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는 일들이 많았네. 79번째 글
방학이라 여유 있어서 자주 쓰다 보니 요즘 제법 진짜 일기 같네.
은 뭐 별 거 없었던 거 같다. 유치원에서 7시간 반 일하고, 저녁으로 정문 앞에 보쌈 먹으러 갔었지. 요즘 식사를 좀 부실하게 했어서 배도 자주 고프고 그래서. 아! 점심에 학식으로 초복이라고 냉초계국수가 나왔었다. '냉초계국수가 뭐지?' 하다가 먹어보고 차갑고 식초맛도 나길래 '아, 그래서 냉초계구나.' 했다. 그러면서 냉초계 먹는 킵초게가 머리에 떠올라서 어이없어서 혼자 웃었었다 참. '이렇게까지 아재일 필요는 없잖아.' 하면서.
이 날따라 먹고 계산하고 나가기 귀찮아서 미리 결제해도 되는지 "사장님, 계산 먼저 해도 괜찮을까요?"하고 물어봤었다. 먹고 기분 좋게 그냥 바로 나가고 싶었다. 그래서 카드로 결제 먼저 했다. 근데 공깃밥 하나를 다 먹고도 배가 고파서 중간에 공깃밥 하나를 더 시켜 먹었다. 그러고 나서 '아, 이러면 계산 한 번 더 해야 하는구나. 까불지 말고 그냥 원래대로 나갈 때 계산할걸.'하고 생각했다. 밥을 다 먹고 난 후에는 카드를 또 지갑과 기계에 넣었다 뺐다 하기 귀찮아서 공깃밥 추가금을 현금으로 계산하려고 천 원짜리를 하나 꺼냈더니 사장님이 안 받으셨다. '아이고, 감사해라. 또 와야겠네.' 마음이 좀 따뜻했었지.
기지개센터 원예활동 있는 날. 원래는 오전에 유치원 근무를 3시간 하고 출발하지만 이 날은 다음 학기 '수강희망과목 담기'를 하려고 유치원 안 갔다. 12시에 교수님이랑 점심 먹는 것도 유치원 안 가는 날 하면 좋을 것 같아서 10시에 열리는 희망과목 담기를 하고 나서 11시 50분쯤 연구실을 찾아갔더니 조교가 "교수님 출근 안 하셨어요."라고 했다. 헛걸음했다. "방학 때 12시쯤에 밥 먹으러 연구실로 오면 된다."던 교수님 말씀대로 겨울방학부터 지금까지 연락 없이 무작위 날짜에 총 세 번을 찾아갔는데, 세 번째 시도에 드디어 이런 일이 생겼다. 늘 이렇게 될 경우를 걱정했었는데 앞선 두 번은 운 좋게 무사히 식사를 했던 거지. 그러니까 속상해할 필요 없어.
그리고 점심을 먹고 '허브 비누 만들기' 활동을 하러 기지개센터로 갔다.
레몬향과 라벤더향이 있었고 난 레몬에 애착이 있는 편이니까 레몬향을 골랐다. 아이싱이 된 레몬케이크를 상상하면서 타원형 몰드를 고르고, 색소를 넣지 않은 불투명 비누를 아래에 먼저 굳혔다. 그리고 노랑 색소를 넣은 투명 비누를 그 위에 부었는데 그게 아래의 비누를 조금 녹여버리고 말았다. 구멍이 나는 걸 보는 순간 계획대로 되지 않아서 좀 아쉬웠는데, 굳힌 후에 결과물을 보니 웬 귀여운 계란 프라이가 나왔다. 그래서 기분이 좋아졌다. 귀여워 내 비누. 속은 깍둑 썬 불투명 비누가 빌린 비유로 '코코팜처럼' 들어있다. 어쩌다가 겉과 속이 모두 맛있어 보이는 비누를 만들어버렸네.
비누가 굳는 동안 허브티를 준비해 주셔서 마시면서 기다렸다. 티색에 레몬밤이랑 페퍼민트도 넣어서 실로 쪼매고. 쪼매는 건 할머니가 쓰던 말인 거 같은데 입에 붙었네.
스티커까지 붙여서 최종 완성한 모습. 활동이 끝나고 선생님들께 인사를 드리고 센터를 나섰다.
장마철에 우산을 안 챙겨 온 건방진 나를 챙겨주시는 청년 분과 함께 센터 근처 가까운 카페에서 차를 마시면서 휴식을 가졌다. 오미자레몬차(냉), 오미자레몬차(온). 또 감사하고 좋은 시간이었지.
그리고 청년이 다음 스케줄 떠나야 하는 6시가 돼서 지하철로 같이 이동하다가 하늘색 선에 '숙대입구역'이 써진 것을 보니 저번에 큰 누나한테 "햄버거 먹으러 갈게." 했던 것이 생각났다. 그래서 누나한테 시간 되냐 물어봤더니 6시 30분에 병원 예약돼 있다고 했다. 그 이후는 이전 글 <"걱정하지 마라."라는 말에 대한 생각> 에 적힌 대로다. 어김없이 일상 기록용 글을 쓰게 될 줄 알고 누나를 찾아갔었는데 찍어둔 사진도 다 팽개치고 갑자기 그런 감정적인 글을 적게 될 줄은 나도 몰랐는데 그렇게 됐었지.
