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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3

히키코모리 10년 경력자의 일기

by 온호

아침 7시쯤에 일어나 잡생각에 지배당하기 전에 책을 펼치고 좀 읽었다. 한동안 악순환의 시작점을 찍던 아침이었는데 정신이 좀 돌아왔나 보다.


남은 짐 싸기를 마무리하고 퇴사점검을 위해 방청소를 시작했다. 1년 반 전 처음 기숙사 방에 들어왔을 때 앞사람이 청소를 잘해놓고 갔다는 게 느껴져서 고마웠던 기분을 생각하며 정성스럽게 청소를 했다. 세 학기, 세 번의 방학을 보낸 "내" 자리에 들어 올 다음 학생이 누구이든 그때의 나처럼 좋은 기분이 들기를 바라며.


세 번의 입사-퇴사를 하며 퇴사 마지막 날에 나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너무 복잡했다. 상자를 옮길 카트를 구할 수가 없는 경험을 했다. 다행히 같은 층의 학생이 쓰고 있던 의대의 한 동아리의 카트를 인계받아 사용했다. 인류애는 살아있다.


층장에게 방점검을 받고 난 후에는 인스타 광고로 알게 된 '이사대학' 용달 차량에 짐을 싣고 이동했다. 싣고 이동하고 내리고까지 20분도 걸리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비용이 싸진 않았다.


기숙사 두 번째 입사 때 요령이 생겨 박스를 버리지 않고 뒀었다. 이번에 그대로 재활용해 수월하게 짐을 쌌는데 뭐든 해봐야 요령이 생긴다 싶다. 첫 번째때는 박스 버렸다가 두 번째 때 다시 사서 들고 오고 하는 것도 무겁고 힘들었다.


이사 자체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4년 전에 정말 블록버스터 이사 과정을 겪어서 그런지 이번에 덤덤하게 잘 해냈다. 집 계약할 때 내가 어리숙한 부분이 정말 많았다는 걸 알게 됐지만 이것도 요령이 생기기 전이라 그런 거라고 생각하고 넘겨 본다. 새로운 곳에서 첫 샤워를 마치고 이불에 누워서 '이런 마음일 때는 다음 날 몇 시에 깰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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