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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키코모리 10년 경력자의 일기

#시선

by 온호

오늘은 자기 머리카락이 잘 잘렸는지 확인하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었다. 어떤 남자가 막 머리카락을 자르고 나왔는지 거울로 보기 힘든 자신의 뒷머리와 옆머리 부분을 확인하기 위해 걸어가면서 핸드폰을 든 오른손을 멀리 뻗어 셀카를 찍고 있었다. 그 남자는 왼쪽 대각선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서 빠르게 사진을 찍었는데, 우연히 그 시선 상에 정확히 내가 서있었던 때문에 눈이 마주쳤다. (학생)식당에서 밥을 다 먹은 후에 유제품이나 물을 마시느라 고개가 들리면, 동시에 건너편 식탁에서 마찬가지로 음료를 마시는 사람과 종종 눈이 마주치는 일이 있는데 그럴 때와 비슷한 약간의 민망한 느낌을 받았다.


길에서 눈 마주치는 일은 빈번한 듯하면서도 그렇지 않다. 왜냐면 다른 곳을 보며 걷다가 시선이 느껴진 곳을 무의식적으로 쫓으면, 시선을 보낸 사람은 보통 다른 곳으로 황급히 시선을 거두기 때문이다. 또, 요즘은 모자 챙을 얼굴 절반쯤까지 오도록 내려쓰는 사람들도 많아서 눈 자체가 드러나있지 않는 경우도 흔하고 애초에 바닥 쪽을 보면서 걷는 사람도 많다.


허락 없이 눈을 오래 응시하는 행위가 상대에게 불쾌감을 줄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인지, 포교하는 말을 건네기 전의 비언어적 포석처럼 인식되기 때문인지, 웬만하면 다들 수비적인 시선을 가지는 것 같다. 그래서 어쩌다 낯선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그게 특별한 경험처럼 여겨지나보다.


뜬금없지만 시선과 관련해서 이어지는 생각이 있다. 얼마 전 『채식주의자』를 다 읽었을 때, 이어서 단테의 『신곡』을 빌려서 읽었었다. 32곡 부분에 뭔가 떠올리게 하는 문장이 있었다.


모두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으며, 입에서는 추위가, 눈에서는 슬픈 마음이 드러나고 있었다.


단테 기준 가장 중한 죄인 배신의 죄를 처벌하는 아홉 번째 지옥의 호수 얼음 속에 갇힌 영혼들을 묘사한 문장이다. 14세기 초 이탈리아에 지하철은 분명 없었을 텐데 단테는 어떻게 지하철 풍경을 묘사한 걸까. 나는 저 문장을 읽다 익숙한 지하철 풍경을 떠올리고 말았다.


지하철 안 사람들은 무슨 죄를 지은 것이길래 최하층 지옥 사람들과 닮은 모습을 하고 있는 걸까. 지하철 차량은 하나의 기다란 얼음 호수인 걸까, 아니면 그냥 세상이 지옥인 걸까. 이미 존재하고 있던 '지옥철'이라는 말이 새삼 그 무게를 더해 새롭게 다가온다. 어쩌면 그 말을 지은 사람은 신곡-지옥편을 읽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 비관적인 감상과 달리 지하철 풍경이 언제나 희망 없는 지옥처럼 암울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도 말하고 싶다. 그 안에는 늘,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의 따뜻한 배려심도 있고 친구와 함께하는 즐거움, 어린 자녀가 선사하는 순수한 기쁨도 있으며 직장인의 열정과 연인들의 사랑도 있다.


오늘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지하철을 이용했을 텐데 그들이 지하철에서 지옥보다는 그런 천국의 모습들을 보았기를 막연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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