업무가 직접 고객과 대면하는 일이라, 자기가 잘못하면 고객에게 엄청나게 욕을 먹기 때문에, 알아서 몸 사리고 말도 조심하게 한다고 합니다.
'개똥도 쓸모가 있다더니' 맞는 말이네요. 참 인간의 속마음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전출 간 곳에서 제 역할도 하고 잘 지낸다고 하니 다행입니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가서 다시 받겠냐고 한다면 당연히 'No'입니다. 물어서 피가 나도 안 아픈 손가락을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오늘도 펭귄의 짧디 짧은 다리로 달리고 달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