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살예방에 진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주말에 하는 프로그램에만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참가한 것이다. 오히려 나는 누군가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마감하길 간절히 원한다면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방금까지.
"나는 것을 선택할 순 없었지만 가는 것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인간의 존엄이다."
매일같이 죽는 것 말고는 다른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던 시기에 내가 만든 말이다. 나는 당시 내 고뇌를 한 줄로 정리했던 저 문장을 퍽 마음에 들어 했다.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줬으니까.
글을 쓰면서 문장에 ctrl+B를 해놓고, AI는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져서 질문란에 복사 붙여 넣기를 했다. 그리고 AI가 제시한 답변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이 문장은 인간의 삶과 선택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각 부분을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1. "나는 것을 선택할 순 없었지만"
- 이는 우리가 태어나는 환경, 시간, 장소, 부모 등을 선택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 우리의 출생과 초기 환경은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결정됩니다.
2. "가는 것은 선택할 수 있다"
- 반면, 우리의 인생 방향, 결정, 행동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 이는 우리가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지고 방향을 정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가졌다는 뜻입니다.
3. "인간의 존엄"
- 이 선택의 자유가 바로 인간의 존엄성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라고 말합니다.
- 환경이나 운명에 구속되지 않고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인간을 존엄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 문장의 의미는 다음과 같이 해석될 수 있습니다:
1. 자유의지의 중요성: 우리는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2. 책임의 중요성: 우리의 선택은 우리 삶의 방향을 결정하므로, 그에 따른 책임이 따릅니다.
3. 개인의 가치: 각 개인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모든 인간은 존엄합니다.
4. 극복과 성장: 출발점은 선택할 수 없어도, 그 이후의 여정은 우리가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문장은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의 자유를 인식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다운 삶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난 단 한 번도 "가는 것"을 삶을 떠나는 것이 아닌 삶을 사는 것으로 생각했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 AI의 답변을 보고 내가 만든 문장을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읽어보니 그렇게 읽는 게 더 타당한 것 같았다.
이번엔 "가는 것"이 자살의 의미일 때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물었다. 그러자,
1. 철학적 관점: 자살을 최후의 자유 선택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일부 철학자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철학적, 윤리적 전통은 생명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여기며 자살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2. 윤리적 고려: 자살은 개인의 선택이지만 그 영향은 가족, 친구, 사회 전체에 미치며 따라서 순수한 개인의 선택으로만 볼 수 없는 복잡한 윤리적 문제를 내포합니다.
3. 심리학적 관점: 대부분의 자살 충동은 일시적이며, 정신 건강 문제나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과 연관됩니다. 이는 "선택"이라기보다는 도움이 필요한 위기 상황으로 볼 수 있습니다.
4. 존엄성에 대한 재고: 인간의 존엄성은 생명 그 자체에 내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삶을 지속하며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더 큰 존엄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라고 한다. 울림이 있다. AI는 이미 영성을 갖췄다고 생각한다는 내 주장도 이런 부분들에 근거하고 있다.
나는 대한민국 탑게이 홍석천이 자살과 관련해 했던 이야기를 몇 년 동안 기억하고 있다. 커밍아웃 후 모든 걸 잃고 가족들에게도 이해받지 못해 한강에서 뛰어내리려 갔던 그는 전 연인과의 통화로 생각을 고쳐먹었다고 했다. 마포대교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똥이 마려워서 급하게 화장실을 찾아 해결을 했더니 자기도 모르게 '아, 살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어쩌면 인간은 똥 마려울 때 제때 똥만 싸도 살아갈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사람은 선택할 수 있다. 모든 희망적인 말들을 들을 때는 자신을 가르치려는 말이나 상대의 우월감, 위선으로 들을 것인지 아니면 나를 향한 사랑이 담긴 위로로 들을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 그것들은 대게 섞여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신이 선택해서 받아들인 부분이 모두 진실이 될 수 있다.
요즘 『사랑의 쓸모』라는 책을 읽었다. 작가가 스피노자의『에티카』에서 인용한 부분이 있다.
"증오는 증오의 보복에 의하여 증대되고 반대로 사랑에 의하여 제거될 수 있다. 사랑에 의하여 완전히 정복된 증오는 사랑으로 변한다. 그리고 사랑은 이전에 증오가 없었던 경우보다 한층 더 크다."
'내가 내 태어남과 삶을 증오했던 것이 내가 내 삶을 더 크게 사랑할 수 있게 해 준 셈이구나.'
그도 그런 게, '살아있어서 좋다.'라는 생각을 해본 것은 평생 살면서 요즘이 처음이다.
그러니까 선택하시라. 무얼 볼 것인지. 저쪽 진영에 설 것인지, 이쪽 진영에 설 것인지. 여기 진영에 있는 것은 의외로 속 편한 일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내 계급은 갓 전입 온 이등병이기 때문에 동기들이 많이 필요하기도 하고, 항상 수적 열세로 고생하는 진영인만큼 전우가 많아질수록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