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는 2학기 개강이 9월 1일이었던 것 같은데 올해는 1일이 일요일이라 개강일이 9월 2일로 됐는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개강'하니 8년, 8년 만에 학교로 돌아오면서 두 번째 삶을 시작한 계기가 되어준 재입학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올해로 처음 히키코모리 탈출기념일을 맞이하는 것인데 그렇게 뭐 별다른 감동이나 돌잔치는 없었다. 1주년이 아니어도 매일매일 삶의 감동을 조금씩 느끼고 있기도 해서 그렇고, 사실 막힘없이 흐르는 시간을 개념적으로 끊어놓을 뿐인 숫자가 큰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다.
며칠 전 학교 학생회관에서 경희극장이라는 교내 연극동아리가 1956년부터 이어져온 정기공연을 한다는 포스터를 봤다. 기숙사 엘리베이터 앞 게시판이었다. "죽음 혹은 아님"이라는 극 제목의 ㅁ과ㅁ의 각운도 좋았고, '무슨 이야기를 할까?' 제목 자체의 의미도 궁금해서 관심이 갔다.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 대학생들이 하는 연극은 어떨지도 궁금했다.
연극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구조적인 것들은 이해할 수가 없었서 재미는 많이 놓쳤지만 극 중 대사로도 나오는 "사람은 살아남기 위해 서로 도우면서 산다."가 메시지였던 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연출자인 철학과 학생도 무대인사에서 "사람들이 세상에 좀 더 다정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연극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공연팀 전체의 한 명 한 명 소감을 들어보니 모두가 이 가치에 대해서 공감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어리지만 이미 깨닫고 긍정의 편에 서기로 결정 내린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게 이 진영에 너무 늦게 합류한 나를 부끄럽게 만들기도 했지만 그들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따뜻해지고 감동스러운 것이 더 컸다. 이런 가치를 되새기게 해 준 이 연극이 어쩌면 탈출 1주년 선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학생회관은 미지의 영역이었는데, 보드동아리를 계기로 어둠을 밝히고나니 여러모로 요긴하게 방문 중이다.
9월 2일 월요일
개강.
학기가 시작되어 다시 어린 대학생들과 같이 강의를 듣고, 공부를 하고, 시험을 치는 생활을 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전 날 잠에 들기 전이나 당일 아침 침대에서 눈을 떴을 때 별로 불안하지가 않았다. 평점 4.3을 받고도 장학금 신청을 안 하는 바람에 돈은 못 받았었지만 자신감은 확실히 받았다. 자신감은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줬다. 겁이 안 났다. '힘들긴 해도 이번에도 난 잘할 거야.' 난 알았다.
아침에 운동을 하고 8시로 돌아온 조식시간에 맞춰 밥을 먹었다. 그리고 도서관으로 출근을 했다. 선망하던 도서관 근로를 시작한 것이다. 유치원에서 같이 근무했던 A는 의학계열도서관으로 배정됐고, B는 우연히 같은 팀에 배정됐다. B는 중학교 때 도서위원을 해봤다면서 능숙하게 배가를 하기도 했는데 의지할 아는 사람 하나 있다는 게 참 감사했다.
담당자 선생님께 간단한 교육(근태에 관련한 것, 청구기호의 구조, 자곤 등)을 받고 배가 및 서가정리를 직접 해보았다. 구두로 설명을 들은 효과는 컸다. 나는 인터넷으로 혼자 찾아볼 때는 읽기도 싫었던, 서가에 도서들이 어떻게 배치되는지에 대한 지식을 습득해 버렸다. 나는 이제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야 할 때 단번에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됐다. 그게 너무 좋았다. 퇴근할 때는 내가 전에 빌렸던 책을 무인반납기로 반납을 하고 배가를 직접 해놓고 나오는 혼자만의 비밀 놀이를 했다.
도서관에서 일하게 되니 좋은 점
1. 다니면서 구경만 했던 근로장학생 지정석에 앉을 수 있는 사람이 됐다.
2. 보존서고를 들어갈 수 있다. 일반 유저에게는 락이 걸려있는 비활성화 지역의 문을 열 수 있는 느낌.
