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키코모리 10년 경력자의 일기
누구나 속으로 끊임없이 자신 혹은 타인과 대화를 나누듯이 나도 마찬가지다. 속으로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실제 육성으로 그런 혼잣말을 밖으로 내는 경우도 늘 있어 왔다. 무언가의 연습처럼. 그런 행위에 대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시선은 호의적인 것은 아닐 것이다. 요즘 같이 유선이든 무선이든 이어폰을 끼고 다니는 세상에서는 그래서 당당하게 혼잣말을 할 수도 있다는 쓸데없는 생각을 이사한 집으로 가는 길에 한다.
굵직한 정리와 청소를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화장실과 부엌?주방?(4.5평 원룸의 싱크대가 있는 공간을 뭐라고 부르는 게 적절할까)의 때를 열심히 닦았다. 까만 것들과 누런 것들을 엄청나게
지워냈다. 문질러서 되지 않는 부분은 휴지에 락스 묻혀서 붙여 놓기 방법을 쓰니 효과가 좋았다.
청소를 열심히 한 것은 누가 어떻게 살았는지 모를 더러운 이곳저곳에 내 물건을 놓을 자신이 도저히 생기지 않아서였기도 하고, 오래된 방이지만 그래도 '내 거', '새 거' 같은 느낌을 받고 싶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내 첫 공간 아니겠는가. 화장실 타일, 줄눈, 각종 스테인리스 부분들까지 꼼꼼하게 닦고 나니 이제 그나마 좀 마음이 놓인다
며칠 사이에 자잘하게 많이 고쳤지만 이 방은 여러모로 문제가 많은 방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큰 문제가 아직 남아있다. 꼭대기 층이라 윗집 발망치 들을 일은 없지만 꼭대기층이라서 있는 다락 같은 창고 공간에 곰팡이가 잔뜩 피어있다는 것이다. 냄새가 나서 관리인에게 말씀을 드렸는데 그저께 처치하러 가는 중이라고 내게 집에 있냐고 묻더니 안 오셨다. 다음 날 돼서는 곰팡이 도배는 집주인과 얘기 중이라고 하시는 걸 보니 중간에서 컨펌이 안 났거나 무슨 일이 있었나 보다. 서운하게.
세탁기나 보일러 컨트롤 등 여러 설명서가 인덕션 옆에 있다. 읽어야만 한다. 읽는 것을 잘하는 사람이 있다고 부러워하거나 나는 그런 걸 잘 못한다며 피할 것이 아니었다. 이제서야 부끄러움을 느낀다. 모두가 똑같이 읽기 싫지만 참고 읽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어서. 나는 게으른 것이었다. 전세임대와 매입임대에 대해 읽기 싫어서 21년에 지은 매입임대 집으로 갈 수 있었음에도 여기로 온 일을 통해 절감했다. 하기 싫어서, 하는 것은 힘드니까 편하고 싶어서 하지 않는 것을 합리화하는 목소리에 더 이상은 속지 않도록 노력하자.
방에는 아직 조명, 커튼, 조리도구 등 들여 넣어야 할 것들이 많다. 차분히 하나씩 하다 보면 이 황량하며 춥고 탁한 방에도 삶의 체온이 뜨겁게 감돌 것이라는 기대를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