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딜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이길.
아무래도 염증은 아닌 듯하다.
설 연휴가 드디어 끝나고 1월 31일에 초코 병원에 다녀왔다.
처방받아온 약을 먹이면서도 이건 단순 염증이 아니다. 이렇게 생겼을 리가 없어. 혼자 생각했다.
애써 그런 생각들을 밀어내며, 초코를 쓰다듬어줄 때마다 중얼거렸다.
초코야, 아프지 마.. 이제 큰일 다 끝나고 이제야 여기 생활 진짜 시작이잖아. 여기서 건강하고 즐겁게 오래도록 같이 살자..
아직 약은 2 봉지가 남았지만, 2차 병원인 원주 동물병원에 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눈이 또 온다. 그것도 엄청난 눈보라까지 동반하여.
오전에 가는 것은 아무래도 위험할 듯하여 오후에 가기로 했지만, 바람은 점점 더 거세진다.
엄마는 걱정된다며 오늘은 가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린다.
그래도 오후가 되니 햇빛이 살짝살짝 들면서 바람도 오전보다는 약해져서 초코를 데리고 나서는데,
차에 태우기 전 엄청난 돌풍이 눈을 또 한바탕 몰고 와 우리 초코를 강타했다.
얼른 안아 앞 좌석에 태웠는데, 앉아서 한동안 바들바들 떨었다.
눈보라에 놀란 건지, 병원 가는 걸 알고 떨었던 건지, 마을길을 빠져나가는 내내 바들바들 떨어서 내 마음도 떨렸다.
어느 정도 각오는 했지만, 본격적인 검사에 앞서서도 선생님은 림프종이 의심된다고 했다.
검사의 종류와 진행 방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초코는 넥카라를 한 채 선생님께 안겨서 처치실로 들어가고, 나는 대기실에 앉아 30분 정도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병원에 비치되어 있는 펫로스증후군에 관한 책을 읽었다.
문득문득 떠올랐지만 애써 머리를 흔들며 떨쳐 버리던 초코와의 이별. 그것이 점점 더 가까워졌음을. 그래서 더 생각하기 싫었지만, 언젠가는, 그것도 그리 멀지 않은 시간 안에 우리에게 닥칠 현실이라는 것을.. 12살 초코와 살며 이제는 싫어도 생각할 수밖에 없다.
마취와 ct촬영에 있어 생길 수 있는 위험성에 관한 설명을 듣고, 동의서에 서명을 하고 다시 대기실 제자리로 돌아와 그 책을 마저 읽었다.
벌써 오후 5시가 넘어간 걸 엄마가 전화해 줘서 알았다.
역시 림프종이 강하게 의심되며, 다만 채취한 세포액 현미경 사진으로는 진행 정도와 상태가 불명확한 부분이 있어 외부에 의뢰를 해야 한다고 했고, 검사 결과는 1주일 후쯤 나온다고 한다.
다발성이라 수술은 의미가 없고, 항암치료를 해야 하며, 기본 12주에서 16주 정도 진행된다고 한다.
항암 치료가 사람의 경우에는 완치를 목표로 하지만, 강아지들은 관해라 하여 증상을 완화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것에 중점을 둔다고 한다.
초코는 8살 때 자가 면역 질환 중 하나인 '혈소판 감소증'이라 하는 큰 병을 이미 한 번 앓았고, 그때 정말 초코를 잃을까 노심초사하였다.
좋아하는 산책도 더 이상 할 수 없을지 모르며, 유전적인 영향이 큰 병이라 다시 재발할 수도 있다 했지만, 그때는 이후의 일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오로지 초코를 살려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으므로, 4개월 간 약물치료를 하였고, 다행히 초코는 그 병을 이겨내고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초코가 우리의 가족이 된 건 3개월 애기 때였는데, 나는 사실 12년 내내 초코가 버거웠다.
조그마해서 어디든 데리고 다닐만한 몸집도 아니었고, 내가 감당할 수준을 훨씬 웃도는 울트라 초특급 에너자이저다. 초코와 함께 하는 삶은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매일매일 한탄했다. 내 인생 언제 우아해지냐고.
하지만 그보다는 남편에 대한 미움이 늘 기저에 깔려있었던 것 같다. 12년 전 남편의 외도로 우리 가정은 깨져버릴 위기에 처했었다. 내 안에 그렇게 많은 눈물이 담겨 있는지 몰랐었다. 화보다는 슬픔에 휘청거렸고 동시에 나도 잘한 거 없지, 너무나 밉고 괘씸한 일 투성이지만, 남편도 나의 싸늘함에 외로웠나 보다, 서로 노력하며 다시 잘 살아보자 했다. 그러면서 남편이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했다. 강아지가 있으면 가정이 화목해진대라면서.
결혼하기 전 9년을 함께 산 해피가 너무나 아프게 우리 가족 곁을 떠났었다. 앞으로 절대 강아지를 다시 키우는 일 없을 거라고 그때 결심했다.
