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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등록 변경신고

by 사파이어

엄마집 지하수 공사 마무리를 하는 날이었다.

엄마집 공사를 했는데, 우리집 물이 안나온다. 또 시작이다. 작년 7월 이 곳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계속되는 머피의 심술이 이번에도 날 약올린다.


물이 차오를 때까지 기다리면서 잠깐 누워있는다는게 눈을 떠보니 밤12시였다.

마당으로 나가 지하수 펌프 전원을 연결하자 다행히 그사이 물은 차올라 있었는지 간신히 양치질만 하고 다시 억지로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엄마집에서 아침밥을 먹고 설거지를 마친 후, 걸러진 흙탕물로 시커멓게 변해버린 씽크대 필터를 교환할까 하다가 며칠은 흙탕물이 계속 나올텐데, 물로 흙만 떨궈내려고 필터를 빼내서 물로 헹군 다음 다시 집어넣었는데 방향을 반대로 끼웠나보다.

다시 빼내려고 했더니 끝부분 필터 막이용 플라스틱이 중간에 걸려있었다. 세게 쳐도 안나오고 손가락도 들어가지 않는 위치에 딱 걸려있었다.


뭔가를 하다가 흐름이 끊기는 이런 상황이 오면 나는 어김없이 화딱지가 나고 짜증이 난다. 씩씩거리며 핀셋을 찾으러 가는데, 옆에서 엄마가 웃으며 한마디 하신다. 짜증날 일도 아닌데 너는 그런 일에 꼭 짜증을 내더라.

엄마, 사람마다 짜증이 나는 지점이 다 다르거든 한마디 대꾸했다. 사실은 더 쏟아내고 싶었다. 짜증날 때 가만 놔두면 될걸 왜 옆에서 한마디 거들어서 더 짜증나게 하냐고. 엄마가 짜증날 때 나도 옆에서 한마디 해볼까. 뭐 이런 말들. 하지만 속으로 삼켰다.


그때부터였나보다. 오전 내내 기분이 찌뿌둥했다. 아침해가 밝아오면 밤새 그나마 가라앉아 잠잠한 몽글몽글한 슬픔이, 오늘은 오전부터 슬그머니 고개를 들더니 한 번 터진 울음이 길게도 북받치듯 터져 나왔다.


마당일을 하다말다 하다말다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아 집에 들어와서 뭐라도 해보려니 역시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아 그렇게 오전을 보내버리고, 점심 먹고 3시 30분까지 자버렸다.


초코의 동물등록 변경신고를 3월이 가기 전에 하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미룰수록 내 맘이 더 힘들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화장신고서와 변경신고 방법에 관한 안내 종이가 든 봉투를 열어보기가 너무나 두렵고 싫었다.

설마 한 달 안으로 해야 하는 건 아니겠지. 적어도 3개월은 시간을 주겠지. 그러나 겨우겨우 억지로 꺼내본 종이에는 기한에 대한 안내는 없었다. 적혀진 동물보호 관리 시스템 홈페이지에 들어가보고서야 사망한 날로부터 한달 이내에 신고를 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그 때부터였다. 또다시 하염없이 울음이 터져나왔다. 회원 가입만 해두고 밤에 하자. 그런데 혹시 화장신고서, 동물등록증을 스캔해서 첨부해야 하나?

매일 밤 너덜너덜해지는 요즘. 그 밤에 그런 걸 더더구나 하고 싶지 않았다. 정말 내키지 않았지만 절차를 찬찬히 살펴보니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란다.


초코..수컷.....변경을 클릭하니 변경내용을 적는 칸이 나왔다.

그런데 문구에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동물이 죽음’이라니..

애써 덤덤하게 장소, 사유를 적고 수정을 눌러야하나, 어디를 눌러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수정을 클릭했더니 그냥 그걸로 변경신고가 완료되었다.

그러고나서 또 한참을 엉엉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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