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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동생이 결혼한다

#청첩장

by 온호

가지마다 달린 고사리손으로 하얀 핸드벨을 쥐고선 봄노래를 연주할 것만 같은 목련나무를 구경하며 등교를 한다. 캠퍼스 안에는 이미 개나리, 진달래, 목련이 핀지 오래다. 심지어 어떤 목련은 나처럼 성질이 급한지 빨리 피었다가 벌써 다 져버리기도 했다. '벌써 한 바퀴를 돌았다니.' 같은 생각이 자주 드는 요즘이다. 그렇게 계절의 순환을 몇 차례 겪다 보니 인생의 순환도 찾아왔다. 부모 세대가 점점 저물어 갈 동안 자식 세대가 부모가 되는 것이다.


그저께 토요일에는 우리 집 6남매 중 4녀와 함께 식사를 했다. 여동생과 나의 하루 차이나는 생일을 겸해서 같이 축하하는 자리였기도 하고 동생 커플 결혼 날짜가 잡혀서 청첩장을 받는 자리기도 했다. 조카 세 명 중 10살, 7살짜리 없이 3살짜리만 있는 것에 감사드리며 식사를 맛있게 했다. 식사가 끝날 때쯤 동생은 "오빠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하는 것으로 청첩장 꺼낼 준비운동을 대신했다. 그리고 첫째 누나, 둘째 누나, 셋째 누나, 형은 없으니 건너뛰고 그다음 나, 한 명씩 서열 순서대로 청첩장을 건넸다. 실링 왁스로 봉인이 된 하얀 편지 봉투에는 결혼식 일정과 내게 쓴 동생의 짤막한 편지가 담겨 있었다.


"내 편이 되어줘서 고맙다."는 편지를 읽으며 동생이 하루 늦게 왔던 지난 구정에 온 가족이 동생의 결정을 헐뜯던 밤이 생각났다. 여동생이 남자친구와 한 번 결혼을 무른 직후 다른 남자애 이야기를 하며 어딘가 혼란스런 열을 올리던 날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남친과 결혼하기로 결정을 한 것에 대해 아빠와 누나들, 그리고 나까지 모두 탐탁지 않아 했다. 아빠가 자기도 마음에 썩 들지는 않지만 동생이 오면 안 좋은 소리는 하지 말라며 소집한 8인 회의는 그렇게 어쩌다 뒷담화장이 되어버렸다. 식사 장소로 이동하던 지하철에서 왠지 이 날 밤이 떠오르면서 동생에게 미안하더라니 청첩장 속 편지를 읽고 느낄 미안함에 심장이 너무 놀라지 않도록 예열을 한 것이었구나 싶었다.


6남매의 막내, 두 살 터울에 생일은 나보다 하루 빠른 여동생. 그러면서 학교는 빨리 들어가서 한 학년밖에 차이 안 난 동생. 아주 어릴 적엔 엄마의 무릎과 등의 경쟁자였고 무서운 아빠 입에서 나오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예삐"라는 말이 나오게 하던 존재. 조금 커서는 집에서 같이 노는 마음이 잘 맞는 친구사이였고, 초등학교 다닐 적엔 모르는 친구보다도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눈길도 주지 않고 지나치던 존재였다. 중학교 고등학교 땐 특별한 기억도 많이 없을 정도로 따로따로였고, 대학 땐. 그때부턴 내가 안 살았다. 그 세월에 동생도 힘들 때에는 내게 상처 주는 말도 했지만 그래도 언제나 평생 그래왔던 것처럼 나를 좋아해 줬다. 밖으로 데려나가주려고 했다. 살 빼야 해서 운동 좀 하려는데 밤이라 무서우니 같이 가자던가 하면서 나를 몇 번 끌고 나갔다. 그렇게 나가서는 학교 운동장 산책을 같이 하거나 농구를 가르쳐 주거나 줄넘기를 하거나 했었다.


뒤에서 오빠라고 부르는 말에 뒤돌아보면 나처럼 뒤돌아 동생을 보는 매제(진)와 그런 매제를 바라보고 있는 동생을 보게 된다. 동생의 "오빠"를 뺏겨서 느꼈던 감당 못할 질투는 그 애 첫 남자친구가 생겼던 때에 절감했었기 때문에 이제는 그러지 않지만 그냥 어딘가 모르게 외곽으로 밀려난 듯한 씁쓸한 기분에 그저 힘을 축 빼고 앞만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예비 매제와 대화를 그렇게 많이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제는 말을 편하게 놓고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몇 년 전부터 종종 만나서 보기도 했지만 그동안 말을 편하게 놓지 못했던 데에는 나이차이가 한 살밖에 나지 않는 것도 있었고, 살아내고 있는 것이 유일한 성취인 형님으로서 떳떳지 못한 마음도 있었기 때문이다. 존댓말이 자꾸 나오려 하는 것이 상대를 높여서가 아니라 실은 내가 반말을 할 염치가 없어서라는 것이었다. 이제는 나 자신을 너무 그렇게 취급하려 하지 않기도 하고, 상대방도 내가 상대방이 생각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처럼은 실제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알기(믿기) 때문에 말을 놓는데 양심의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매제가 원하는 것도 내가 말을 편하게 하는 것이니 상대가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제각각 자기 할 말만 많은 처형(진)들을 보며 어딘가 기운이 빠져 보이던 매제 모습이 내 착각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해도 2초도 집중해주지 않는 4녀를 보며 나도 입을 다물고 조용하게 있었지만. 글로 실컷 주절거릴 수 있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지 이 날 식탁 앞에서 몇 번이나 생각했는지 모른다.


"5월의 신부"가 되는 동생을 보며 '나는 어떡하지?'나 '나는 결혼할 수 있나?' 이런 우울한 생각은 어쩐지 합쳐서 1초 정도밖에 들지 않았다. 아무튼 그냥 이 시대에 큰 결심을 내린 예비부부의 앞 날에 행복한 일들이 많으면 좋지 않겠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여섯 명 중에 못 간 놈, 안 간 놈, 간 놈, 갔다 온 놈, 가는 놈 등 다양하게 있지만 누구 하나 쉬워 보이지는 않으니 다들 응원해 줘야 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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