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상과 비일상으로서의 리드클라이밍
유치원에서 도서관으로 근로지를 옮긴 이후로 요즘은 허리 통증이 거의 없어졌다. 새삼 유치원에서 무한 장난감 플로깅을 하거나 좌식생활을 하던 것이 허리에 엄청난 부담이었다는 걸 느낀다. 허리가 좋아지니 훨씬 살 것 같다.
허리가 좋아지니 유도를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회비가 부담이어서 고민하고 있지만 관장님과 했던 약속(허리가 좋아지면 돌아오겠다!)을 지키고 싶은 욕구가 늘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다. 애당초 올해 겨울부터 세웠던 계획은 9월쯤에 복귀하는 것이었으나 유치원을 관둔 게 8월 말이니.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은 했지만 정말로 유치원 근무때문에 허리가 안 낫고 있는 줄은 몰랐다.
오늘은 2024년 서울시 은둔고립청년 지원사업 전담 기관인 기지개센터에서 진행한 프로그램 중에 뚝섬 야외암벽장에서 리드클라이밍을 하는 것이 있었다. 10월 2일이 스포츠 클라이밍 프로그램 마지막의 마지막 날이었고 나는 일회성으로 참여를 했다.
클라이밍을 하기 전에 내 일종의 병을 친구에게 들킨 것 같다. 그동안 이야기로는 몇번 하긴 했지만 실제로 내 상태가 그 정도일 줄은 몰랐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런 모습을 보인 건 가족 이외에는 처음이었다. 정작 본인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것 같긴 한데 나는 혼자 부끄러웠다. 멍청이같아 보였을까, 실망했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래도 설사 실망을 시켰더라도 괜찮은, 그런 좋은 친구가 생겼다는 것에 더 감사했다. 그동안은 실망시키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않아 사이가 깊은 친구를 못 만들었던 것도 있는 것 같다.
8자매듭, 옭매듭, 퀵드로우, 카라비너.. 친구가 사용하던 단어들의 비밀을 파헤친 것에 희열을 느끼면서 간단하게 교육을 받았다. 연습장에서 실습을 해보고 실제 등반을 해봤다. 12m 완등을 했다. 내려와서 발이 땅에 닿을 때 '해냈다'는 아주 순수한 즐거움과 만족감이 얼굴에 피어올랐다.
그 하나를 위해서 협회장님(강사님)과 친구가 연습 과정부터 등반 과정까지 많이 도와줬다. 팔이 터졌을 땐(팔에 힘이 빠진 걸 표현하는 은어가 정확히 뭐였더라) '여기까지구나' 싶어서 욕심부리지말고 포기하자 싶었다. 근데 회장님이 계속 하라고 하면서 어디에 어떻게 손과 발을 쓰라고 알려주셨다. 시키는 대로 했더니 됐다.
"완등!"
나는 생각보다 나를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먼저 걸어 본 사람이 보면 어디까지 어떻게 더 갈 수 있을지 보이는데 나는 그걸 보지 못하고 못 한다고 나를 얕잡아 봤던 것 같다. 실제 나는 할 수 있는 게 맞았고.
아집을 버리고 다른 사람들, 내가 처음 가는 길을 먼저 걸어 본 사람들의 말을 잘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렇게 한다면 나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아침 뚝섬인공암벽장으로 가면서 들었던 노래 하이라이트 가사가 하필 이런 것이었다.
혼자선 알 수 없었던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하나 둘 생겨나고
천천히 변하기 시작하네
자기 마음대로 나를 이끌어가는 신이든 인생이든 그 어떤 존재가 계속 나에게 뭔가를 가르쳐주려고 책상 앞에 나를 끌어다 앉히고 있는 것만 같다. 그 동안 밀린 숙제를 하라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