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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은 힘들다

2025.04.18 금요일

by 온호

금요일

새벽 3시 대에 눈을 한 번 떴다가 6시 반 알람을 듣고 눈을 떴다. 나는 늘 알람을 맞춰 놓은 시간 전에 깨고, 깬 상태로 알람시간까지 조금씩 다가가는 긴장감이나 마침내 알람 소리가 터져 나올 때의 불쾌감이 싫기 때문에 알람을 미리 꺼둔다. 그런 내가 알람 소리를 듣고 눈을 뜬다는 건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고 나는 그걸 잘 잤다는 증거로 여겼다. 좋은 시작이었다.

매트리스 위에 앉은 채로 2분 정도 3-1-4 호흡하는 것을 명분으로 일어나기 싫은 마음을 충족시켰다. 그리고 일어나서 물을 마시고 맨몸운동을 했다. 샤워하기 전에는 땀을 흘려줘야 샤워하는 맛이 좋다. 학교 가기 전에는 샤워를 해야 되고, 그래서 학교 가기 전 아침 시간에 운동을 한다. 그러다 보니 스쿼트 50개씩 네 번, 푸시업 40개씩 세 번을 30분 동안 하는 루틴이 생겼다.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고 면도를 하고 옷을 입는다. 창문을 조금 열고 설거지를 하고 커피를 내려서 보온병에 담는다. 스킨로션선크림을 바르고 섬유탈취제와 향수를 뿌리고 방을 나선다. 요즘은 내가 사는 건물 입구의 빨간 철쭉이 예쁘게 피어있어서 보기 좋다. 그렇게 아침 공기를 맞으며 출근하는 사람들, 등교하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학교로 갔다.

아이를 유치원 등원시키는 아빠나 엄마가 한 명 보일 때쯤 되면 학생 식당에 도착한다. 잇츠미 앱을 켜서 '오늘 아침은 무슨 메뉴이려나.' 확인하며 1,000원을 결제한다. "두부덴푸라&마파소스덮밥"이었다. 아침 메뉴는 몇몇 메뉴가 로테이션으로 나온다. 이 날 나온 메뉴도 원래는 마파두부덮밥이었다. 근데 두부를 튀기는 식으로 바꾼 것 같다. 훨씬 맛있었다. 중국식 빵 같은 것과 돼지고기 채소볶음도 맛있었다. 여러 성과들이 식당에 전시되어 있기 때문에 식당 직원분들이 굉장히 열심히 하신다는 걸 알고 있지만 이렇게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일들도 종종 생긴다. 존경스럽다. 존경스러운 마음과 맛있어서 기분 좋은 것이 합쳐져 좋은 시작을 계속 이어갔다.

9시에 시작되는 국제사회와 법은 시험범위를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교수님이 막바지에 진도를 열심히 빼셨다. 11시 45분이 돼서 강의 시간이 끝나면 2층에서 5층으로 이동한 후 평화와 갈등 강의실 입구 앞 공간의 테이블에서 조식 먹은 식당에 있는 편의점에서 미리 사 둔 샌드위치와 보온병에 담아 온 커피를 먹는다. 그리고 쓰레기를 버린 뒤에 조별 지정석에 가서 앉는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학교로 돌아와서 자기 나이가 다른 학생들보다 많다던 여학생과 '안녕하세요.' 인사를 한다. 나도 상대의 학번을 모르는 건 마찬가지지만 이 사람은 아직 내 학번을 모른다. 아마 알면 제법 반응이 있을 것 같다.

평화와 갈등은 늘 그렇듯 노트북 배터리를 아낄 수 있는 강의였다. 9시부터 5시 45분까지 노트북을 써야 해서 배터리 관리에 압박을 느꼈던 학기 초와 달리 요즘은 충전 위치와 타이밍도 확보하고 노트북을 덮어놓을 타이밍도 파악했다. 잘 적응했다는 느낌이다. 클래식음악산책은 출석을 부르다 칭찬을 소급받았다. 지난주 발표를 했었는데 교수님이 발표 내용 관련해서 추가적인 이야기를 하느라 칭찬을 못하고 끝났다며 "내용도 충실하고 발표를 잘하셨어요." 하고 말씀하셨다. 사실 지난주엔 아무 피드백이 없었어서 별로였나 생각했었는데 '그래, 못했을 리가 없지.'하고 안심이 됐다. 발표자가 된다는 건 사실상 자료조사와 PPT 만들기 역할에도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PPT 속 텍스트에 "~입니다, ~라고 합니다, ~습니다."만 붙여서 읽을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발표를 할 때 그냥 PPT를 줄줄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학생들에게 정말로 학습 목표와 관련하여 내용을 잘 전달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비대면 강의는 틀어놓고 출석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성실히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내 '신념'이라는 걸 요즘 알게 됐다. 그동안은 스스로의 지향점쯤으로 두루뭉술하게 생각했다. 그러다 이런 내 가치관에 대해 "신념이 있으시네요."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을 볼 때 별로 교류하고 싶어지지 않는 마음이 드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정답이 아니라 내 신념이라고 생각하면, 신념은 사람마다 다르니까 그 사람들은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내 안에서 교류의 여지를 먼저 끊을 필요가 없어진다.

클래식음악산책 강의 시간 끝에는 예상 문제를 조별로 함께 풀어 보는 시간이 있었다. 출석 부를 때는 있었던 우리 조 중국인 유학생과 무용학과 신입생은 이때 없었다. 불행하게도 교수님이 조별 학습이 진행되는 것을 확인하시면서 출석부와 인원수를 대조하셨기 때문에 이들의 일탈은 발각됐고, 아마 출석점수와 태도점수에서 감점이 있을 듯하다. 화요일에 신념에 대한 생각을 했어서 그런지 그런 그들에 대해서 반감이 들기보다는 비슷했던 예전의 내 행동이 떠올랐고, 이해하는 마음이 들었다. 자기 관점이나 신념에 갇히지 않는다는 것이 참 중요한 일인 것 같다.

클래식음악산책 강의는 늘 일찍 끝난다. 이 날은 5시 20분에 끝났다. 그나마 일찍 마쳤는데도 9시부터 5시 20분까지 앉아서 강의를 듣는 일이 생각보다 힘든 일이라는 걸 느꼈다. 사람 많고 문 닫힌 강의실에 오래 머무니 중간중간 산소가 부족하다는 느낌도 들고 허리나 다리도 어떻게 둬야 할지 모르겠는 느낌이 찾아왔다. 대학생활 이렇게도 경험해 보고 저렇게도 경험해보고 싶어서 이번 학기는 공강일도 만들어 보고 그 바람에 금요일은 헤르미온느식 시간표도 짜봤는데 어떻게든 되기야 되지만 수월하고 어렵고의 차이가 분명 있긴 하다. 다음 학기의 나에게는 "권장하지 않음" 정도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다.

금요일에는 저녁잠을 좀 잤다. 그러고도 밤에는 밤대로 밤잠을 잘 잤다. 힘들긴 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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