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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팀장 5

업무 현실 직시하기

팀 인원의 구성에 대한 개선은 하루아침에 해결될 일은 아닙니다. 수년간 이어 온 전통 아닌 전통(?)으로 인해 신입사원을 못 받은 지도 8년이 넘었고, 다른 팀에서 문제(?)가 있는 사람은 우리 팀으로 속속 들어오고 있습니다. 본사 소속팀으로는 매우 드문 일이긴 한데, 그림자 취급을 받는 팀으로서는 낯설지 않은 그림이기는 합니다. 그러다 보니 흔히들 말하는 사람은 많은데 일할 사람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우수 인원이 확보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생각한 것이 업무 현실에 대한 분석 및 단계적 개선 방안의 수립이 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조직에 자극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 팀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냉철한 평가가 우선 필요했습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고 있고, 이것을 누가 사용하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사용자 쪽에서는 우리 업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제공하는 정보를 활용하고 있는 관련팀들을 모아, 들의 의견을 듣는 자리를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지난번에도 이야기했지만 우리 팀은 나름 글로벌을 대상으로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국내뿐 아니라 해외법인이나 대리점이 우리의 주요 고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 중 중요한 국가 또는 빅마우스를 대상으로 한국에서 세미나를 할 테니 와달라는 초대장과 안내문을 발송했습니다. 한 번도 우리가 제공하는 정보에 대한 품질 수준을 물어본 적도 없었고, 같이 모여서 협의한 적도 없었던지라 세미나를 한다고 하니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우리 팀 인원들 역시 이런 글로벌 세미나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하는지, 뭘 해야 하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팀원들과 여러 번 회의를 통해 나름의 방안을 수립하고, 대상국가/회의 내용/상세 일정 등을 보고하고 비용 확보에 나섰습니다. 


걸림돌

그런데 우리 팀이 글로벌 세미나를 하기 위해 비용을 요청하니, 예상했던 데로 재경 쪽에서 딴지를 걸고 나옵니다. 갑자기 뜬금없이 무슨 글로벌 세미나를 하냐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안 하던 일을 왜 하냐는 것이지요. 우리가 처한 현실을 수차례 설명하고, 또 설명하여 겨우 동의는 구했지만 예산은 많이 깎였습니다. 그래도 세미나를 하는데 큰 무리는 없어 보였습니다. 

이제 해외법인과 대리점에 세미나 시행 안내문을 보낸 후, 세미나에 참석할 현업 담당자 선정을 요청했습니다.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는 게 맞습니다. 대부분 "뭐 이런 일로 한국까지 출장을 보내야 하느냐?", "다른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 있어서 보낼 수 없다.", "실무 담당자를 한국으로 출장 보내는 일은 드물다." 등 부정적인 회신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여러 번 통화를 통해 설명하고 또 설명한 후에야, 주요 국가로부터 참석자 명단을 받았습니다. 산 넘어 산, 끝이 보이지 않는 밀림을 헤치고 나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일하면서 보면 뭐든지 끝이 나기는 합니다. 성공이던 실패던 간에요.


이제부터 시작

 우선 필요한 것이 업무 현실에 대한 직시가 아닐까 합니다. 초정될 국가의 담당자에게 우리 팀이 제공하고 있는 정보에 대한 '품질 수준 - 문제점은 무엇이고 어떤 부분을 개선해야 하는지, 다른 경쟁사에 비교해서 어떤 부분이 열세이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무엇인지 - 에 대해 1달 전에 사전 요청을 했습니다. 이를 통해 받은 사항을 미리 검토하고 우리도 대응책을 수립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해외법인과 대리점 담당자로부터 아주 적나라하고 실랄한 회신이 도착했습니다. 지금까지 이런 현실을 모르고 그냥 정보만 제공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저나 팀원들은 창피함을 느꼈습니다. 어떤 것은 너무 기본적인 것인데도 지원이 안 되었다는 게 어이가 없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당장 필드에서 요구하는 수준으로 개선을 하는 것은 무리, 아니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부분을 대상으로 개선방안을 수립하였고, 당장 안 되는 부분은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준비를 하였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영어 사용이 가능한 소수의 직원이 준비하고, 자료를 영문화하는 일을 맡다 보니 어려움이 적지 않았습니다. 미안하지만 정말 소수의 인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 외에는 별 뽀쪽한 수단이 없었으니까요.  