그런데 남편이 하는 말을 그냥 무시할 수가 없었다. 자기도 잘해 보려고 마음먹고 한 말일 텐데 단칼에 싫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래, 사랑 듬뿍 주고 키우면 헤어질 때 그렇게 아프지 않을지도 몰라.. 해피는 사랑했지만, 너무나 소홀해서 그 죄책감이 힘들었던 거야.
하지만 초코와 마냥 행복하기만 했던 시간도 잠시 뿐이었다.
남편은 강아지만 있으면 자연스레 화목해질 줄 알았나 보다. 목욕시키고 발톱 깎아주는 일은 자기 일이라고 생각했는지 군말 없이 했지만, 점점 산책과 밥, 기저귀, 집 치우기 등 온갖 시중은 나 혼자만의 몫이 되었다.
남편은 잠시 반짝 딴사람이 되었지만, 차츰차츰 무심하고 대화가 통하지 않는 이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나의 화병이 다시 도졌다. 남편이 미웠다.
애기 때라 여기저기 이빨로 갉고 다니고 오줌똥도 엉뚱한 곳에 싸놓는 말썽쟁이 초코도 덩달아 미웠다. 남편한테 너무나 화가 나서 미쳐버릴 것 같을 때는 초코한테 그 화를 퍼부었다.
초코가 아팠을 때 산책을 더 이상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단 한 번도 즐거운 마음으로 산책을 시킨 적이 없고, 의무감에 마지못해 아파트 단지 한 바퀴 겨우 돌면서도 힘들어했다.
사람을 좋아해서 산책하며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귀여운 짓을 하는지,
경비원 아저씨도 미화원 아주머니, 아저씨들도 초코를 이뻐하셨지만, 견주들은 대부분 초코를 경계했다.
강아지만 보면 꼬리 흔드는 것도 잠시, 어찌나 짖어대는지 강아지들 안 마주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었다.
그런데 초코가 아프니 가장 미안한 것이 산책이었고, 가장 해주고 싶은 게 산책이었다.
다시 건강해진 초코를 쓰다듬으며 하루에 두 번 이상 꼭 즐거운 마음으로 산책시켜 줄 거라고 다짐을 했다.
새벽부터 푹푹 찌는 여름날도, 장마철에도, 아무리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는 날도 초코 산책을 거르지 않은 것이 그 이후였으니까, 한 4년 정도 열심히 다녔나 보다.
그렇지만 그래도 뭔가 늘 버거웠다. 몸도 맘도 가볍게 나선 날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밖으로 다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 성격 탓이 컸을 것이다. 밖에만 나가면 너무나 흥분하는 초코를 안고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도 힘들었고, 기분이 늘 다운상태였던 탓에, 그렇지만 타인에게는 밝은 모습으로 대하는 게 마음은 또 편했던지라, 늘 마음 따로 몸 따로였다.
오며 가며 강아지 이쁘다고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과 신나게 이야기는 나누지만, 될 수 있으면 안 마주치고 싶었다.
작년 7월 시골로 내려오면서 산책줄 없이도 다닐 수 있는 마당과 길이 있어, 더군다나 그 길은 가끔씩 차가 지나다닐 뿐 사람들을 마주칠 일도 없었다.
이제 진짜 우리 초코랑 즐겁게 살아야지 했다. 울타리를 넓게 쳐서 그 안에서 초코가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게 만들어야겠다 했다.
그런데 시골의 여름이란 왜 이리 일이 많은지.. 텃밭농사를 짓는 부모님의 일을 거드는 것뿐인데도 매일매일 동동거렸다. 물론 내가 아직은 요령이 없어 더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게다가 한 두 해 방치한 집은 손볼 곳이 어찌 그리 많은지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할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혼을 결심하면서 살던 집을 처분하려고 내놓았는데, 매섭게 몰아닥치는 부동산 한파에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더구나 15년을 리모델링 없이 살던 집이라 그 집 역시 손볼 곳이 많았다.
집을 비워둔 상태라 환기도 주기적으로 시켜야 했고, 조금이라도 깨끗해야, 손을 봐놓아야 집이 팔릴까 싶어 1주일에 한두 번 꼴로 두 시간 운전해 올라가서 환기랑 청소, 셀프 수리를 했고, 나를 기다리며 하루 종일 짖고 있을 초코 생각에 부랴부랴 또 두 시간 걸려 돌아오는 생활이 몇 달 동안 지속되었다.
남편은 가까운 데 있으면서도 그런 잡다한 일들은 그의 안중에 없었다. 늘 그랬다.
계약이 되기까지 줄곧 이런 생활이었다.
집이 안 팔려서 내가 생각했던 최악의 상황까지 가면 어쩌지 하는 걱정에 늘 짓눌려 있었다. 여기는 여기대로 거기는 거기대로 모든 게 어수선했다.
