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계집중근로
말일이다. 7월 31일. 딱 끊어지게 7월 1일부터 근로를 시작했어서 그런지 오늘로서 한 달을 마감한다는 느낌이 유독 강하게 든다. 유치원이나 도서관은 방학이 있기도 하고, 기관 일정에 따라 근로 시작일이 들쑥날쑥했는데 한국철도공사는 휴일이 없어서 그런지 근로기간이 1일에 시작해서 31일에 정확하게 끝난다. 그건 아주 깔끔해서 좋은 일이다.
7월의 회고를 겸해서 이번 국가근로장학-하계 집중 근로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봐야겠다.
일단 국가근로장학금이라는 것은,
"대학생에게 학자금(등록금과 생활비) 마련을 위한 근로기회를 제공하고 그에 따른 대가(장학금)를 지급함으로써 안정적인 학업 여건 조성 및 사회‧직업체험 기회 제공으로 취업역량 제고"
하는 것이라고 한다.
2009년부터 시행되었다고 하는데 나는 10학번 신입생일 때 이런 게 있는 줄 몰랐다. 생긴 지 얼마 안 돼서 그랬는지, 내가 관심이 없어서 그랬는지 모를 일이다. 알았다면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르겠다. 돈이 없어서 학교 다니기 힘들었던 게 사실이니.
방에 틀어박혔던 세월을 지나 2023년에 재입학을 할 때 동생이 "국가근로장학 같은 것도 할 수 있으면 하고. 난 도서관에서 했었는데 엄청 좋음."이라고 했다. 그때 처음 국가근로장학이라는 걸 알게 됐다. 학교를 다니다 보니 학교 홈페이지나 인포 21에 장학 신청 같은 것이 뜨길래 재입학 후 처음 맞는 방학부터는 국가근로장학 신청을 했다.
학생들은 보통 국가근로장학을 그냥 "근로"라고 하는데, 나도 근로라고 해야겠다. 대가성 장학금인 근로 월급은 한국장학재단에 등록한 본인 계좌에 현금 형태로 지원된다. 시급은
- (교내근로) 시간당 10,030원
- (교외근로) 시간당 12,430원 이다. 꽤 차이가 난다.
교외 근로지는 대학과 협약을 맺은 외부 기관이다. 교통비나 통근 시간, 업무량을 고려해서 시급을 더 주는 것 같다. 그런데 교내에 있는 기관이더라도 대학과 사업자등록번호가 일치하지 않는 기관은 교외근로로 구분이 되는데 이런 근로지를 잘 알아볼 필요가 있다. 다만 이런 곳은 경쟁이 치열할 수 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건 집중 근로이다. 집중 근로는 방학 때만 근로를 하는 것이다. 하계 집중 근로, 동계 집중 근로가 있다. 그리고 방학 집중 근로는 교외 근무지가 몇 군데 추가된다. 쉽게 말하면, 학기 중 근로를 하지 않고 방학 때만 근로를 하기로 한 학생만 신청할 수 있는 교외 근무지가 있는 것이다. 학기 중 근무처럼 공강 시간이 될 때마다 출근, 퇴근 맘대로 반복할 수 있는 근무자는 필요 없고, 오전 근무나 오후 근무, 일근 딱 떨어지게 출근할 사람만 뽑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이번에 하계 집중 근로를 원해서 하게 된 건 아니고 까먹고 학기 중 근로 신청 기간을 넘기는 바람에 방학 때만 따로 뽑는 집중 근로를 신청하게 된 거였다. 그때는 좋은 기회를 놓치고 돈을 못 벌어 손해 본 것 같아 속이 쓰렸지만 그 덕분에 지금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됐다.
학기 중 근로를 신청하면 이어지는 방학까지 포함해서 같은 곳에서 일하게 된다. 25-1학기 학기 중 근로지로 도서관을 선택했다면 여름방학까지 도서관에서 쭉 근로하는 것이다. 원하는 경우에는 근로지 국가근로장학 담당자에게 보고하고 방학 때는 근로를 그만둘 수도 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결원이 생기다 보면 가끔 학교 장학 안내 관련 게시판에 추가 인원을 모집하는 공고가 뜨기도 한다. 몰랐는데 장학금을 받으려면 수시로 홈페이지를 들락거리는 것은 기본으로 필요한 일이었다.
기숙사에서 가깝고, 잘할 수 있을 일이라 첫 근로지로 선택했던 유치원에서는 8개월을 있었다. 교내, 교외근로 개념도 모르고 신청했었다. 그러다가 시급이 생각보다 좀 많아서 알아보다가 근로지 구분 개념을 알게 됐던 것 같다. 그리고 첫 근로 스타트를 유치원에서 끊어서 그런지 그 후에 어디를 가서 무슨 일을 해도 꿀같이 여겨진다. 이것도 참 괜찮은 일이다.
국가근로장학하면 가장 먼저 떠오를 만큼 유명한 "도서관 근로"도 해봤다. 재밌었다. 일반 학생 신분으로는 들어갈 수 없는 지하던전 같은 보존서고를 다니는 거라든지, 000부터 900까지 남들은 어떤 책을 재밌게 많이 보는지 당당하게 엿볼 수 있다는 점이라든지, 엉뚱한 데 잘못 비집고 들어와서 자리를 잡고 있는 책을 찾아내서 원래 자리로 돌려보내는 일이라든지. 서가 사이를 다니면서 냄새를 맡는 것도 좋았다.
이번에 하계 집중 근로 근무지 지망 신청을 넣을 때는 못 보던 근무지가 많았다. 소방 관련, 우체국, 한국철도공사 등. 그중에서 내 관심을 끈 건 한국철도공사였다. 거의 매일같이 이용하는 지하철역이라는 곳을 내부인 관점에서 보게 된다면 너무 재밌을 것 같았다. 마침 걸어서 갈만한 거리에 근무지가 여러 군데 있어서 선택지도 많았다.
여기로 근로를 다닌 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보통 사람들은 스크린도어라고 부르는 걸 여기서는 절대로 PSD(Platform Screen Door, 승강장 안전문)라고만 부르는 게 지금까지는 제일 인상 깊다. 그리고 사람들이 왜 공기업을 많이들 가려고 하는지도 섣부르지만 충분히 알 것 같다.
여름이라 PSD에 에러가 많이 나고 있다. 스크린도어는 온도와 습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걸 알게 됐다. 에러가 나면 역무실에 경보가 울리는 것도, 태엽 감는 것 같이 생긴 열쇠로 박스를 열어서 PSD 리셋을 시키는 것도 재밌다.
전에는 신경도 써본 적 없고 있는 줄도 몰랐던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는 게 왜 이렇게 재밌는지 모르겠다. 남은 한 달도 지금까지처럼 이렇게 즐겁게 일하다 학교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