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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사람

by 온호

죽을 것 같다.


가족으로부터도, 친구로부터도 안 좋은 소리나 힘든 소리를 듣는 것은 달가운 일이 아니기에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이야기들을 듣게 만들고 싶지는 않아서 참았다. 그런데 참으니까 아프고 힘이 든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그냥 울분을 터뜨려본다. 요 며칠 동안은 첫 글을 썼던 때와 비슷한 상태였다. 불안하고, 무섭고, 도망가고 싶고, 죽고 싶고, 울고 싶었다. 살기 위해서, 토해내기 위해서 글을 썼던 재작년 늦여름과는 달리 지금은 아는 청년들과 구독자 분들이 글을 읽어주시기 때문에 글로 그런 감정을 풀기도 망설여졌다. 덩달아 우울해지거나, 혹시 나를 걱정이라도 할까 싶어서.


한 달 전쯤부터 약하게 왼쪽 가슴 쪽의 장기가 조여지는 느낌이 들고 쿡쿡 찌르는 느낌이 든다. 특히 요즘은 거기에 더해 토하고 싶은 기분이 든다. 불안감에 속이 자꾸만 울렁거리고 있어서 그런 것이다. 코를 골거나 밤중에 문을 "쾅"닫으며 들락거리는 룸메가 없이 혼자 조용히 자는데도 새벽 4시대에는 늘 깨고 있다. '아, 나는 그냥 원래 통잠을 잘 못 자는 인간이구나.' 하며 룸메 탓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설연휴에 부모님 집에서 일주일을 있었다. 썩 좋지 않았다. 첫날은 엄마를 태우러 나갔다가 나간 김에 동네 맛집인 돈까스집에서 기분 좋게 점심 식사를 같이 했다. 탁구를 치고 온 아빠도 식사 중에 합류했지만 식당에 워낙 주문이 많이 밀려 추가 주문을 받지 못하는 바람에 아빠는 엄마와 돈까스를 나눠먹었다. 그것도 완벽했다. 왜냐면 돈까스가 양이 많아 평소에는 남기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집에 있으면서 엄마를 보다 보니 내가 너무 불안해졌다. 엄마의 불안한 말과 목소리, 조급한 목소리, 쫓기는 목소리, 아빠를 채근하는 목소리와 엄마가 시키는 왜 해야 되는지 모르겠는 일들을 늙으면서 성질이 죽은 바람에 억지로 참고 하는 아빠의 우울한 모습, 거기서 오는 암울한 기운을 이번에는 잘 쳐내지 못했다. 거기에 지배당해 버렸다. 나도 정신적 면역이 최악인 상태였던 탓인 것 같다.


히키코모리이던 시절의 끝자락에는 엄마의 불안한 말과 행동을 집안일을 없애놓는 방법으로 줄여보려고도 했다. 그런데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당연히 나는 엄마만큼의 기준은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고 엄마는 일이 없으면 새로운 일거리를 만들어내기 때문이었다.


그런 엄마는 이번 연휴 동안에도 6남매가 전부 하지 말라고, 괜찮다고, 강하게 얘기할 때는 "필요 없다고"까지 말하고, 제발 제발하며 같이 가자고 사정을 해도 우리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엄마 한 명이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하기 위해서 직계 가족 일곱 명이 고통을 받아야 했다.


엄마의 사랑을 이해하고 감사해야 한다고, "있을 때 잘해야 된다."는 생각도 한다. 엄마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을 돕는 것이 늘 맞다고 생각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사랑 방식을 받아들이기가 너무나 힘들다. 말 그대로 하루종일 엄마 특유의 재차 권하고 또 권하는 말을 듣거나, 이거는 이렇게 할걸, 저렇게 할 걸 하는 말들을 듣고 있으면 정신이 아뜩해지고 미칠 것 같고 차라리 엄마가 죽든 내가 죽든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10년 넘게 이야기해도 바뀌지 않는 것을 겪으면서 인생은 절망이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다른 사람을 바꿀 수는 없고 바꾸는 것이 가능한 건 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최근에는 내 상태가 안 좋던 때로 조금 회귀해서 그럴 여력이 없었다.


