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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키코모리 10년 경력자의 일기

#주식

by 온호

지나가다 눈에 들어온 달이 유난히 땡그랄 땐 보름이겠거니 한다. 지난주 목요일에 본 달이 굉장히 동그랬다. 보름은 수요일이었다. 집에 들어오면서 봤던 아주 꽉 차게 동그란 달은 하늘의 낮은 곳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자려고 누웠을 때 보니 그 녀석은 아주 높이 올라와있었다.


작년 11월에 처음으로 주식을 샀었다. 그래도 전공 강의에 투자 관련된 강의가 개설되어 있는 과인만큼 직접 해보기는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학교 시험이야 단기 기억에 저장된 지식으로 치르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것이겠지만 아무래도 직접 해보는 것은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거라는 생각도 있었다. 책은 직접 행동을 해보고 다시 찾아서 봤을 때 진짜로 읽히는 법이다.


국장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라든지,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든지 하는 것들 때문에 쫄아서 일단 달러 환전부터 했다. 주식에 대해 아는 것도, 자본도 없다고 봐야 할 수준이니 그나마 평소에 관심 있는 분야의 저렴한 주식을 재무정보 몇 가지 훑어보고 골라 샀다.


수익률은 그 후로 대체로 빨갛다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됐을 때 처음으로 파랗게 변했었다. 주가가 처음 매입가보다 낮아졌다. 내 투자액 자체가 작으니 손실액도 그리 크지 않았고, 외적인 이슈로 생긴 일이라 주식 가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해서 그냥 가만히 뒀다. 투자 규모가 커지면 같은 경우에 내 손이 벌벌 떨릴지, 아니면 똑같이 심드렁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돈을 벌어서 투자 규모가 커져봐야 알 일이다.


현재가가 매입가보다 분명히 낮아졌을 때 지금이 바닥이라는 걸 생각했지만 '혹시'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서 또 좀 더 내려가면 산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나중에 후회를 했다.


요 며칠, 처음 매입을 할 때 이미 매입가보다는 주가가 상승할 것을 확신하고 샀던 것임에도 주가가 매입가보다 낮아진 시점에 추가 매수를 망설인 이유가 뭘까 생각해 봤다. 애초에 확신이 확신이 아니었다거나, 바닥 꼭짓점을 정확하게 찍고 싶다는 불가능한 완벽주의라거나, 아니면 사자마자 파랗게 되는 것을 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메타인지가 된 것 같아서 재밌었다.


아버지는 자신이 값이 오를 땅을 잘 알아봤다는 말을 종종 하곤 했다. 입지를 잘 본다는 뜻이었다. 그게 사후확신 편향인지 진짜 통찰인지는 알 수 없다. 증거는 행동으로 남겨 두어야 하는 것인데 증거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조금씩 행동을 하고 있다. "해봤는데 처참하게 실패했다."가 "생각만 해봤다."보다는 멋있는 거 같다.


커버 사진을 뭘 쓸까 갤러리를 훑다가 보름달이 올라갔던 것을 떠올리고 주식이 올라간 것으로 연결시킨 게 어쩐지 자신에게 실망스럽기도 하다. 달빛이 드는 내 방 창문 너머로 습도와 기온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 독특한 빛을 내던 산란이 마음에 들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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