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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2025.04.17 목요일

by 온호

어제 자정이 되기 전에 잠들었다가 오늘 새벽 세 시 반쯤 잠깐 깼었다. 다시 눈을 뜨고 시계를 확인하니 여섯 시나 돼있는 것에 기뻤다. '여러 번 깨지 않았구나.'


시험 기간이 일주일 남았기 때문에 공강이지만 학교에 가서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학교에서 공부하지 않고 굳이 혜화의 기지개 센터로 이동해서 시험공부를 했다. 왜냐면 학교 안과 학교를 오가는 길에서는 20대 젊음의 활력, 싱그러운 아름다움도 만날 수 있지만 실은 20대의 불안과 꺾인 자존감의 증거들을 더 많이 마주치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고 심리적 거리가 멀어진 상태에서 하는 "그래도 너네 때가 좋은 거야." 같은 말보다는 이 시기의 그들의 고통에 공감해 주는 게 우선이 됐으면 좋겠다. 물론 20대 대학생들이 나이 먹은 사람들의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같은 사고를 할 수 있다면 엄청난 축복이겠지만 인류 역사상 그런 일은 있었던 적이 없는데 그걸 바라는 것도 미련한 일 같다.


하여튼 그런 복잡한 곳을 떠날 겸, 사람 자체도 적고 조용한 센터에서 공부를 하자 생각했다. 쉬는 시간을 가질 때도 공간이 안락해서 잘 쉬어지고 그러면 공부가 더 잘 되기도 한다. 다니는 길에 동네 길도 걷고 구경도 하는 것은 덤이다. 예술가의 집 앞 분수가 작동 중이었는데 그것도 예뻤고, 그 앞에서 아기를 안고 돌에 왼쪽 발을 접지를 뻔한 아빠의 몸놀림도 느낌 있었다. 라일락 향기가 정말 강하고 좋다는 걸 1년 만에 다시 느끼게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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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 가는 길에 괜히 한 번 건물 사진도 찍어보고 도착해서는 컴퓨터 펴 놓고도 한 번 찍어봤다. 오늘의 모습. 기지개 센터 1층 청년 공간은 10시부터 이용 가능이어서 일찍 도착했을 땐 교수님이 준 읽을거리를 읽으며 시간을 채우는 게 최선이다. 그러고 보면 방에 있을 땐 훨씬 긴 시간을 유튜브나 인터넷을 하며 보내는데 밖에 있을 땐 왜 같은 시간인데도 아껴 쓰고 싶어 지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그걸 이용해서 일단 센터든 학교 도서관이든 나가는 게 답인 것 같다.


시험 기간이라는 강제력으로 공부를 하고 있지만 그 덕에 해야 될 걸 하고 있으니 밤에 잠을 잘 잔다는 걸 느낀다. 다른 변수들의 영향보다 그 부분의 영향이 더 큰 것 같다. 해야 될 걸 잘 한 날은 마음이 편하고 스트레스가 적다. 해야 된다는 생각만 가진 채로 하지 않고 논 날은 사실 쉰 효과도 없는 것 같다. 마음이 즐겁지 않고 하루 종일 시달려서 그런가 보다. 해야 될 걸 하면서도 때로는 마음 푹 놓고 편하게 잘 쉴 줄도 아는 균형 감각을 가져서 충실하면서도 즐거운 하루하루를 살고 싶다.


저녁에는 도어락을 여는 것이나, 공부하는데 필요한 책이 없다거나, 전화로 커피 주문을 하다 작은 소동이 생긴다거나 하는 문제들도 있었다. 그런 것들은 카페 점원에게 "죄송하고, 친절에 감사하다."고 말을 건다거나, 닭꼬치를 기다리면서 사장님과 가게가 얼마나 오래됐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거나, 부러 더 많이 웃는다거나 하는 것으로 상쇄를 했다. 속상한 마음을 부정하지 않도록 애쓰면서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었다. 그런 것들이 활로라는 것 아니겠는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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