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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와 나의 마지막 한 달 1

by 사파이어

오늘은 3월 11일이다.

3월 2일 저녁 7시 50분경 초코와 작별을 했다. 벌써 1주일 하고도 이틀이 지났다.


아무 때나 울컥울컥 쏟아지던 눈물은 하루하루 그 횟수가 줄어들고 있다.

집 안에서도 그렇지만 현관문을 열고 나가 데크를 지나 초코가 늘 쉬를 하던 잔디밭에 눈이 갈 때,

엄마집에서 우리 집으로 건너오는 다리를 건너며 온통 초코의 모습이 어른거리는 마당이 눈에 들어올 때,

이제는 초코가 없구나.. 정말 없구나..

그럴 때면 또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끓어올라 엉엉 울면서 집으로 걸어 들어간다.


횟수는 줄어들었을지언정 슬픔의 강도는 여전하다. 어쩌면 점점 더 커지는 것만 같다.

날씨가 점점 따뜻해질수록 내 마음은 더 아프겠지.

이런 날씨에 초코랑 공원으로 산책을 가면 얼마나 좋을까.

이제 초코한테 내 모든 마음과 시간을 내어줄 수 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있는데.

이 따스한 봄기운이 싫고 괴롭다.

그렇게 싫을 봄을 보내고 7월이 돌아오면 작년 초코와 여기서 살기 시작한 기억들이 하나하나 떠오르며,

나는 초코에 대한 미안함과 속죄의 마음으로 여름과 가을, 그리고 초코를 괴롭혔던 이 곳의 겨울을 나겠지. 그리고 또 봄.



2월 8일부터 시작한 초코와의 체육공원 산책은 2월 26일이 마지막이 되었다.

그 사이 딸의 이사와 짐정리로 세 번 정도 집을 비웠고, 또 한 번은 엄마와 원주 다녀오느라 못 가고, 또 하루는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못 갔다.

열다섯 번. 그마저 줄곧 영하 10도 이하의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때라,

오래 멀리까지는 못 가고 늘 가던 코스로 한 바퀴 돌고 오면 20분 정도.

좀 더 놀면 초코 폐에 무리가 갈까 싶어 아쉽지만 그 쯤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좋았다. 행복했다. 초코와의 산책이 좋았고, 미안했고, 가여웠고, 아쉬웠고, 슬펐다.

초코가 아프다는 게 거짓말이길. 그리고 정말 거짓말같이 초코는 쫑쫑쫑 잘도 걸어 다니고 뛰어다녔다.

내가 오나 안 오나 가끔씩 뒤를 돌아보는 모습이 너무 이쁘고 안쓰러워 눈물이 줄줄 흘렀다.

초코는 원래 산책을 나가면 부르기 전까지는 절대 뒤도 안 돌아봤던 거 같은데,

얼마 전부터는 저 혼자 멀찌감치 가다가도 한번씩 나를 확인하고 다시 가던 길을 가곤 했다.

언제부터 그랬지..

우리의 슬픈 산책은 너무나도 빨리 끝나버렸다.

2월 7일 병원 검사 후, 항암치료를 안 하면 평균 50일 정도 살 수 있다는 말에 가슴에 불구덩이가 확 올라왔었는데, 그래도 아직은 우리에게 시간이 있다.. 시한부판정을 받고도 6개월을 더 사는 강아지도 있다 하니, 우리 초코가 그런 강아지이길 간절히 바랐다.


지난주 받아온 약을 초코가 한사코 거부해서 다시 약을 받아오려 병원에 가기 전에 잠시 들른 게 마지막 산책이었다.

늘 초코와 나만 있던 그 공원에 하필이면 그날은 다른 차가 한 대 먼저 와있었고, 저 멀리 몇 명의 사람들이 무리 지어 초코와 나의 길을 걷고 있었다.

아마도 그날은 날씨가 따뜻해져서 사람들이 산책 나왔지 않나 싶다.


약을 거부한 것이 그 주 월요일 24일부터였는데, 그때부터 상황은 급속도로 안 좋아졌다. 당시에는 그런 줄 몰랐었다. 아직 괜찮을 줄 알았다.


그전 주에 딸 이사가 있었다. 하루 종일 걸릴 것 같아 초코를 집에 두고 가면 마음이 조급해질 것 같아서 남편에게 돌봐달라고 미리 부탁을 해 놓은 터라 아침 일찍 데려다주고 이사를 했다.

그날은 딸도 아파 같이 이삿짐 정리할 컨디션이 아니었기에 아빠집으로 보내고, 나는 남아 초코와 딸 걱정에 울면서 혼자서 큰 것들만 대충 정리하고, 밤 9시쯤 딸과 초코를 차에 태워 우리 집으로 내려오니 11시 30분이었다.


다음 날 초코는 아침에 밥도 잘 먹고, 약도 잘 먹고, 오전에 집 마당으로 잠깐 나갔다 오고, 전날의 피로로 나도 몸이 영 찌뿌둥해서 오늘은 공원 말고 집 근처 길로 산책을 잠깐 하러 나갔는데, 그날 초코는 유난히 개울가로 너무 붙어서 걸어가더니만 살짝 돈다는 게 그만 뒷다리가 개울 쪽으로 쑥 빠져버렸다.


순간 너무 놀라 초코가 개울로 떨어지는 모습이 휙 하고 눈앞에 그려졌지만 , 앞다리를 개울가에 필사적으로 걸치고 있어 얼른 안아 올렸다. 분명 그 시간이 1초 혹은 2초였을텐데, 나중 생각해 보니 그 시간이 왜 그리 길게 느껴졌는지 내내 이상하고 놀랍고, 안 떨어지려고 있는 힘을 다해 앞다리를 걸치고 있는 초코의 모습이 너무나 귀엽고 우습고, 암튼 초코 시골 생활 중 가장 큰 사건이었다.


놀란 가슴에 한참을 꼭 안고 있다가 내려주니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쫑쫑쫑 가던 길을 가더니 응가도 세 번이나 하고, 그 상황들이 너무 웃겨서 딸에게 웃으면서 그런 일이 있었다고 얘기해 줬었는데. 그날 밤부터 초코의 헉헉거림이 부쩍 심해졌다.

늘 그렇듯 내색은 전혀 안 했지만 아마 초코도 많이 놀랐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폐 전이까지 이어진 것 같다.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요즘 매일같이 과거의 기억을 들추며 사는 나로서는 그날 그 사건이 너무나 아프다.

그렇지 않다면 갑자기 그렇게 초코상태가 나빠진 것을 어찌 설명할까.


밤부터 심해진 헉헉거림은 다음 날 아침이 되어도 여전했고, 그렇게 아픈 애기를 아빠에게 부탁하고 나는 또 딸의 집으로 함께 나섰다. 달리는 차 안에서 딸은 자고 나는 초코생각에 가는 내내 울면서 운전을 했다. 왜 운전을 하면 그렇게 눈물이 쏟아지는지 모르겠다.

오는 길에도 내내 아이처럼 엉엉 소리 내며 울었고, 내리자마자 집으로 뛰어들어가 초코를 꼭 안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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