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초처럼 다면적인
사람은 누구나 다면적이다. 실제 사람은 미디어 속 캐릭터와 다르다. 캐릭터는 일관된 성격에 따라 합리적으로 행동한다. 인물이 따라가는 서사는 독자가 이해할 수 있게 잘 짜여있다. 하지만 실제 인간의 행동과 사고방식은 앞뒤가 맞지 않거나 충돌하는 여러 측면들이 모여 있다. 그래서 미디어의 캐릭터는 실제 인간을 그대로 옮겨서는 공감을 받을 수 없고 그 중 몇 가지만 뽑은 후 가공해야 한다.
나를 예로 들어보자. 나는 낯을 가리고 내성적인 편이다. 그런데 관종이다. 관심종자이지만 잠시의 짧은 관심보다 거대한 관심을 바라는 편이다. 그런 주제에 거대한 관심을 보이면 깜짝 놀라 도망친다. 혼자가 좋지만 막상 혼자이면 외로워 미치려고 하며, 그런 주제에 사람을 만나면 슬슬 피곤해진다. 인간에 관심이 많고 한 사람 한 사람은 다 다르다는 것을 안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지만 며칠만 지나면 까먹는다.
웬만하면 법을 어기지 않으려고 한다. 도덕적이라서 그렇다기보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두려워하는 편이다. 말로는 남의 시선 신경 안 쓴다고 하면서 누구보다도 신경쓰고 있다. 근데 또 실제로 신경 써야할 곳은 신경을 안 쓴다. 준법시민 같으면서도 얼마든지 도덕적 해이가 일어날 수 있는 놈인지라 늘 경계하며 규칙을 지켜야만 한다. 한편, 사람은 잘 믿는다. 온갖 범죄 뉴스에 기겁하면서도 내 주변에 나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쉽게 인식하지 못하는 데다 일단은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에게 호감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그렇듯 타인의 호감을 즐기면서 새로운 사람은 안 만나려고 하고 친한 친구들만 계속 만난다. 사랑을 믿고 로맨티스트 성향이 있지만 결혼은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들을 좋아하고 내 아이를 낳아서 키우고 싶지만 남편과 시댁이 생기는 게 싫다. 그런데 또 유전자는 남기고 싶다. 취향을 말해보자면 어두컴컴한 그림을 그리는 주제에 실제로는 헬로키티같은 귀여운 캐릭터를 좋아한다. 그런데 남한테 보이고싶진 않아서 집에만 모아놓는다. 이렇게 말해놓으니 되게 세심한 사람 같지만 1분에 한번씩 실수하고 물건을 떨어뜨리는 주의력 부족 사람이며 상황에 맞지 않는 부적절한 행동을 시도때도 없이 한다. 산을 좋아하지만 운동은 싫고, 밥보다 빵을 좋아하지만 케이크는 안 좋아한다.
더 쓸 수도 있지만 나같아도 질릴 것 같아서 그만 쓴다. 이렇게 인간은 합리적이지 못하고 서로 맞지 않는 면모들이 한 몸에 다 있다. 그래서 가끔 놀랍고 좀 소름끼치기도 한다.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한 몸, 한 영혼 안에 수많은 측면들이 있다는 게 아닌가. 캐릭터들은 보통 2, 3개의 성격 레이어가 있는 것이 이상적이다. 하지만 실제 사람은 15개, 아니 30개씩이나 레이어가 층층히 쌓여있다. 그래서 실제 사람은 캐릭터만큼 이해할만 하지 않고 사랑스럽지도 않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한두 개의 성격 레이어만 골라서 보여주려 한다.
식물은 어떨까? 겉으로 평화로워보이지만 식물의 세계도 치열하다. 단지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우린 인간의 언어는 이해할 수 있어도 식물의 언어를 이해할 수는 없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식물은 다면적이지 않다 믿으며 다면적인 인간에게서 받은 스트레스를 식물과 함께 해소하려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