동생이 읽어보라고 줬던 「네 가지 사랑」에는 피제트부인이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가족들은 피제트 부인이 죽고 좋아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왜냐하면 피제트부인은 자신이 필요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가족들이 원치 않는 '사랑'을 줬기 때문이다. 집에 있는 내내 엄마를 보면서 피제트 부인을 떠올리는 내가 참 불효막심하고 철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도 엄마가 말을 할 때마다 나는 자꾸만 내 얼굴을 엄마의 반대편으로 돌리고 눈을 감으며 오른쪽 윗입술을 올렸다. 너무나 역겹게 느껴지는 것을 참기 위해서 그렇게라도 해야 했던 것 같다.


서울로 돌아오니 당연히 후회가 됐다. 다음을 기약했다. 다음엔, 좋은 상태로 좋게 잘 받아야지. 몇 번의 다음이 있을지도 모르는 인생이 되었는데도.


요즘 불안이 굉장히 심했던 이유 중에는 컴퓨터활용능력1급 실기 공부와 집을 알아보는 일이 있다. 필기 때도 그랬지만 컴활 공부를 하고 있으면 굉장한 자괴감과 구토감을 느낀다. 45분 동안 풀어야 하는 모의고사 하나를 3시간 동안 풀고 있으면 현타도 오고, 확실히 내가 잘하지 못하는 영역이라는 걸 많이 느끼게 돼서 괴롭다. 계속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이제는 불안을 쉽게 해소하기 위해 다른 무언가로 도망가려고 하지 말고 불안을 감당하는 강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참고 있다.


집 구하는 건 작년 12월 28일쯤 LH청년전세임대 신청했던 것이 1월 중순쯤에 선정이 되면서 시작하게 됐다.

충동적으로 자취를 하겠다는 결정을 내렸었는데 그 탓인지 덕인지 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인생의 중요한 콘텐츠에 대해 조금 접하게 됐다. 생각해 보면 참 나이 먹도록 성장하지 못하고 어린 상태로 머물러 있었다 싶다. 집을 보러 다니다 보니 현실이 보이고 내가 보였다. 이런 일들을 일찍 겪어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사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보다는 나중에 따로 하고 싶다.


네 학기 째인 이번 방학에는 기숙사 신청도 처음으로 까먹고 안 해버려서 퇴사일 이후에 갈 데도 없다. 그러다 보니 자꾸 걱정이 많아지고 불안해졌던 것도 있다. 몇 번을 반복한 불안 하나에도 무뎌지기가 참 쉽지가 않다.


오늘은 수강신청을 해야 한다. 시간표 짜 맞추기도 싫고 뭘 들어야 좋을지도 모르겠고 공부도 하기 싫다. 대학생 신분으로 울타리 안에서 안전하게 공부나 할 때가 좋을 때라는 걸 아는데도 그렇다. 어떡하면 좋나. 울타리에서 벗어나서 명찰 떼고 야생 생활을 하게 될 생각에 불안한 게 큰 것 같다. 나는 그걸 4학년병이라고 부르기로 했는데 썩 마음에 든다.


어제 새벽엔 너무 울고 싶어서 좋았던 때의 사진을 보고 힘을 낼까 했더니 앨범이 없어서 깜짝 놀랐다. 삭제한 것을 까먹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헛구역질이 나왔다. 모든 게 불만족스러웠다.


요즘 걷지 않아서 그런 걸까? 그렇게 애를 썼는데 다시 이렇게 우울한 나를 보는 것이 가장 괴롭다. 나는 약한 사람이라는 걸 새삼 느낀다. 남들한테 힘든 소리 하기 민망할 정도로 별 것도 아닌 일들에 불안해하고 걱정하고 너무 오래 도망쳐 왔다. 지금까지 조금 강해진 부분도 있지만 앞으로 가야 할 길이 정말로 멀다는 걸 느낀다. 강해지고 싶다. 일단은 지금 도망치지 않는 것이 가장 먼저인 것 같다. 다시 글을 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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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할만한 키링을 가지고 있던 조카, 기숙사 채광이 참 좋았다는 걸 새삼 느끼는 것, 연휴 끝나고 돌아오니 생긴 회기역 핫브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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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저트류를 좋아하는 건 가족 내력이라는 것, 조카들이랑 만든 눈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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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사는 것만 아니면 기숙사가 방 조건이 참 좋은 편이라는 것. 새로 가게 될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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