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사람이 변하니?

히키코모리 10년 경력자의 일기

by 온호

46L짜리 냉장고 소음이 거슬려 두 시간 전 코드를 뽑아버렸다. 기숙사 방에서 1년 넘게 살면서 처음 하는 행동인데 그만큼 나는 오늘 유독 예민한 것이다.


요즘 방에 있을 때 내가 예민해져 버린 데에는 룸메의 영향이 크다. 카드키가 찍히는 "삐"소리와 "철컥"하며 문이 열리는 소리가 언제 갑작스레 찾아올지 겁이 난다. 전에는 안 그랬는데.


세 번째 룸메인 이번 룸메는 학기 초반에는 이전 룸메들에 비해서 엄청 같이 살기 좋았다. 올빼미형이던 룸메들과 달리 처음으로 아침형 룸메여서 아침에 준비하고 나가는 과정에서 굉장히 여러모로 편했기 때문이다. 아침에도 불을 켤 수 있다던지, 음소거에 총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던지 하는. 또, 이번 룸메는 의자를 잘 집어넣고 다녀서 내가 냉장고를 열려고 할 때마다 의자를 치워야 될 일을 만들지 않는 룸메였다. 그리고 코를 골지도 않았고 문을 조용히 여닫고 다니는 섬세함이 있는 남자였다.


그랬던 룸메는 두 달 정도 지나자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않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는 의자 정리도 하지 않기 시작했고 내가 자고 있을 때도 문을 세게 여닫기 시작했다. 화장실 불빛과 물소리 때문에 잠을 깨는 일도 많아졌는데, 동거 초반과는 다르게 문을 안 닫고 씻거나 볼 일을 보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나가서 하던 통화도 방에서 큰 목소리로 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이상하게도 코를 심하게 구는 날도 제법 생겼다. 전체적으로 전에는 생활 전반에 있어서 조심성이 있고 좀 더 나에 대해 배려를 하는 느낌이었다면 요즘은 그런 게 많이 사라졌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서운하기보다는 아쉽다. 좀 더 편하고 만족스럽게 생활하던 날들이 사라져서 아쉬운 것이다.


나는 룸메에 대해 '어떻게 사람이 변하니?' 하는 생각을 실제로 하지는 않는다. 오늘 글의 제목은 "사람은 어떻게 변한다."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더 효과적일 거 같아서 그렇게 지어봤다. 24-1학기에 수강했던 <불교와 정신분석학>을 통해 '무상하다'는 개념에 대해서 주워들은 영향이 크다. 그전까지는 어릴 때부터 나 스스로에게 '변하면 안 돼.'라는 주문을 넣으며 살았는데, 그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난 그걸 몰랐고 변하지 않기 위해 좋아지려 하지 않는 방식으로 살게 됐다. 올라가면 다시 내려오고 그건 변하는 거니까.


그렇게 나는 엄청나게 바보 같았지만 어쨌든 운 좋게 수강한 불교 강의로 그 생각을 고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 룸메의 극적인 변화(나머지 룸메들은 일관성 있게 거슬렸다.)도 정서적으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다. 의자 빼놓아서 거슬리게 하는 거 말고 나머지는 거의 육체적인 감각 영역, 주로 청각 자극의 문제 때문에 예민해진 것 같다.


사람은 시간이 흐르면서 변하는 게 맞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도 마찬가지로 변했다. 룸메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해서도 전보다 시큰둥해졌다. 사람에 대한 믿음과 희망이 사방으로 분별없이 넘쳐나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것들이 약간 축소도 되고, 갈무리도 된 느낌이다. 전보다 조금 냉소적이 되었다고 표현할 수도 있지만 난 그러기보다는 갈무리가 되었다고 표현하고 싶다. 그래도 아직 믿음과 희망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오렌지레몬 줄기에 새로 꽃봉오리가 맺힌 걸 마침 글을 쓰다가 발견했다. 귀엽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오랜만에 찾아올 꽃을 만날 생각에 기분도 좋아졌다. 계속 변하는 것의 살아있는 예시를 글을 쓰다가 발견하게 된 게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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