스무 살과 스물네 살에 학교 다녔던 길에 오랜만에 돌아와서 감상에 젖었다. 요즘 계속 생각났던 역 앞 야구연습장에도 9년 만에 다시 가보았다. 아쉽게도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우천 시 야구불가"라는 안내와 함께 문이 끈으로 잠겨있었다.
하지만 너무 아쉬운 바람에 끈을 풀고 들어가는 원래라면 하지 않을 짓을 저질러버렸다. 마침 비가 소강상태였어서 '지금은 우천시가 아니잖아. 융통성을 발휘하자'고 합리화도 했다. 최근 이런 보통은 권장되지 않는 제멋대로의 행동을 의식적으로 하려고 한다.
6시 38분 누나 전화받고 만나서 버거집 가는 길. 이 내리막길도 정말 자주 다녔는데. 사진 찍은 시점에서는 오르막길인데 내가 왜 '내리막길'이라고 했을까 생각해 보니 14년 전, 학교에서 집으로 올라가던 길은 주로 다른 곳이었구나. 내려올 일만 많던 길이어서 내리막길이라고 했네.
내가 먹은 하와이안 버거, 그리고 시그니처 메뉴인 지못미 버거. 요즘 하와이안 피자가 좀 먹고 싶었는데 마침 하와이안 버거가 있길래 냉큼 시켰다. 너무 맛있었지. 누나한테 "6학년 때 <실과> 시간에 피자 만들어먹는데, 통조림 파인애플도 썰어서 토핑으로 올려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어서 난 그 메뉴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생각해 보니 나 민초도 좋아하는 편이고, 탕수육도 온건 부먹파에, 파인애플 올린 피자도 좋아하네.
햄버거 다 먹고 누나의 귀갓길에 동행할 겸, 내 추억여행 겸으로 히키코모리가 되기 전 다녔던 길들, 봤던 건물들을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다행히 마음이 안 좋진 않고 그저 뭔가 몽글몽글했다. <불편한 편의점>에도 나오길래 반가웠던 와플하우스.
제헌절인데 그런 느낌은 사실 많이 못 받았다. 오전에 유치원 3시간 근무하고 센터 활동으로 휘낭시에 만들러 갔다. 어쩌다 보니 일찍 도착해서 아무도 없는 김에 내부 사진을 찍었었다.
이 시간에 대해서 느꼈던 것을 모두 쓰자면 너무 길어질 것 같다. 마음이나 생각이 복잡하기도 했고, 활동 시간 자체도 길었다. 결론만 말하면 좀 힘들었다. 작년부터 함께 했던 선생님이 나를 보시고 "디뇽님 지금 집에 가고 싶으시죠?" 했다. 그랬다. 가고 싶더라.
결과물 개수가 되게 많았다. 담당자분이 청년들 많이 가져갈 수 있게 개수 늘리려고 공유 카페 측에 요청을 하셨다고 한다. 감사합니다. 넘치도록 양이 많았던 덕분에 왼쪽 작은 박스는 "초코맛 하나만 달라."던 센터 선생님에게 선물 삼아 드렸다. 처음엔 농담이었다며 안 받으시려고 하시길래 "아이~ 너무 많아서 혼자 다 먹으면 혈당 스파이크 와요."하고 얘길 하니 두 번 거절 안 하시고 순순히 받아주셨다. 감사하네.
공유 카페를 나서서 작년 사업에 함께 참여했던 분의 소개로 전시를 보러 신용산역 쪽으로 갔다.
전시에는 내가 쓴 글이 있을 리가 없는데도 순간적으로 '내가 쓴 건가?'하고 착각할 정도의 글이 있어서 놀랐다. 그리고 '커피 홀더 속의 세상'이라는 작품이 아기자기하고 예뻐서 좋았다. 뽑기에서는 "새로운 취미를 가져보세요."가 나왔는데 옆에 있던 클라이머 청년이 냉큼 클라이밍을 추천해서 재밌었다.
혼자 갔으면 아마 하나하나 뜯어보면서 감상하고 체험도 했을 텐데 여럿이기도 하고 관심 없는 분도 계시다 보니 그럴 순 없어서 간단하게 구경하고 끝냈다. 그리고 오랜만에 청년들과 함께 단체사진도 찍었다. 언젠가 훗날에 돌아보면 가슴이 아프도록 행복한 추억으로 남을 사진을.
그리고 저녁을 먹으러 하루 만에 다시 '버거인'으로 향했으나 재료소진으로 일찍 영업이 끝나서 아쉬웠다.
전날 저녁, 누나와 시간을 보낸 후 혼자서 고독하게 옛 추억을 곱씹은 길에 하루 만에 다시 돌아와 사람들과 함께 걸었다. 인생이 소설이라면 너무 의미가 노골적으로 표현되는 순간이다 싶었다. '상징이 이렇게 뻔히 드러난다고?' 근데 내가 보낸 순간이 그랬다.
유치원 풀근무. 유치원에서는 선생님들이 요구할 것들을 분명하게 요구해주셔서 좋다는 생각을 했고, 퇴근 전에는 같은 학과 남자 근로장학생 B와 작업을 같이 하면서 대화를 꽤 많이 나눴다. 그러면서 든 생각이 아무래도 유치원에서 일하다 보니, 결국은 아이들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면서 나랑 비슷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것 같아 그게 퍽 좋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