[글로벌 네트워크]


어느덧 세미나

처음 만나는 해외법인 및 대리점 담당자와 서먹한 첫인사를 마치고, 본격적인 일정에 돌입하였습니다. 해외 담당자들이 준비한 자료를 발표하는 동안 듣고 있던 모든 팀원들은 또 한 번 창피함을 느꼈습니다. 비록 모든 팀원이 발표 내용을 100%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스크린에 띄워진 발표자료 속 그림만으로도 우리의 문제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발표한 자료에 대한 우리 팀의 대응책을 설명하면서, 바로 대응을 못해주는 것에 대한 미안함과 반발을 걱정했지만, 의외로 우리의 현실을 이해해 주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비록 부족하지만 우리가 현장의 의견을 듣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점과 향후에 최선을 다해 개선하겠다는 우리의 읍소가 나름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점과 개선 요청 사항, 그리고 대응방안에 대해 서로 질문하고 토의하는 것이 맞물리며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갔습니다. 나름 서로에 대한 이해가 조금씩 쌓였다고 느껴졌고, 저녁식사 자리를 통해 공감대 형성과 유대감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해외 담당자와의 저녁자리는 세미나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딱딱한 업무 이야기와 불편한 옷을 벗어던지고 만나니 한결 부드러운 느낌이라고 할까요. 비록 종교나 식습관의 차이로 인해 모인 모든 사람들이 술을 마실 수는 없었지만, 세미나 때 하지 못했던 국가마다 처한 현실, 특이한 사항, 업무의 어려움 등이 마음 편하게 공유되었습니다. 이런 정보를 들으면서 우리는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하는 자조 섞인 말로 스스로를 책망하였습니다.    



[우물 밖 개구리로 거듭나기]

이렇게 수년간 세미나를 통해 구축된 인적 네트워크는 업무를 개선하는데 큰 밑거름이 되었고, 세미나 횟수가 거듭될수록 개선 속도는 빨라지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물어보거나 확인할 곳이 마땅치 않았지만 이제부터는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게 되었고, 경쟁사들의 움직임이나 글로벌 동향도 이런 네트워크를 통해 얻을 수 있게 된 것도 큰 성과 중 하나였습니다. 이후 매년 세미나가 실시되면서 더 좋은 방안이 무엇인지 준비하고, 서로 토론하면서 우리 팀의 정보 품질의 수준도 일취월장하게 되었습니다. 세미나를 통해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라 진짜 글로벌 팀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팀원들도 자신들이 하는 업무에 대한 현실의 직시 그리고 개선을 통해 해외 담당자가 만족하는 모습을 보면서, 업무에 대한 자긍심도 높일 수 있었다고 봅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When life gives you lemons, make lemonade)'라는 것입니다. 한글보다 영어 표현이 재미있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에서는 lemon에 대해 '실망스럽거나 원하지 않은 결과'를 의미하더라고요. 미국에 레몬법(Lemon Laws)도 '자동차 교환 및 환불 제도'를 말하는데 '달콤한 오렌지인 줄 알고 샀는데, 시디신 레몬이었다.'라는 비유로, 비싼 자동차에 문제가 생겼을 때를 비꼬아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될 때까지 부딪혀보고 안되면 조금 후퇴했다가 다시 부딪혀보고, 정말로 어려우면 조금 양보한 후 다시 부딪혀 보는 것입니다. 뭐 정말 안되면 욕하고 안 하면 그만이지요. 최소한 홀가분한 마음은 될 것입니다. 


두려워서 시도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일단 잘못된 부분은 인정하고 양해를 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이해한다면 불만에만 머물러 있는 게 아니라, 개선하는 방향으로 함께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도 펭귄의 짧디 짧은 다리로 달리고 달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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