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일 북한산 등산
12월 31일 오전에 집에서 KTX로 올라와서 기숙사 방에서 책을 좀 읽으면서 쉬었다. 북한산으로 1월 1일 새해 일출 구경을 가기로 해서 휴식을 좀 해야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등산동아리 맏형이 새벽에 일어나서 오려면 힘들 테니 모여서 밤새고 출발하자고 해서 세 명이 정릉시장 안 무인 카페에서 밤을 새웠다.
셋 중 나보다 동생인 청년분은 청년 지원 사업하는 동안 인간적인 호감이 가는 분이었는데 늘 인사만 할 뿐, 이야기하는 시간은 못 가져서 아쉬웠던 분이었다. 그랬는데 등산으로 모인 덕분에 서로 이야기도 많이 하고 그분도 내게 궁금한 것이 있었다 해서 대화를 많이 했다. 사실 이 분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분들도 몇 분, 나에 대해서 비슷한 걸 가끔 궁금해하시긴 했다. 지금 보기에는 사람도 좋아하고 잘 웃고 쾌활해 보이는데 어떤 사연이 있는가 하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센터 활동 할 땐 그런 주제는 내가 먼저 얘기하기도 듣는 사람을 감정 쓰레기통 취급해 버리는 일이 될까, 듣는 분이 불편하거나 원치 않을까 싶어 조심스러웠다.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로 나한테 물어보기도 조심스러우니 그동안은 서로서로 알아서 피했다. 그러다가 이 날은 우연히 처음으로 조합이 이렇게 나오기도 했고 이런저런 타이밍(새벽감성, 앞으로 자주 볼 수 없어진다는 것)도 적절해서 그랬는지 대화를 많이 하다가 그분이 나에게 대놓고 솔직하게 물어보셨다. 오히려 그래서 불편한 감정은 들지 않았다. 이런 것은 되려 행동을 취한 쪽에서 더 신경을 쓰는 것 같다. 일정이 끝나고 헤어질 때 뜬금없이 다른 사람에게는 잘 묻지 않는데 나여서 물어봤다고 해명 아닌 해명을 하시길래 '아, 신경이 쓰이셨나 보네.' 하고 알게 되었다.
예전보다 다른 사람들을 좋은 사람들이라고 더 믿기도 하고, 혹여 듣는 사람이 겉과 다르게 속으로 어떤 천박하고, 내가 알기 두려운 생각을 가지더라도 모든 인간은 그런 면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니 얘기하기가 편하다. 그리고 실제로 사람들은 내 의심보다 훨씬 더 선했다. 또 남들은 내 문제를 그렇게 신경 쓰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고.
하하. 학기 초에는 주문(다른 사람들은 나를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특별하지 않다)을 외우면서 가까스로 했었는데 경험으로 알고 나니 이제는 주문 없이도 할 수 있다. 성장해서 다행이다.
밤새 얘기를 나눴던 이 애드리브가 좋고 소년처럼 귀여운 청년 분이 등산할 때는 불빛도 들지 않고 미끄러운 신발로 눈길에 연신 미끄러지면서 힘들고 위험하게 오르셨다. 남들 몇 배로 용을 쓰며 등산을 해야 하는 것이 불안하기도 하고 뒤로 처지는데 앞에서 나 몰라라 먼저 가자니 양심이 찔려서 나름 챙긴다고 뒤에서 불을 비춰주며 갔다. 내가 느끼기에 이 청년분이 그걸 약간 편해하진 않아 아주 조금 어색한 기류가 감도는 동행이었는데 혼자만의 착각일 수도. 그렇다 하더라도 혹시 넘어지거나 미끄러져서 다치면 더 곤란하니 모른 척했다. 다행히 앞에서 가는 분들까지 6명 모두가 무사히 정상에 올라 일출을 구경했다.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찍었지만 사실 일출 자체에 큰 감흥은 없었다. 날도 흐리기도 했고 아래로 보이는 풍경도 내 취향이 아니었다. 산과 산 사이마다 끼어있는 사람이 만든 것들이 이물처럼 거슬렸다. 또 일출 구경이 목적이 아니었고 그냥 청년분들 얼굴 보고 북한산 오르는 것에 개인적인 의미를 더 둔 산행이었다. 마지막으로 나도 남들처럼 평범해지고 싶으니까 평생에 한 번쯤은 1월 1일 새해 일출 사진 한 장 남길 필요가 있긴 해서 찍는 거라 과제를 하는 느낌.
단체 사진을 찍을 때가 정말 즐겁고 행복했던 것 같다. 우리끼리도 찍고 다른 등산객분이 먼저 찍어주신다고 하시기도 하고. 서로 새해 덕담도 건네고, 훈훈한 새해!
내려올 땐 미끄럽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긴장도 너무 많이 해서 등허리가 뻐근했다. 그래도 정릉시장에서 뼈해장국을 너무 맛있게 먹어서 몸도 따뜻해지고 힐링이 됐다. 밥을 먹고 헤어질 때는 동선이 겹친 청년 두 분께서 자상하시게도 버스 배웅까지 해주셔서 마음까지 따뜻해서 어찌나 좋던지.
조심히 가세요, 다음에 또 봐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