11월에는 김장에, 병원에, 법원에.. 초코랑 놀아줄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변명이겠지만, 변명만은 아니었다. 몸도 마음도 초코한테 진심을 내어줄 여유가 없었다.
올해 1월이 되어서야 집도 잔금까지 받고 완전히 정리했고, 이혼도 마무리지었고, 딸방도 투룸으로 계약해 놓았고, 온갖 악취로 망가져가는 집수리도 큰 건은 얼추 끝냈다. 그리고 나니, 우리 초코 목에 어느 틈엔가 멍울이 주렁주렁 커져 있었다.
외부 검사결과 다발성 림프종이라는 병명이 확실시되었고, 항암치료가 어려운 과정이기는 하지만 아이의 삶의 질을 위해 여건이 된다면 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선생님은 권하시지만, 나의 마음은 항암치료를 하지 않는 것으로 기울어간다.
항암치료를 하는 5개월 동안의 삶의 질은 그럼 어떤가. 그렇게 고생을 하고 좋아져도 재발 확률 100프로이며, 기대여명이 1년 남짓이라 한다. 강아지의 1년은 길다지만, 5개월 또한 너무 길지 않은가.
치료비는 아마도 천만 원은 훌쩍 넘을 것이다. 4년 전 초코 병원비가 500을 훌쩍 넘어가면서 600, 700... 정말 놀랐었다.
지금 내 수중에는 이혼하면서 재산분할로 들어온 목돈이 있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초코 치료비는 감당할 수 있다.
하지만 초코가 아프고 기운 없고 털 다 빠지고, 피식피식 쓰러지던 4년 전 그 모습을 또 볼 자신이 없다.
게다가 치료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자니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 주사와 먹는 약을 번갈아 처치하는데, 주사의 경우 자칫 잘못하여 바늘이 조금만 빗나가 약이 다른 곳으로 흐르면 그 부분이 썩어들어가서 절제를 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한다. 겁이 덜컥 났다. 초코는 흥분대마왕. 예전 혈소판 감소증으로 입원했을 때, 새벽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초코가 너무 흥분을 해서 이대로 있다가는 상태가 더 악화될 것 같으니 집에서 케어를 하는게 좋겠다는 것이었다. 흥분도가 진짜로 남다른 우리 초코가 한 두번도 아니고 병원을 제집처럼 들락거려야 하는 항암 치료를 과연 무사히 받을 수 있을까.. 생각만으로도 두렵고 가여웠다.
우리 초코 많이 아프기 전에 좋아하는 산책도 실컷 시켜주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이고, 이쁘게 이쁘게 보살펴주다가 편하게 보내주고 싶다고 자꾸만 생각한다.
그렇지만 적극적인 치료를 하지 않았을 때 기대 수명은 평균 50일에서 60일이라 한다. 길어야 두 달이라고? 아아.. 우리한테 시간이 그것밖에 없다고? 그 부분에서 자꾸만 망설여지고 마음을 확실히 정할 수가 없다. 1년과 2달은 천지차이니까.
이곳으로 내려와 살기 전 초코가 다니던 병원 원장님에게 전화를 해서 지금의 상황을 전했다. 이사하면서 아쉬운 것 중 하나다. 그 병원에서 보살핌을 받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원장님은 갈팡질팡 내 마음을 읽으신 걸까. 이렇게 말씀하신다. 항암치료를 하는 순간부터 아이의 초롱초롱한 눈은 못 본다고, 대신 아직 건강할 때 많이 많이 사랑해 주는 게 좋지 않을까 하신다.
어제는 동네 저 멀리까지 산책을 다녀왔다.
작년부터 집 언저리만 왔다 갔다 하는 산책을 하며, 그래 이 정도면 어디야. 자유롭게 저 맘대로 뛰어다니고, 하루에도 몇 번씩 바깥바람 쐴 수 있는 이 환경이 너무나 감사했다.
그렇지만 좀 더 정리되면.. 여름에는 좀 시원해지면.. 겨울엔 좀 따뜻해지면.. 저기 더 멀리까지 초코랑 다녀야지 미루고 미뤘던 길을 처음으로 나섰다.
한 시간이 넘게 걷는데도 우리 초코 지치는 기색이 없다. 중간중간 발이 시려운지 주저앉으려고 할 때만 안아서 발 주물러주고 내려놓으면 또 쫄랑쫄랑 신나서 걸었다.
얼음이 녹은 곳에 흙탕물이 많아 배밑과 발이 엉망이 되어 깨끗하게 씻기고, 미리 구워놓은 고구마를 주니 늘 그렇듯 너무나 맛있게 짭짭거리며 먹는다.
어느새 저녁 시간이 되어 약이랑 고기까지 먹이니 흐뭇함과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올라온다. 왜 이렇게 못했어. 12년 동안.. 그 긴 세월 왜, 뭐가 그리 버거워서 초코는 늘 뒷전이었을까.. 한다고 해도 왜 맨날 초코가 가여웠을까..
오늘은 2시에 나서야지. 조금 더 따뜻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