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과 폭염이 언제부터 쌍으로 붙어있어도 되는 단어가 된 것인지, 아마 올해부터 시작인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본가에 가있는 동안에도 하루 빼고는 계속 더워서 야외활동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내가 키우기도 했던 나의 첫 조카가 집에서 너무 심심해하길래 데리고 도립공원 야영장에 갔던 날도 있다.
야영장 계곡에서, 이혼 경험으로 인해 사랑에 대해 대체로 비관적인 견해를 견지하는 셋째 누나가 막내 여동생의 연애 문제를 냉철하게 상담해 주는 동안, 나는 눈 깜짝할 새에 10살이나 돼버린 조카에게 물수제비를 전수하는 일을 했다. 돌멩이의 입사각과 회전운동량을 컨트롤하는 요령을 어떻게든 풀어서 설명해 내고 반복숙달 훈련을 제공한 끝에 조카는 8번 정도 튕기는 물수제비를 몇 번 성공했다. 조카의 '하다 보면 되더라.'의 경험 리스트에 하나가 추가되었다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구상에 물수제비를 뜰 줄 아는 4학년 여자애를 한 명 추가시킨 것이 뿌듯했다.
형수가 되실 분이 선물로 가져온 쿠키 상자 띠지에 추석(秋夕)이라고 한자로 써져 있었다. 벼가 불색처럼 타는 듯이 익어가는 계절의 밤이라는 뜻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의 폭염 상태로보면 정말로 벼가 타버릴 것 같다. 작은 일이 아니라 큰일 같다.
어느 날 아침에는 가족들이 먹을 포도를 따러 가는 아버지를 따라갔다. 아버지를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보다는 포도를 안 따봤으니까 한번 따봐야지하는 동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톨스토이의 책에서 농사라든지 농촌 생활을 많이 다루기 때문에 거기에 영향을 받아서 나도 과수원에 가보고 싶어 졌던 것 같다.
아니다. 생각해 보니까 아빠 혼자 보내기 싫은 마음이 어쩌면 제일 먼저였을 수도 있겠다.
뜬금없이 포도를 따는 입장이 된 건 부모님과 알고 지내는 농부 분께서 과수원의 일부 영역을 부모님에게 일을 맡기고,거기서 나는 포도를 부모님이 가지도록 해주었기 때문이다.포도를 마음껏 줄 수 있는 아주 깔끔한 명분을 마련한 그분의 지혜에 대해서 아버지와 이야기도 나누고 개여뀌가 지열관리를 위해 심어졌다는 이야기도 나눴다. "나를 생각해 주세요."라는 꽃말이 예쁘지 않냐는 아버지의 말에 개여뀌 꽃말을 검색해 봤는데 정보 출처가 썩 석연치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나를 생각해 주세요.' 곱씹으며 따라 한 번 중얼거려 봤다.
10월 초에 형이 결혼을 한다. 굉장히 복잡하고 감동스러운 감정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추석에 인사를 하러 형수(진)이 집에 들렀다. 2년 전쯤 대구에서 처음 봤던 형수(진)인데 꽤 오랜만에 봤다. 그때도 지금도 좋은 사람이어서 내 마음이 다 흐뭇해지고 좋다. 형수(진)은 이번 방문에 몇 가지 선물 대안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최종적으로 쿠키 선물을 선택해서 가져왔다고 했는데, 나는 이런 부분에 가산점을 주는 내 자신이 살짝 좀 싫어질 것만 같았다.
오늘은 폭염 속에서 청계천을 걸었다. 걷고 나서 알게 된 부분이 있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글을 쓰는 핵심 동기가 바뀌었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와, 글이 아닌 방법으로 그걸 풀어낸 후로 글쓰기는 주 동력원을 잃었기 때문에 요 일주일간 글을 쓰는 게 힘들었던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리 지금까지 내 결과물이 비록 하찮더라도 '뭘 쓰지?'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데. 아. 평소에 '뭘 쓰지?'라는 생각을 좀 했어야 했나..? 어쨌든.
진짜 쓰고 싶은 이야기를 감추고 적당한 이야기만을 기록하는 허위에 대한 반감과, 그러면서 쓰고 싶은 이야기도 동시에 다른 이유로 쓰고 싶지 않다든지 하는 모순 때문에 글이 안 써졌던 걸 알았다. 인생이 간단해질 줄 알고 크게 내디뎠는데, 내디뎌보니 막상 또 그렇지가 않다. 두 번째 빅스텝이 필요할 것 같다. 당연히 금리 인상 이야기는 아니고.
집으로 돌아갈 쯤에는 어디서 날아온 금빛이 건물들과 구름을 비추고 있었다. 예뻤다. 웃으면서 올렸던 광대가 뒤돌아선 후 무겁게 떨어지는 불쾌감도 느끼지 않았다. 광대는 계속 그 자리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