3. 꿀을 섭취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2010년이었다. 스무 살 때 "아, 여기 있는 책 다 읽고 싶다."던 내 말에, 말도 안 되는 소리 한다고 어이없어하던 여자애가 생각났다. 걔는 T였나 보다. 그때 가졌던 터무니없는 탐욕이 아저씨가 되어 도서관에서 일하면서 서가에 꽂힌 수많은 제목들을 보는 순간에 다시 찾아왔다. '책장 한 칸 다 읽기도 힘든데 참 헛소리를 하긴 했구나.' 그래도 내 눈앞에 두고도 놓쳐야만 하는 수많은 세계가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9월 3일 화요일
일어나서 운동- 밥- 도서관 근무 똑같이. 아침을 먹고 나오는데 유치원 앞 현수막이 바뀌어 있었다. 간절한 호소를 익살스럽게 표현한 게 웃겼다. 책을 안 읽고 살 때는 "한국인 독서량 1년에 몇 권 어쩌고"할 때 내가 그런 사람인데 뭐 어쩌라고 했다. 지금은 소수파에 속해있다는 느낌이 썩 나쁘지 않다. 아니 떳떳하고 좋다.
오후엔 강의를 듣고, 다시 도서관 근무를 두 시간 했다. 마치자마자 바로 밥을 먹으러 미아사거리역으로 갔다. 청년 두 분과 만나서 저녁을 맛있게 먹고 티켓을 구해주셔서 뮤지컬 <동주>를 봤다. 마음속에서는 연기나 연극에 대해서 이런저런 평가질이 자연발생했는데, "보는 거랑은 다르죠."라고 내게 말했던 목소리와 그 목소리에 담겨있던 자부심이 생각났다. 그래서 의자에 앉아있는 나는 겸허한 마음을 유지하기로 했다.
내가 가질 효용보다는, 금액으로 환산했을 때 가장 기댓값이 큰 것 같아서 헌혈 기념품으로 영화교환권을 받았었다. 언젠간 쓸 줄 알았는데 보고 싶은 영화가 없는 바람에 사용기한이 한 달 남았을 때쯤 방치 중인 교환권의 소모 대책을 강구했다. 9월 7일 자살예방 밤길 걷기에 참여하는 청년들과 미리 만나서 영화를 보는데 썼다. 영화 교환권을 사용해 보는 것도 처음이고, 밖에 나가서 영화 보고 그런 것도 내 역사에서 너무 오래된 일이기 때문에 예매 과정이 처음에는 조금 힘들었다. 인간 재활치료다 생각하면서 차분하게 시도하니 안될 리가 없었다. 겁먹지 말자.
9월 4일 수요일
오늘의 산책길.
명색이 일기인데 맨날 "이 날은" 그러다가 오랜만에 8분 남은 시점에 오늘이라고 불러본다.
국립중앙도서관에 갔을 때 봐뒀던 책을 어제 도서관에서 근무 시작하기 전에 빌렸었다. 최소한의 교양으로서의 미술을 큐레이션 해주는 책이었다. 모네가 "빛은 색채다."라고 말했다는 부분을 읽으면서 격한 공감을 했다. 분명히 같은 산책길인데 갈 때마다 색깔이 다르다. 작년에 카페에서 내가 "요즘 같은 자리에서 사진을 찍어서 기록 중이에요"라니까 한 막내 청년이 "모네 같네요."라고 했었다. 그땐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수련 연못 관련된 부분을 읽으니까 이해가 됐다. 잊힌 작은 답답함이 해소가 돼서 좋았다.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을 6학년 때 퍼즐로 맞춘 적이 있다. 그리고 액자에 넣어서 어떤 방에 걸어둔 후로 이사하기 전까지 20년 정도 걸려있었다. 익숙한 그림이라는 소리다. 그리고 "이삭 줍는 여인들"을 설명해 주는 페이지에서는 고흐가 밀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내용도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고흐 생전에 유일하게 팔렸다는 "붉은 포도밭"은 "이삭 줍는 여인들"과 닮아 보였다.
오늘 아침 산책을 하다가 캠퍼스 조경하시는 분들을 봤다. 가끔씩 오시는 것 같다. 근데 전에는 한 번도 그렇게 보인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보자마자 '붉은 포도밭이다 붉은 포도밭' 했다. 닮기는 "이삭 줍는 여인들"을 더 닮았지만 새로 알게 된 걸 써먹는 게 더 재밌는 법이다.
일상의 순간이 미술품과 겹쳐 보이는 건 참 행복하고 근사한 일인 것 같다. 교양을 챙기려는 목적적인 독서여서 오락보다는 공부 쪽 느낌이 강했지만 영향력은 확실히 강하다. 앞으로 또 다양하게 독서를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