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15 화요일
가급적이면 모두가 다 같이 쓰는 표현을 사용하는 사람보다는 개인적이거나 독특한 표현을 사용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다. 남들에게 특이하게 보이고 쉽기 때문이라거나 튀고 싶다거나 하는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좋아하는 부류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미적인 부분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동일하게 작용하고 있다. 완벽함으로 수렴해가는 과정에서 아름다움도 어느 정도 정형적이게 될 수밖에 없는데, 나는 그런 것보다는 조금 덜 아름답더라도 고유한 부분이 깎여나가지 않고 남아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래봤자 독특함을 좋아하는 부류로 평범하게 분류될 뿐이겠지만.
봄날이라는 제목으로 일기를 써보려다가 전에 같은 제목으로 쓴 적이 있는 것 같아 제목을 "춘일"이라고 바꿔봤다는 이야기를 한다는 게 앞대가리가 길어졌다. 서두의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봄날'이 '춘일'보다는 어감도 그렇고 여러모로 더 아름답게 느껴지지만 '너는 오늘 하루만의 고유한 일기'라는 느낌을 주고 싶어 제목으로 춘일을 입혀줘 봤다. 사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이상할 말도 아니다. 어떤 평행세계 대한민국에서는 내일을 "올날"이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그 세계에서는 봄날보다 춘일이 더 자주 쓰는 표현일지도... 까지만 해야겠다. 지겨워진다. 어쨌든 올날은 또 아침 일찍부터 움직여야 되니 이러고 잡생각 이어가며 노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옛날, 새날, 올날... 재밌다.
생각보다 이 쪽 생각 연결이 더 이어져서 못 끊겠다. 나는 언젠가부터 단어가 유행하는 현상이나 현장을 볼 때마다 퍽 재미가 상하는 게 느껴진다. '앙, 재미없어, 지겹네.' 같은 목소리가 안에서 들린다. 몇 년 전쯤에는 플롯, 인사이트 같은 단어를 여기저기서 정말 많이 쓰더니 요즘은 원래대로 쓰던 데서만 쓰는 것 같다. 마중물이라든지, 디깅 같은 단어를 볼 때도 그렇다. 마중물, 디깅은 플롯처럼 잠깐 많이 쓰다 곧 가라앉을 단어인 것 같다. 봄날을 춘일로 쓰는 것은 어색한데도 올날은 내일로 쓰고 있는 거나 인사이트-통찰, 디깅-천착처럼 원래 쓰던 표현이 있는데도 영어로 바뀌기만 한 단어가 유행하는 것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아서 하는 이야기다.
마중물, 디깅 같은 것은 느좋이나 추구미 같은 신조어가 유행하는 것과 다른 느낌이다. 신조어가 유행하는 것은 놀이 같은 느낌이 더 강하고 애초에 휘발성이 그것들의 생명력이기도 한데, 마중물 같은 것은 재미낼 줄 모르는 사람들이 어떤 느낌을 주고 싶어 많이 쓴다는 느낌을 준다. 아! 정형적인 아름다운 느낌을 주려는 느낌. 잘 깎인 복제들, 수렴된 아름다움 같아서. 진부해지는 데는 그만큼 많은 사람의 공감이 바탕에 있기 때문이라는 원칙을 견지하면서도 재미가 없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마중물을 처음 썼던 사람은 재밌는 사람이었을 거다. 민낯으로 순화당하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널리 쓰이고 있는 쌩얼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박명수나 사람들이 참신하다는 뜻으로 알고 쓰는 신박하다를 처음 만들어낸 누리꾼처럼. 지금 먹물 먹은 사람들이 교양 있게 쓰는 한자어 단어들이나 관용어구도 옛날에 박명수, 지상렬처럼 말 만들어내기 좋아하는 인간들이 하나씩 지어낸 거라고 상상하면 웃기는 일이다.
원래 하려던 얘기는 오늘 날씨가 정말 맑고 화창해서 좋았다는 거였다. 주말에 비가 오고 제철 벚꽃도 끝이다 했지만 그래도 늦은 오후 햇살이 비추는 꽃나무는 예뻤다는 것이고, 파닥파닥거리는 생물도 귀여웠다는 것.
처음에 뭘 쓰는지나 그리는지가 전체 방향을 결정짓게 된다는데 오늘은 특히 심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