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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키코모리 10년 경력자의 일기

#홍수

by 온호

일요일이었던 어제는 중랑천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서울둘레길 4코스 출발점까지 갔었다. 그리고 그저께도 중랑천에서 짧게 달리기를 했었다. 수요일쯤에 중랑천이 범람했었는데, 그 흔적들이 아직 곳곳에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비닐 쓰레기들이 풀밭에 흉하게 꽃꽂이가 되어있었고, 여러 표지판들과 나무들이 기울어져 있었다. 농구장 펜스들이 뽑혀있기도 했고 시래기 말리듯 풀을 거꾸로 매달아 말리고 있는 것도 보였다. 버리기 전에 무게를 줄이는 것인가 싶다. 자전거 도로, 산책로 곳곳에 흙탕물이 있었고 하수 냄새가 나는 구간도 있었다. 기계 장비들과 인부들이 열심히 복구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한바탕, 한바탕이었구나 하는 느낌이 물씬했다.


달리기를 하는 길 양 옆으로 보이는 비닐 쓰레기들을 보면서 '누가 저 많은 쓰레기를 멋대로 버렸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조금씩, 천천히, 드물게 맘대로 버려진 쓰레기들이 썩지 않고 모두 고스란히 남아 있었기 때문에 많다고 느껴지는 걸까 싶기도 했다.


나는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는 사람들이 싫다. 그런 부류의 인간이 존재한다는 걸 받아들이고 분노하지 않으려고 의식하면서도, 싫은가 좋은가를 따진다면 분명하게 싫은 것이다. [채식주의자] 글에서 말했던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부분"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어떤 행동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전제를 깔아놓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남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은, 예를 들어 "채식주의자들이 꼴 보기 싫어서 눈살이 찌푸려진다, 기분이 언짢아진다, 신경이 거슬린다."같이 생각만 달리하면 문제가 아니게 되는 것들은 빼고 말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밥을 퍼먹는다고 해도 실제로 아무 피해도 발생하지 않지만, 그걸로 인해 누군가의 마음에 고통이 발생한다면 그건 그 사람의 문제인 것과 같은 것이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일에는, 쓰레기가 아무 데나 버려진 걸 보면서 내 심기가 불편해지는 문제 외에도 실질적인 피해가 명백하게 발생한다. 환경오염, 악취, 뒤치다꺼리의 수고로움, 사회적 비용. 그런데도 왜 어떤 사람들은 무언가를 더럽히고, 무언가에 고통을 주는 것에 거리낌이 없을까.


어쩌면 그들에게는 '공공의 것'이라는 개념 자체가 실감 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 집 앞은 깨끗하게 치우면서도 한 블록만 벗어나면 아무렇지 않게 담배꽁초를 튕기는 사람들처럼. 혹은 '내가 쓰레기를 버려줘야 청소부들이 돈을 번다'라는 믿음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정말로 그 순간에는 다른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일 수도 있다. 그저 손에 든 것이 거추장스러워서, 가방이 무거워서, 급해서.


나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언젠가 처리하기 곤란한 조그만 무언가를 풀밭에 몰래 던져두고 떠났던 순간. 그때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지 기억해 보자면, 분명 '이러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은 있었다. 동시에 '이 정도는 괜찮을 것'이라는 자기 합리화도 있었고, '지금 이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변명도 있었다. 무엇보다 '아무도 모를 것이다'라는 비겁함이 있었다.


그 순간의 나는 환경 문제나, 그 쓰레기를 본 누군가가 느낄 불쾌감은 무시했다. 그저 내 편의만을 생각했다. 그런 나와 중랑천변에 쓰레기를 버린 사람들 사이에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모두 때로는 이기적이 되고, 때로는 무책임해진다. 다만 그 정도와 빈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런 순간이 매우 드물고 미안함도 오래 간직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런 순간이 일상이 되어버렸을 뿐인 것이다.


그래도 쓰레기 더미가, 누군가의 습관보다는 누군가의 한 순간의 이기심들이 모여 생기게 된 것이라면 좋겠다. 그럼 사람에 대해 조금 덜 실망스러워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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