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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키코모리 10년 경력자의 일기

#새로운 일상

by 온호

해가 서쪽으로 충분히 넘어갔을 때만 쏟아지는 도서관 천창 사이 햇빛에 눈이 부시다.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간다는 신호다. 방금 막 서가의 1층부터 6층까지 앉았다 일어났다 하며 정배열을 확인했다. 앉았다 일어날 때마다 어지러움을 느끼곤 했지만 잘못 꽂힌 책 세 권 정도를 그럭저럭 색출해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수기 출근부에 서명을 하고 퇴근을 하고서는 출근부 앱으로 퇴근 처리를 한 번 더 잊지 않고 한다. 그러고 도서관을 나와서 '저녁을 어떻게, 어디서 먹을지' 고민하는 시간이 찾아온다. 선택에 따라서 까딱하다가는 두 번째 학교-기술교육원-에 지각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편의점에서 간단한 걸로 때우는 게 가장 여유 있고 안전하다. 근데 그렇게 하면 귀가했을 때 배가 너무 고파 군것질을 하게 된다. 학교를 나서기 전 학생 식당에서 석식을 먹고 나가면 시간 여유는 없이 거의 딱 맞게 도착한다. 그것도 지하철을 타지 않고 자전거를 탔을 때의 이야기다. 지하철을 타고 가려면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안 된다. 자전거보다 최소 10분 이상 더 소요되기 때문이다.


보름동안 이렇게 저렇게 시도해 봤다. 밤에 추가적으로 음식 섭취를 하게 된다거나 제대로 된 저녁 식사를 챙기지 않아 몸 삭을 걸 생각하면 학교에서 석식을 먹고 동선을 최소화해 등원하는 게 아무래도 최적인 것 같다. 오늘 처음으로 그 루틴을 반복해 봤는데 시간이 5분 정도 남았다. 그래서 이 정도에 만족하기로 했다.


2년 동안 운동을 꾸준히 하면서 땀도 잘 나게 된 탓인지 자전거를 타고 30분 정도를 가다 보면 자연스레 땀이 많이 난다. 그래서 늘 젖은 상태로 교실에 들어가게 된다. 오늘은 비가 와서 우비를 썼지만 비에 제법 많이 젖었다. 비에 젖은 상태로 교실로 들어갔더니 한 학생분이 "밖에 비 많이 오죠? 그거 땀 아니죠?"하고 물었다. 나는 "예, 근데 소나기 같은 느낌이에요"하고 대답하면서 나한테 땀쟁이 캐릭터가 붙어있음을 생각했다. 웃음이 나왔다.


오늘 수업은 건축목공이었다. 월화는 건축목공, 수목금은 도배. 처음에 호기롭게 시작했던 사람들도 점점 생각보다 어렵고 힘들어지자 낯빛이 좀 어두워졌다. 나도 마찬가지다. 대신 '어렵다,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도배 실습장 철문에 붙어 있는 "세상에 쉬운 것은 없다. 그러나 못할 것도 없다"를 떠올린다. 참 맞는 말이다.


대학교를 다시 다니면서 처음이 어렵지 몇 번 하다 보면 쉬워지는 일에 익숙해졌다. 매 학기 새로운 과목들을 만날 때마다 그랬다. 이번에 기술교육원에서 배우는 것들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한다. 교수님들이 하라는 대로만 따라가려고(그것도 못하는 사람이 많다) 애쓰다 보면 시간이 지났을 때 성과가 분명 있을 것이다.


새로운 일상에 적응하기 위해 요즘 수면 관리를 다시 좀 더 철저하게 하게 됐다. 그렇지 않고서는 체력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하면 두 마리 토끼 모두 놓치게 되는 결말이 뻔히 보인다. 잘 자기 위해서 귀가 후 조금 따뜻한 물로 샤워, 자기 전에는 핸드폰 건드리지 않기, 설거지하기 및 빨래 개기, 리바이브 다이어리 밤 영역 작성하기 등을 한다. 그리고는 등을 벽에 살짝 기대 누워서 책을 펼친다. '이게 행복인가'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데 이때 잠이 솔솔 온다. 이렇게 생활하니 잠도 확실히 잘 자게 되고, 깨어있는 동안의 선명도가 높아졌다.


지금 생활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건 나를 방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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