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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키코모리 10년 경력자의 일기

#가족

by 온호

모레 금요일 현충일부터 토-일로 이어지는 휴일에 6남매가 부모님 집에서 모이기로 했다. 말이 나왔던 2주 전부터도 이미 금요일 기차표는 없었는데, 다행히 나는 목요일에 떠날 수 있어서 목요일 기차표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 둘째 누나랑 같은 기차로 목요일 오후에 내려 가게 되었고 수요일인 오늘 학교 마치고 바로 누나 집으로 이동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학교에서 바로 누나 집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6시 쯤에 부지런하게 일어나서 집을 며칠 비우기 전에 필요한 대비와 짐싸기를 했다. 줄 때가 조금 덜 됐지만 화분에 물을 미리 조금 줬고 바닥을 쓸었다. 환기를 위해서 창문을 열어놓으면서도 혹시 그 며칠 사이 비가 올지도 모르니 너무 많이 열어 놓지는 않았다. 토요일에 했던 펜싱 체험으로 생긴 DOMS가 아직 가시지 않았지만 맨몸 운동을 하며 적당히 이른 아침 시간을 지나보내고 세탁기 30분 코스를 동작시켰다. 그리고 샤워를 하고 나와 책가방은 평소대로 싸고, 속옷과 잠옷 한 벌씩을 스타벅스 보스턴 백에 쌌다.


세탁기에서 다 돌아간 빨래를 꺼내서 건조대에 널어놓고 캬라멜 견과를 만들었다. 내가 요즘 좋아하는 호작질이다. 후라이팬에 버터, 설탕을 대충 넣고 녹이다가 우유를 넣고 다시 저어준다. 마지막으로 견과류를 넣고 졸인다. 쿠키를 구울 때나 설탕시럽을 만들 때처럼 마지막에 어느 정도 질감이 완전히 구현되지 않은 지점에서 가열을 멈추고 식으면서 질감이 완성되도록 하는 것이 그나마 까다로운 부분인 것 같다. 시간을 재거나 계량을 하지 않고 어떻게 만들더라도 기본적으로 결괏값이 맛없을 수가 없다는 게 이 간식의 장점인 것 같다.


아침에 학교 식사시간과 강의 시간에 늦지 않느라 바쁜 와중에도 굳이 수제 간식을 만든다고 부산을 떤 이유는 일단은 내가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한 알씩 먹고 싶었다는 게 첫 번째 이유였고, 두 번째 이유는 남매 중 나와 가장 입맛이 비슷한 둘째 누나한테 나눠 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건 신나는 일이다.


결과물을 냉동고에 넣어서 굳히는 동안 옷을 입고 선크림을 발랐다. 테이블을 행주로 깨끗하게 닦고 커튼을 양쪽으로 걷어서 묶어 놓고 화장실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치웠다. 시간을 적당히 보낸 것 같을 때 냉동고에서 견과류를 꺼내 톡톡 쳐서 낱알을 분리시켰다. 그리고 하나 먹어 보니 운 좋게 오늘 만든 것은 결과가 상당히 좋았다. 너무 달거나, 좀 덜 달거나 하지도 않았고 소금도 적당히 뿌려졌는지 짜지도 않았다.


반을 나눠서 한쪽에는 계핏가루를 뿌리고 통에 따로 담은 후, 헌혈하고 받았던 스타벅스 보스턴 백에 통을 넣었다. 냉장고에서 반 정도 남은 카라향 청도 꺼내서 같이 넣었다. 머스마 키우느라 빨리 늙는 중인 누나에게 상큼한 수제청도 좋을 것 같았다.


한 시간 정도 가방 두 개를 메고 서서 지하철로 이동하는 것은 서운한 일이었지만 누나 집에 도착해서 귀여운 랫서판다 같은 만 세 살 조카를 보니 기운이 났다. 조카를 손쉽게 몇 번 꺄르륵 시켜준 다음 누나와 매형에게 캬라멜 견과를 맛 보여줬다. 누나는 둘 다 맛있는데 계핏가루가 뿌려진 게 더 맛있다고 했다. 어릴 때 엄마가 해주던 프렌치토스트 간식의 영향인 것 같다며.


누나도 내가 온다고 고기를 사놓고 요리를 해서 샐러드와 같이 대접해 줬다. 내가 오면 늘 잘해 준다. 식사 후에는 조카를 데리고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다가 편의점에서 탄산수를 사 와서 누나에게 카라향에이드를 만들어 줬다. 그것도 맛있게 먹었다. 사실 재료빨이 더 크다는 걸 아는데도 소량의 청쯤은 계량 안 하고 뚝딱 만들어도 맛있게 만드는 내 솜씨가 검증된 것이 뿌듯했다.


나는 확실히 이런 호작질을 좋아한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다음 단계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인 닭강정을 수제로 만들어 먹게 될 것이다. 간식, 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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